공부/사진2010. 3. 18. 13:00
프레시안이 이미지프레시안을 시작하면서, 성남훈과 이상엽의 대담을 준비했다.
지금의 사회적, 매체적 상황이 '포토저널리즘'을 실천하는 포토에이전시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매그넘은 편집자들의 요구에 맞추지 않는, 자기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혹은 이미 저물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자기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어떡하면 가능할까?

원문 주소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15152144&section=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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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름이 좀 있다는 곳에 가면 DSLR 카메라를 든 이들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명한 맛집에 가도 주문한 음식을 사진으로 찍는 소위 '인증샷'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포토저널리즘은 오히려 죽어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지 오래다. 편집자들과 독자들은 더이상 타인의 고통을 정면대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진가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사진으로 나름의 출구를 찾고 있다. 올초 있었던 아이티 대지진 사태에 이전과 달리 전세계 다큐 사진가들이 '한 달'도 안 돼 현지에서 자취를 감췄다.

디지털로 바뀐 환경으로 인터넷이 새로운 대안적 장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다. <프레시안>이 포토 저널리즘이 퇴조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미지프레시안>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고자 하는 이유다. <프레시안>과 사진가들의 타인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진의 '공익적 의미'를 되살리려는 '의지'가 독자들의 '의지'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지프레시안> 시작을 즈음해 사진가 성남훈, 이상엽이 한국의 포토저널리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대담을 가졌다. <이미지프레시안>은 3월 22일 런칭한다. 편집자

▲ ⓒ프레시안(최형락)

이상엽: 최근 '포토 저널리즘'이라는 유력한 사진 장르가 전반적인 인쇄매체의 위축으로 과거보다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같다. 매체 구독을 통한 수입이 있어야 사진작가들도 원고료를 받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데 그런 일들이 거의 다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성남훈: 매체 안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활동하는 이들은 처지가 좀 나은 편이다. 반면에 우리 같은 프리랜서 또는 꿈을 가진 젊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이 비관적인 게 사실이다.

매체가 중요한 이유는 한편으로 먹고 사는 문제 측면에서 어쨌든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포토 저널리즘이 매체적 사고를 통해 자기의 이상·생각을 옮겨놓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런 장이 없어졌다. 문제는 그런 장이 다시 찾아질 수 있는 가능성, 내성조차도 한국사회에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프리랜서가 먹고 살 수 있는 에이전시 시스템 역시 한국에서 전무했던 시기에 조금 구축해보려 하다가 무너져 버렸다. 지금은 각개전투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엽: 매체들의 연성화로 과거보다 작가들의 작업물들을 더 싣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 같다. 코소보 사태, 이라크전 등 과거엔 중요한 '핫 이슈'가 있으면 따라 가서 취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번 아이티 지진 사태 때는 독자적으로 취재하려 달려간 이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편집자도, 독자도 회피하려고 하니 그런 현상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성남훈: 나 역시 개인 사정으로 아이티 지진이 있고 나서 한달 후 현장에 갔다. 한달이 지났더라도 그렇게 큰 사고가 있었으면 나름대로 길거리에서 부딪히는 기자도 있곤 했는데 이번엔 NGO 등에 연계된 프로젝트 팀들만 보일 뿐 역동적으로 탐사하는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달 안에 다 끝나버린 거다. 예전 같았으면 지진 이후에 시작되는 새로운 고통에 주목했겠지만 그런 것을 보려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상 엽: 이게 우리나라만의 상황인가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

▲ 성남훈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성남훈:
전 세계적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나타났다. 사진으로 그런 작업을 해보겠다는 의무감과 계획의 구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도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 투입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매체 자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수백 명이 죽으면 상당한 이슈였지만 지금은 20만 명이 죽었는데 한달 안에 종료된다. 특히 아이티 같은 작은 나라들은 매체나 국가의 이해관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외면당한다.

이상엽: 성남훈 작가는 프랑스에서도 에이전시에 소속돼 있었고 해외활동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다. 해외 에이전시 동향은 어떤가? 과거에는 분쟁현장에서 그들이 자리를 지켰지만 지금은 그들도 회피한다는 건가?

성남훈: 그렇다. 회피할 뿐더러 동력도 잃어버렸다. 예전엔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뭉쳐지는, 색깔 있는 에이전시가 있었다. 현 상황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했어도 자기들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으면 그에 집중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판매구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오면서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 엄청난 돈의 논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큰 조직으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다.

큰 조직에 들어가면 상부에서 색깔을 유지시켜 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립적이고 모험적인 기치를 들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활약했던 에이전시 '세븐(VII Photo)' 같은 경우도 지금은 맥을 못 쓰고 있다. 예전에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다른 곳에서 가공해줬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직접 가공할 필요가 있고, 이에 따라 판매 전략도 필요해졌다. 프로젝트나 출판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지 않으면 힘들어진 것이다.

이상엽: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취재현장도 많이 바뀐 듯하다.

성남훈: 잡지만 봐도 시스템은 이미 디지털화 되어 고급 이미지들이 넘어오면 편집자가 선택만 하면 된다. 예전에 사진을 고를 때 작가의 생각과 성격 등의 요소가 중요했었는데 지금은 편집자가 취합해서 독자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됐다.

▲ 이상엽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이상엽
: 아까 세븐을 언급했는데 매그넘(Magnum), 에이전시 뷰(Agency Vu), 매티스(METIS) 등 독립적인 에이전시의 위력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얘긴가.

성남훈: 세븐은 아직도 자신들이 보는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버티려 하는 분위기는 있다. 매그넘만 봐도 영역적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정통 포토 저널리즘에 축을 뒀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변했다. 새로 가입한 작가들의 사진을 봤을 때도 개인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상엽: 과거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연성화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체가 연성화 되다보니 에이전시도 그에 맞춰 변화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다.

성남훈: 올해 월드프레스포토 수상작을 보면 영역이 넓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토 저널리즘 시장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놓지치 않고 흡수하기 위해 현대적인 이슈에 관련된 섹션을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상을 주기 위해 사진 몇 장만을 나열해 심사하니 그런 부분이 더 강하게 보이는 점도 있다.

이 상엽: 월드프레스포토가 그러한 변화의 추세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 국내는 과연 그런 추세와 비근하게 변화하고 있나? 여전히 신문 사진이 포토저널리즘의 중심이 되다보니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영역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좁다. 한국의 포토 저널이 얼마나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건가?

성남훈: 지금 보면 거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우려했던 것처럼 10년 전부터 공백이 있었고 특히 30대 연령층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이 비어있다. 한국에서는 매체가 가진 힘이 있었는데 만약 과거에 에이전시화 등을 통해 메체가 프리랜서들을 흡수했다면 현재 상당히 다른 문제가 됐을 거다.

작가들이 자구적으로 세웠던 에이전시들도 잘 될 듯 하다가 지금은 문을 다 닫았다. 그 뒤로는 프리랜서들이 자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나. 출판·전시를 모색하거나, 웹진 <이미지프레스> 창간 등을 통해 작가들을 규합해보려 했지만 결국 경제적인 측면이 결여돼 무너져 버렸고 이젠 소수의 의지만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10년 동안 사진이 너무 예술적인 쪽을 지향해 온 건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든 저널리즘이든 파인 아트(Fine Art)와의 벽이 얇어지면서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전제는 가능하다.

왜냐 하면 사진이란 게 시각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진 보는 사람이 쉽게 감동을 받게 할 수 있지만 쉽게 지치는 면도 있다. 같은 유형의 사진을 계속 보면서 세상을 재단하면 문제가 생긴다. 과거와 같이 휴머니즘에만 기반하는 사진이 득세할 일은 없지만 포토저널리즘을 근간으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파인 아트에서도 가져갈 수밖에 없다. 자신들도 예술지향적이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엽: 조금 전에 연성화 얘기가 나왔다면 지금 예술화가 나왔다. 과거에는 사진이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쓰였다. 과학으로서의 사진도 있었고 예술로서의 사진도 있었다. 포토저널리즘의 쓰임새는 정보 전달과 매체의 이슈 전달 측면이 강해 형식적으로는 폄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포토 저널리즘이 어느 정도의 예술성을 가질 수 있나?

성남훈: 저널리즘에서 객관보다는 주관이 대두되면서 사진도 보편적 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대적 상황이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기호와 상징들을 소비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언어적 구사력은 떨어져도 시각적 기호를 해독하고 소통하는 기능이 발달되어 있다. 의미만 확장시키는 예전 방식만으로는 힘들다는 얘기다. 형식미도 필요하고 그에 접목해 생각을 옮겨내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트렌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혹자는 이를 접목해보다가 잘 되지 않으면 물러서서 '이것은 예술'이라고 하는데 난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은 유약하다. 어떤 관계 안에서의 이야기가 사유화됐을 때 담론적 거대성을 버릴 가능성이 높다. 편하게 가는 것이다. 폼나고 예술가적인 것을 강조하다 보면 저널리즘의 기본 정신을 놓고 예술만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으로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왜냐면 예술 쪽으로 가도 또 막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이상엽: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아트 워크을 구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함몰은 경계해야 한다는 건가.

성남훈: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거다. 그들이 어디에 표현하겠는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매체가 흡수를 안하면 전시장을 통해 그런 식으로 포장될 수밖에 없다.

이상엽: 걱정되는 점은 요즘 발표할 지면이 사라지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전시장 밖에 없는 현실이다. 수없이 많은 전시가 만들어졌고, 공간 전시를 통해서 보여지는 형식이 과거와 달라졌다. 너무 공적인 얘기는 전시 공간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젊은 작가들이 사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사진들이 '먹힌다고' 생각수록 포토 저널리즘이 애초에 갖고 있던 공익성이 증발할 가능성은 많아진다.

성남훈: 잘만 한다면 전시장도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없는 건 아니다. 몇 번의 테스트도 거쳐봤지만 문제는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상엽: 그런 측면에서 포토 저널리즘을 다시 활성화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새로운 영역인 인터넷은 어떻게 평가하나? 인터넷이 수없이 많은 종이매체들을 대체하고 있는데 포토저널리즘의 대안 역시 될 수 있나?

성남훈: 어렵다고 해도 지금도 지면 쪽은 잘 살아남아 있고 매체 안의 견고한 조직에는 좋은 사진가가 남아 있다. 그런 면을 제외하고 가능성만을 본다면 인터넷은 중요하다. 예전에 우리가 만든 웹진 <이미지프레스>역시 컨텐츠를 만들어 생산을 유지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인 터넷 매체도 견고한 조직이 몇 군데 있다. 그런 매체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미지프레스>는 사진가들이 중심이 됐던 작은 조직이었지만 관록있는 인터넷 매체가 의지를 갖고 그 조직을 가져간다면 기존과 다른 것들을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 옛날처럼 사진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영상이나, 음향을 담아낼 수 있다. 매체를 통해 우리가 실질적으로 전달하려는 본질은 사진이지만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외부 장치도 많이 있는 것이다, 인터넷망의 속도도 빨라져 단순 접근이 아닌 '강한 사진'의 본류도 이야기할 수 있고 부르럽고 감성적인 장치로 전달할 수도 있다.

이상 엽: 좀 더 세부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과거 종이매체에 비해 인터넷 매체는 재정 구조가 취약하다. 인터넷 매체가 사진에 달려들었을 때 자기구현은 할 수 있지만 재생산은 안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성남훈: 그래서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어떤 필요'에 의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진의 다양한 언어를 독립적으로 취급해 일종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선택이다. 난 후자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돈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의지와 의지가 만난다면 가능하다.

앞서 말했지만 매체는 조직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안정성이 있다. 조직 안에서 사진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성만 있다면 상당히 큰 장이 열릴 거라고 본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문제 역시 매체가 적극적으로 끌어가려는 의지가 있을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네이버> 같은 포털 매체도 사진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아마추어를 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곳의 아마추어들은 현재는 자기 자신를 뽐내는 단계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를 넘어서기 위해 학습하기도 하고 세상 이야기도 해야 한다.

그런 면에도 예전엔 잡지가 매력적이었다. (사진가에게) 10페이지, 15페이지 준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기회였다. 잡지를 보는 사람들도 '이렇게 세상을 잘라내서 얘기할 수 있구나, 이런 것들이 나에게 어떤 감수성으로 오는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피드백을 얻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인터넷은 분명히 그런 피드백을 다시 줄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10페이지가 아니라 훨씬 많은 분량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옮겨 놓을 수 있다고 본다.

이상엽: 그런데 인터넷 매체들이 등장한 10여 년의 과정을 보면 대부분 사진에 있어서 종이매체만큼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반 기자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알아서 찍어오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외부에서 사진을 구해 쓰려는 게 관행화된 상황이다. 갑자기 고급화된 사진으로의 이행이 가능할까?

성남훈: 저널리즘을 넘어선 사진, 사진의 사상적 가치를 가지고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이 전제가 되면 여러 방향도 모색하고 알맞는 사람도 찾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미지만 생산하면 된다. 일반 기자가 찍어오고 기사에 붙여서 발송하면 된다. 골치 아프게 먹히지 않는 사진으로 슬라이드까지 만들어 내보내서 뭘 할 건가? 문제는 지속성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이상엽: 그런 새로운 포토 저널리즘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고 바로 구현되지는 않을 것 같다.

성남훈: 매그넘 같은 경우에는 디지털로의 변화에 - 나이를 떠나 - 적응할 수 있는 사진가들이 있다. 어떠한 컨텐츠가 생기면 상황에 맞춰 오퍼레이터가 투입돼 사진을 포장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한국은? 상당히 어렵다. 시스템이 없으니 사진가를 모으고 호흡을 맞춰야 하고, 아무리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돈과 품이 들아가는 경제논리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어느 정도는 타겟층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상엽: 인터넷의 성향상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정성이다. 포토 저널리즘이 인터넷 매체에서 안착하고 활성화 된다해도 동일한 사건을 다룰 때 선정성이 문제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과연 예전같은 묵직한 주제를 표현할 수 있을까? 앞서 얘기 했던 포토 저널리즘 자체의 변화, 연성화나 아트화가 모니터 안에서 어떠한 형식을 가질 수 있나.

성 남훈: 매그넘도 과거 포토저널리즘의 대안으로 전시와 출판, 그리고 '인모션(In Motion)'이라는 색션에 주력하고 있다. 인모션에서 사진을 포장하는 방식은 아주 단순한 얘기를 그렇게 잘 만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찍어온 사진들을 오퍼레이터들이 단순 포장이 아니라 영상, 편집, 시나리오 기획까지 도맡아 전문 사진으로서의 특성을 강화시킨다. 그런 게 중요하다.

그 런 전략을 세우다 보면 무거워진 담론들이 소프트해질 가능성이 높다. 부분적으로 쪼개지는 거다. 그리고 계획적 접근이 가능하다. 출판을 예로 들면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연령층이나 기호가 다른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각각 만들어낼 수 있다.

이상엽: 마지막으로 창간한지 9년이 됐고 정론지로서의 위상도 가지고 있는 <프레시안>이 사진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한다. 어떤 지향성을 가졌으면 좋겠나.

성남훈: 처음엔 조급할 수도 있다. 좋은 사진가들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자기 검증을 확실히 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버틸수 있는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순조롭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잘 안되더라도 버텨내야 한다.

그 다음 단계가 되면 희망을 꿈꾸게 하는 것들에 주목하고, 새로 나타나게 될 젊은 사진가들이 '나도 저 곳에 몸을 한 번 담고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이트가 됐으면 한다. 그런 사이트가 되도록 하는 노력이 현재 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도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성남훈
1992 년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 재학 중 '루마니아 집시' 사진으로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르 살롱'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1993년 동 대학을 졸업했다. 1994년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Rapho)'의 소속으로 유렵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97년부터 '라포 (rapho)'한국특파원으로 2007년까지 활동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 민주화과정을 취재로 월드프레스포토에서 '일상뉴스 부문' 수상
2004년 강원다큐멘터리 기금과 경기문화예술진흥 기금 수상
2006년 사진집 '유민의 땅' 으로 동강사진상과 한미사진상, 경기문화예술진흥 기금을 수상
2009년 옛 동티벳 캄지역 비구니승려의 포트레이트로 월드프레스포토 '포트레이트 부문' 수상
2006-2009년 전주대학교 사진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했다.


이상엽
사진가. 작가.
프레시안 사진기획위원
<실크로드 탐사>,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을 쓰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 2>등을 기획했다.
< 중국 1997~2006>, <청계의 나날들>등 전시를 했고,
네이버 '오늘의 포토', <내셔날지오그래픽>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김봉규 기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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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진2007. 7. 12. 23:30
출처 떠나고 싶은 하루 | 돌돌
원문 http://blog.naver.com/ckdghkdi91/30019641145



 
 
 

 
 

 
 

 
 
 

 
 
 

 
 
 

 
 
 

 
 
 

 
 
 

 
 
 

 
 
 

 
 
 

 
 
 
 
 
 
 
Magnum Photo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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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진2007. 7. 11. 11:00
사진을 본다는 것

빅 터 버긴(Victor Burgin)| "Looking at Photographs | 번역 : 이영준



글 로 쓰여진 것을 보지 않고 하루도 살 수 없듯이, 사진을 보지 않고 하루를 산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러저러한 제도적인 맥락─언론, 가족스냅, 광고─을 통해 사진은 환경속에 스며들어 있으며,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형성하고/ 반영하고/ 변화시킨다. 사진의 일상적인 도구성은 아주 명백한데, 그것은 팔고, 알려주고, 기록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도구성이 분명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사진적 재현이 보통의 세계, 바로 그 사진적 재현이1 만들어낸 세계 속에 묻혀버리는 점에 한해서만 분명하다. 최근의 이론은 사진이 “설명할 것 없음”이라는 영역속에서 그 작동방식을 감춰버린 영역 너머까지 사진을 따라간다.

예전에는 사진을 ‘예술’에 비추어서 보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교육기관의 타성을 탓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사진의 일상적인 경험이라는 더 큰 부분에 그림자를 드리워 감춰버리는 빛의 원천이었다. 가장 많이 서술되는 이야기는 카메라의 발명이 불러 일으킨 ‘미술사’의 독특한 뉘앙스인데, 그것은 일련의 ‘거장들’, ‘명품들’, ‘운동들’이라는 친숙한 테두리 속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또한 사진의 사회적 사실은 대체로 건드리지 않는 부분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회화와는 정적인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고, 영화와는 카메라를 공유하고 있는 사진은 이 두가지 매체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듯 하지만 사람들은 사진을 이 두가지 매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마주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화와 영화는 시간과 돈을 쓰게끔 하는 자발적인 행위의 결과로만 보이지만, 사진은 화랑에서 전시되거나 책으로 팔린다고 해도 대부분은 일부러 선택하여 보는 것이 아니며, 사진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진은 분명히 공짜로 볼 수 있는 듯이 보인다. 즉 사진은 무료로 제공된다. 회화와 영화는 비판적 시선에 대한 대상으로 제시되지만 사진은 환경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진을 소통시키는 사람들간에도 별로 언급되거나 이론이 덧붙여지는 일 없이, 무료로 친숙하게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진은 언어의 속성을 공유한다. ‘사진의 언어’에 대해 느슨하게나마 얘기한 것이 오랫 동안 흔한 일이었지만, 자연언어 이외의 소통의 수단에 대해서 언어학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체계적인 조사라도 시작된 것은 1960년대에 와서의 일이다. 그런 초기의 ‘기호학적’ 연구와 그 결과는 사진 이론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호학 혹은 기호론은 기호에 대한 연구인데, 그 목표는 의미가 생겨나는 체계적인 규칙을 밝히는 것이었다. ‘구조주의적’ 기호론의 초기에는 (롤랑 바르트의 <기호론의 요소들>은 프랑스에서 1964년에 처음 나왔다2) ‘자연’언어(말하기와 글쓰기 같은 현상)와 시각적 ‘언어’ 사이에 비슷한 점을 찾는데 관심이 모아졌다. 이 시기의 연구는 사진이 이 세계 속의 사물을 지시하는데 쓰이는 유사성의 코드, 지시된 의미가 2차적인 의미의 체계가 되는 함의의 코드, 사진 속의 요소들의 병렬과, 연속한 다른 사진들 사이에 나타나는 요소들의 병렬에 덧붙는 ‘수사적’ 코드를 다루었다.3 의미론의 연구결과는 (영어로 된 모든 텍스트는 궁극적으로 영어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진들이 의존하고 있는 사진의 ‘언어’, (기술적 장치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단일한 의미체계는 없으며, 사진이 끌어 올 수 있는 코드들의 이질적인 복합체가 있을 뿐임을 밝혔다. 각각의 사진은 이런 코드의 다양성에 토대를 두고 의미를 가지게 되며 그 코드의 숫자와 유형은 이미지마다 틀리다. 이중 어떤 것은 (적어도 일차적인 분석에 있어서는) 사진 특유의 것도 있으며,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신체의 몸짓, 표정 등에 관한 코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율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사진의 언어’는 언어 자체의 결정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는 설명이나 제목이 붙어있지 않은 채 사용되는 사진은 거의 볼 수 없으며, 긴 글이 딸려 있거나, 그 위에 글의 카피가 덧붙여진 사진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무런 글이 덧붙여지지 않은 사진 조차도 그것이 보는 이에 의해 ‘읽혀질’ 때는 언어에 의해 관통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을 가진 사진은 사회적으로 어둠에 덧붙여지는 의미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을 은유적으로 ‘우울하다’고 하듯이, 사진을 해석하는 요인들은 언어적이다).

사진을 알아본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진은 ‘사진적 담론’이라는 차원에서 쓰여져 있는 텍스트이지만 이 담론은 다른 담론들 처럼 그 너머에 있는 다른 담론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사진적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 처럼 복잡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가진 영역이다. 상호텍스트성이란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인 지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 이전의 다른 텍스트들이 죽 겹쳐져 있는 것이다. 사진이 전제로 하고 있는 이런 이전의 텍스트들은 자율적이다. 그들은 실제의 텍스트에서 어떤 역할을 하지만 그 속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텍스트에 대해서는 몸을 숨기고 있으며, ‘징후적으로’만 읽혀질 뿐이다 (사실, 프로이드의 글에 나타난 꿈에서처럼, 사진 이미지는 간명하다. 사람들이 그 효과를 다듬어서 광고에 사용하는 것이다). ‘고전적인’ 기호학은 사진을 대상-텍스트로 취급하여, ‘순수하게 시각적인’ 이미지는 낙원에서나 있을 수 있는 허구일 뿐임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에 덧붙여서, ‘이미지’의 차원에서 사진에 덧붙여질 수 있는 특수성은 이미지와 그 의미를 의도하는 사회적 행위의 특수성 속에 꼼짝없이 묶여 있다. 보도사진은 역사적 연속의 가공되지 않은 연속성을 ‘뉴스’라는 생산물로 전환하며, 가족사진은 그 특질상 가족이라는 기구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한다. 사진을 다루는 어떤 행위에 있어서도, 주어진 재료는(역사적 연속, 가족 생활의 실존적 경험 등) 특정한 기술적 방법을 쓰고 특정한 사회적 기구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생산물의 유형으로 전환된다. 초기의 기호학이 사진에서 찾아낸 의미있는 ‘구조’는 스스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조직의 독특한 유형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의 문제는 저자/독자라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구성체와 연관하여 생각되야 하는 것인데, 그 구성체는 실제로는 동시에 공존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별개의 담론들을 통해 다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심리분석은 기호학이 역사적 결정과, 의미의 생산에 있어서 주체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가장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적 단계에서 기호학은 텍스트를 의미의 체계가 텍스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서 경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는 결정적인 의미가 생산되는 객관적인 영역으로 보았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구조주의적 기호학은 코드화된 메시지와, 코드 ‘바깥에’ 머물면서 그런 메시지들에 코드를 덧붙이고 그것을 해독할 줄 아는 저자/독자를 상정하고 있었다. 그 저자/독자는 도구를 간편하게 집어들거나 내려 놓듯이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설명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보면 심각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어를 말하는 만큼, 언어도 우리를 ‘말한다’. 모든 사회적 제도─법적 제도, 윤리, 예술, 종교, 가족 등─에 걸쳐있는 모든 의미는 차이의 그물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그물망이란 통상의 의미론적 특징이 있거나 없거나 하는데 따라서 생겨나는 작용인데, 언어학은 이런 의미론적 특징이 언어의 근본적 특성임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행위들은 유아기부터 언어처럼 구조화되는데, ‘자라난다’는 것은 언어 자체를 포함하는, 그리고 언어에 기초한 의미있는 사회적 행위의 복합체 속으로 자라는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상징질서(symbolic order)는 인간이라는 작은 동물이 사회적 인간이라는 존재, 즉 ‘다른 자들’관계의 체계속에 처해 있는 ‘자신’으로 결정되어가는 영역이다. 상징질서의 구조는 개인 주체라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구성물에 방향과 형태를 부여하는데, 상징질서라는 넓은 의미에서 언어가 우리를 말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징질서 속에 새겨져 있는 주체는 변화하는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문화적 체계 (일, 가족, 등등)안에서 기본적인 성적 충동이 나름대로 형성된 산물이다. 즉, 이런 각각의 체계가 상정하고 있는 복수의 주체성들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주체는 고전적인 기호학에서 생각하듯이 타고난 고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텍스트의 작용의 결과이며, 끊임없는 형성의 과정이다. 이런 형태의 주체는, 말하는 사람과 코드 사이의 절대적인 단절을 거부하는 순간, 자신의 역사와 무의식을 초월하는 자율적 자아로서의 예술가라는 친숙한 모습을 내쫓아 버린다.

하지만 ‘초월적인’ 주체를 거부한다고 해서 주체나 그것을 형성하는 제도가 단순한 기계론적 결정론에 빠진다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제도는, 상징질서의 산물이면서, 또한 이 질서를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기호론의 초기 저작들, 특히 바르트의 글들은 우리 사회의 사진으로 찍힌 모습의 의미를 지배하는 주도적인 신화의 언어적인 구조를 밝히려고 하였다. 더욱 최근의 이론은 사진속에 ‘언급된’ 것을 이데올로기가 전유(appropriate)하는 구조에 대해서 뿐 아니라, 언급을 수행하는 와중에 끼어 들어가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검토하는데 까지 나아갔다. 이런 연구는 기술적인 장치 자체 속에서 구성되는 대상/주체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4 사진의 의미체계는 고전적인 회화에서 같이, 장면과 보는이의 시선, 즉 대상과 그것을 보는 주체를 동시에 묘사한다. 사진의 이차원적이고 유사적인 기호는 기본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카메라 옵스큐라의 구조를 가진 장치속에서 형성된다. (1826년에 니엡스가 최초의 사진을 찍은 카메라 옵스큐라는 렌즈에 의해 생긴 이미지를 거울을 통해 유리 스크린 위에 옮기는 것이었는데, 이는 바로 현대의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의 방식이다.) 어떤 대상을 묘사하건 간에, 그 묘사의 방식은 독특한 ‘시점(point-of-view)’을 내포하는 기하학적 투사의 법칙을 따른다. 보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은 사실은 카메라가 차지하고 있는 시점이다. 재현의 체계는 시점에다 프레임(이젤 회화와 벽화를 통해, 상인방 건축의 관습 속에 묻혀 있는 원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유산)을 더한다. 프레임이라는 매개기구를 통해 이 세계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일관성으로, 일련의 그림들, ‘결정적인 순간들’로 조직화된다.

재현의 구조─시점과 프레임─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 ‘시점’의 ‘마음의 프레임’). 어떤 텍스트의 체계보다도, 사진은 ‘거부할 수 없는 제의’로 나타난다. 사진장치의 특성은 수동적인 수용성을 능동적인 (비판적인) 읽기로 대체함으로써 사진 찍힌 대상이 사진 자체의 텍스트라는 성질을 감추도록 주체를 배치한다. “무엇일까요?”식의 퍼즐 사진(친숙한 대상을 이상한 각도에서 찍은 것)을 보면 우리는 몇 가지 가능한 대안들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것, 이미지 자체는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일단 사진 속의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사진은 그 순간 우리에게는 어떤 것으로 전환되어, 더 이상 밝고 어두운 톤과 불확실한 선과 애매한 모양을 지닌 혼란스러운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의 완전한 정체성, 즉 존재를 투여할 수 있는 어떤 ‘물건’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이러한 해독(decoding)과 투여는 즉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가 사진 속의 장면에 부여하는 전체성, 일관성, 정체성 등의 속성은 투사(projection)된 것이며, 빈곤한 현실을 거부하고 상상적인 완전함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상상적인 대상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상상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보여지는 것,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이다. 실재계에 유사적이고 상상적인 것을 부여(investiture)하는 것은 자아의 구성에 있어서 초기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그것은 자크 라캉이 말했던, 인간의 형성에 있어서의 ‘거울 단계’라는 계기이다.5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 아기는 자신의 몸을 조각나 있고 중심이 없는 어떤 것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상적인 자아라는 형태를 통해 자기 신체의 잠재적인 통일성을 다른 신체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다가 투사한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못하며, 아이는 그저 남일 뿐이다. (자신과 남의 분리는 나중에 언어의 세계, 즉 상징질서가 열릴 때 성의 구분을 알게 될 때 일어난다) 자기 정체성의 개념에 꼭 필요한 통일된 신체라는 생각이 형성되었지만, 그것은 현실을 거부함으로써만 생겨난 것이다 (불일치성, 분리의 거부).

어린이의 발달에 있어서 거울단계와 연관하여 두 가지 사실이 최근의 기호학 이론의 관심을 특히 끌었다. 우선, 심리학이 관찰한 바와 같은, 정체성의 형성과 이미지의 형성간의 상호관계는 (이 나이에 어린이의 시각은 신체적 행동의 능력을 앞선다.) 라캉을 주체성의 형성에 있어서 ‘상상적’ 기능에 대한 논의로 이끌었다. 둘째로, 어린이가 ‘상상적 질서’ 속에서 안정된 일관성에 입각하여 자신을 알아본다는 사실은 오해(misrecognition)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 자신에 대하여 눈으로 보는 것은 바로 그렇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맥락에서, ‘시선’ 자체는 최근에 이론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자엠스 자셰가 1941년에 찍은 <자기 정원사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는 웨이블 장군>을 예로 들어보자. 이 35년 된 사진 속에 새겨져 있고 사진설명 (장군이 자기의 정원사를 지켜본다)속에 고정되어 있는 부계적(父系的) 제국주의의 즉각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오늘날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 대상-텍스트를 1차적으로 분석해보면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이루고 있는 대립하는 함의들이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분명하게, 서양/동양이라는 대립 속에서 후자는 근본적인 ‘타자성’의 흔적을 감싼다. 혹은, 두 사람은 자본/노동의 대립관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명백함이 들어서는데, 이 장면의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은 그런 분석을 지나친 반응으로 치부해버려 그 효과를 제거해 버린다. 그러나 잉여의 생산은 대체로 이데올로기의 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사진의 이데올로기적 힘은 바로 그 순진함에 있다. 즉, 우리가 사진에서 어떤 것이던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은 보는 행위 자체에 있어서 우리가 끌려 들어가는 공모관계(complicity)를 은폐한다. 최근의 영화이론의 성과를 따라서,6 그리고 그 용어들을 받아들여, 우리는 사진 속의 네가지 기본적인 시선의 유형을 알아볼 수 있다. 그것은 ‘사진 찍을 만한’ 사건을 사진 찍는 카메라의 시선, 사진을 보는 이의 시선, 사진 속의 사람들(배우들)이 교환하는 이미지 텍스트 내부의 시선 (그리고 대상을 향한 배우들의 시선), 카메라를 향한 배우의 시선이 그것이다.


리 프리드렌더, 힐크레스크, 뉴욕 1970


자 셰의 사진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장군은 정원사를 바라보며, 정원사는 마치 이에 복종하듯이 자신의 응시를 땅으로 향한 채 장군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이미지를 더욱 더 읽어보면, 장군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듯이, 즉 사진을 보는 주체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재현은 카메라의 시선을 주체의 시점과 동일시한다). 직업적인 모델이 아닌 사람들이면 누구나 카메라 앞에서 취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이 정면의 응시는 우리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볼 때 흔히 보게 되는 응시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나르시시즘적 동일시가 담긴 응시로 응수하게 된다 (사진 이미지에 있어서 그런 동일시에 대한 주요한 반대는 관음증이다). 장군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과 일직선으로 맞서고 있으며, 정원사의 시선은 이 선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림자 속에 숨겨진 정원사의 얼굴은 (노동자는 여기서 문자그대로 아무 개성이 없다) 이미지를 보는 주체로부터 장군(상상적 동일시 속에서의 우리 자신의 힘과 권위)을 차단해버린다. 이런 움직임의 느낌은─절단하는 도구인─잔디 깎는 도구에 의해 더욱 확대되는데, 이 도구는 낫에 대한 연상, 그리고 그 위치로 말미암아 (사진은 우연의 일치 위에 지어진 텍스트이다) 남근(상호관계: 흑인의 성에 대한 백인의 공포/ 거세공포) 에 대한 연상을 응축하고 있다. 우리가 그런 과도한 읽기에서 물러서서 이미지의 있는 그대로의 내용으로 주의를 돌려도 (실제로 언제나 그렇게 하듯이), 우리는 같은 형상을 만나게 된다. 노동자는 장군과 그의 정원 ‘사이에 끼어 들며,’ 흑인은 문자 그대로 훼방을 놓는다. 여기서는 대략적으로만 시사될 뿐인 그런 중층적 결정은, 경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대상-텍스트의 함의들과 더불어, 정원사를 이단적인 것으로, 하나의 위협으로, 자기 자신의 땅에 대한 침입자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것에 대한 고려는 이데올로기의 중층결정에 있어서의 경험적인 것을 넘어선다.

재현(이데올로기적 의미의 생산에 있어서 주체를 공모관계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의 효과는 재현되는 단계(대상-텍스트로서의 사진이라는 단계)가 재현하는 단계(보는 주체의 단계)와 ‘매끈하게 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결합은 자셰의 사진의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안에 쓰여진 이데올로기는 토대7가 되는 중심성이라는 주체의 위치로부터 읽혀진다. 리 프리들랜더가 찍은 <힐크레스트, 뉴욕> (1970)에서는 바로 이런 위치 자체가 공격받고 있다. 공격은 두가지 주요한 지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첫째, 주체를 불러들여 스스로를 완성하는 원근법은 애매한 인물/배경 관계에 의해 부분적으로 흐트러져 있다. 이 사진 속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의식적인 노력을 동원해야만 일관되고 단일한 위치/(모습)로 구성될 수 있다. 둘째, 이미지의 가운데에 있는 거울이라는 장치는 근본적인 애매함을 불러 일으킨다. 잘라진 머리와 어깨가 프레임의 밑바닥-중간에서 올라온다. 재현의 체계는 우리의 시점을 카메라의 시점과 일치시키도록, 즉 거울에 비친 정면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도록 훈련시켜 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사진가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비친 모습─1/4로 쪼개진 인물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상적) 자기’/‘타자’의 상태 속에 있다─을 보고 있는지 확증해줄 아무 증거가 없다. 프리들랜더의 사진에서는 사진의 기술적인 장치와 현실 속의8 현상적인 흐름이 카메라의 주체적인 효과─통일되고 확실한 주체의 통일된 응시에 기초한 일관성─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거의, 그러나 아직 미치지 못하는─이미지는 (따라서 주체는) “잘 구성되어” 있다 (약간 다르기는 해도 자셰의 사진과 비슷하게). 우리는 ‘좋은’ 구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미술학교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알고 있다─왜 그것이 좋은 구성인지는 모른다. 이미지의 구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기껏해야 (형태심리학에서와 같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된 것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사진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처음에 시작할 때 말한, 우리 나름의 사진의 사용이라는 주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사진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오래 바라보면 우리는 낙심하게 된다. 처음 봤을 때 즐거움을 주던 사진이 점차로 하나의 장막이 되어, 우리는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을 보고자 열망하게 된다. 사람들이 사진을 너무 오래 동안 들여다 보지 않도록 배치하는 것은 우연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장면(보여진 것)에 대한 우리의 통제를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사진을 사용한다 (스톱워치를 가지고 방문객을 따라다녀 본 국립박물관의 관리는 한 사람이 하나의 그림 앞에서 평균 10초 동안 서 있는 다는 것을 알아냈다─그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한 장면의 평균 길이와 비슷한 시간이다). 하나의 이미지 앞에서 오래 동안 있으면 시선에 대한 상상적 통제를 잃을 위험이 커지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원래 그 시선이 소속된, 이미지에는 나타나지 않는 타자─즉 카메라─에게 놓치게 된다. 그러면 이미지는 더 이상 토대가 되는 중심성을 확증해 주는 우리의 시선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며, 우리의 응시를 피하면서, 이미지와 타자와의 연대관계를 확증한다. 우리가 이미지에 사로 잡혀 있는 그 틈새에 소외가 침투해 들어올 때, 우리는 응시를9 피하거나 페이지를 넘김으로써 우리의 시선에 다시금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 (‘지배하고자 하는 충동’은 바라보는 것에 대해 성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현상인 절시증(scopophilia)의 한 요인이다.)
 
사진을 너무 오래 동안 보는데서 오는 어색함은 체계적인 속임수인 원근법적 재현의 체계에 대한 의식에서 생겨난다. 렌즈는 실제의 공간과의 상상적 관계 속에서 한 장면의 기하학적 원점으로서의 주체를 설정하는 투사의 법칙에 따라 모든 정보를 배치하지만, 사실이 침투해 들어 와서 최초의 반응을 해체한다. 눈(나)은 이미지에 나타난 공간 속에서 움직일 수 없으며, 눈은 단지 프레임이 있는 곳까지만, 공간 위를 움직일 뿐이다. 그러나 눈이 프레임의 가장자리를 넘어서는 것을 막아 주는 ‘구성상의’ 장치를 포함한 여러 가지의 전략은 주체가 어쩔 수 없이 프레임의 규칙을 알아차리는 것을 지연시킨다. 따라서 ‘좋은 구성’은 시점에 대한 상상적 통제, 즉 우리의 자기-내세움(assertion)을 연장해 주는 도구일 뿐이다. 즉 그것은 프레임의 자율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도구이며, 프레임이 상징하는 타자의 권위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구성’은 (그리고 구성에 대한 지겨운 담론들--형식주의적 비평들) 상상적 힘, 사진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진정한 힘을 연장하는 수단이며, 구성이 시각 예술 전반에서 가치의 기준으로, 여러 가지 합리화를 거치면서 오래 동안 살아남은 것도 이런 이유10에서일 것이다. 최근의 어떤 이론은11 영화를 ‘소망을 충족해 주는 기계’에 대한 작업의 정점으로 치기도 하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사진은 이 작업에 있어서 한 역사적인 순간일 뿐이다. 극장의 어두움은 관객을 인위적으로 ‘퇴보’시키기 위한 조건으로 치부되었으며, 영화는 최면술과 비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욕망이 그 자신을 위해 만들어 낸 장치가 국제상황주의자(Situationists)들이 구경거리(spectacle)라는 이름을 붙인 서구사회의 모든 측면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구경거리란 역사주의적 진보 속에서의 상호 고립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상호 교환 속에서 통합되어 있는 시각적 장을 이루는 국면들을 말한다. 욕망은 상상적인 충족을 위한 물질적인 어두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백일몽도 최면술과 같은 면을 지니고 있다.

상상적인 것, 즉 이데올로기에 필수적으로 따라 다니는 오해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사진이 차지하는 실제 역할 때문에, 상상계에 묶여 있는 사진을 회복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진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19세기의 미학, 그리고 사진에 대한 대부분의 저술들에 맞서서, 기호학은 사진이 ‘순수한 형식’으로 축소될 수도 없으며, ‘세계로 향한 거울’도 아니고, 작가의 존재로 향하는 통로도 아님을 밝혀냈다.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진이 작업의 장소이며, 독자가 알고 있는 코드를 동원하고, 코드에 의하여 동원 당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는, 구조화되고 구조화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의미체계들이 표면상의 ‘내용들’을 서로 ‘소통’하는 바로 그 와중에서 이데올로기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사회 속의 여러 가지 의미의 체계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사진 이론이 주체 생산의 복합적인 결정과정 전체가 사진을 통하여 조율되고 규제되는 와중에서의 주체의 생산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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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자주: 여기서의 재현(representation)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무엇을 반영한다는 식의 재현이 아니다. 사실 재현이라는 말도 부적절한데, 우리말에는 아직 적절한 번역어가 없다. 버긴이 말하는 재현이란 이미 있는 대상을 반영한다는 뜻이 아니고, 그 자체로서 구성되는 이미지이다. 사진이 어떤 것의 재현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사진이 어떤 물건의 모습을 그대로 찍어 보여준다는 것이 아니라, 사진기라는 특수한 기계를 통해, 인간의 시선이라는 역사적인 구성물이 사진이라는 특수한 관습을 통해야만 알아 볼 수 있는 어떤 이미지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새로운 재현의 개념에는 최근 시각문화이론에서 다루는 모든 쟁점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코드, 주체의 형성, 의미의 제도와 그 담론 등 비교적 새로운 주제들을 압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재현은 어떤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는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가 어떤 문화, 역사, 사회, 정치적 맥락을 통해 구성되었는가하는 문제이다. 나아가, 재현의 개념에 있어서는 현실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지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로지 재현을 통해서만 현실을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현실은 재현을 통해 구성되는 어떤 것이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구성의 산물로 볼 것을 요구한다. 시각적 재현 뿐 아니라 언어적 재현, 청각적 재현, 촉각적 재현, 관습적 재현 등 아주 넓고 다양한 재현의 영역은 현실이 재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엇을 만질 때의 촉감은 단지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손의 감각이라는 문화, 역사적 구성물에 의해 결정되는 재현의 일부분이다. 시각적인 것에 있어서도, 우리의 시선은 역사,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재현은 이러한 신체라는 장치를 통해서 가동되는 구성물이다.
2: 영어로는 Jonathan Caper가 1967년에 출간했다.
3:이런 연구들이 사진에 적용된 것에 대해 알려면 Victor Burgin, “Photographic Practice and Art Theory” Studio International, July/August 1975를 볼 것.
4:Jean-Louis Baudry “Ideological Effects of the Basic Cinematographic Apparatus,” Film Quaterly [Winter 1974], p.75.
5 :“The Mirror-Phase as Formative of the Function of the I,” New Left Review, 51, [September/October 1968].
6;최근의 영화이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의 언급이 그것에 얼마나 덕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론을 다루는 영어로 된 잡지로는 Screen이 있다(특히 Laura Mulvey의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Screen, v.16, no.3, [Autumn, 1975]을 볼 것).
7 :여기서 토대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고, 재현을 가능케 해주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역자주)
8 :역자주: 원어는 날 것을 의미하는 raw이지만 여기서는 ‘가공되지 않은 현실 그대로의’라는 의미로 본역하였다.
9 :이제까지 시선은 look의 번역어였는데, 응시는 gaze의 번역어이다. 이는 자크 라캉의 regard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개념적인 분화이다.
10 :Guy Debord를 포함한 일군의 학자들. 자본주의 사회를 구경거리의 사회라고 비판했다.
11: Jean Louis Baudry, “Apparatus,“ Camera Obscura [Fall 1976].
 
 
**출처: 포럼a 4호
  http://www.foruma.co.kr/__v2/faForumA/View.asp?fNum=70&page=1&showPublish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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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진2007. 7. 11. 11:00

사진과 예술 - 위상의 재편성을 위하여 -

이 영준(사진평론)


오늘날 많은 한국의 사진가들이 사진을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가 없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또한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 없다는 것(현재 ‘사진영상의 해’를 기하여 추진되고 있는 사진사박물관의 의의와 미래의 파급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에 대해서도 한탄을 하며 사진도 회화나 조각같이 버젓이 미술관의 공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그 하나는 한국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으로 편입해도 좋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1990년대 말의 한국에는 내세울 만한 사진가도 많고 (이제 사진계에는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스타급의 사진가들이 일정한 층을 이루고 있다) 사진의 어법도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 자신감이란 사진이 이제는 독자적인 예술로서 자리를 굳혔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두 번째 요인은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기존의 갤러리나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예술권력의 생산, 재생산 구조에 사진도 동참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예술의 장르들이 미술관, 큐레이터, 비평가, 딜러들의 연합적인 노력에 의하여 오늘날의 지위에 이르게 되었듯이, 사진도 그러한 지위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사진이 그렇게 되려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몇 가지 있다.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가진 공간이 있다고 해서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과연 한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반성해 보면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것에 어느 정도의 용이함, 혹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비평가가 얼마나 되는가, 있다면 그들은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환영하고 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또한 사진이 그저 전시만 되었다가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매매가 이루어지려면 사진전문 딜러나, 사진매매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있는가도 따져 봐야 한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이 부정형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미술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나아가 사진의 예술성이 인정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의 사진에서의 예술권력은 회화나 조각에서와 같이 제도적으로, 담론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작가들의 서열, 위계질서에 의존하고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아직도 예술로서의 사진의 위상은 한국에서는 불안한 것이다. 그것은 사진 자체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술권력의 문제는 예술이 그 특유의 미적 담론으로 말미암아 설득력을 가지는 바로 그런 구조를 어떻게 획득하느냐의 문제인데, 사진의 미적 담론은 무엇인가, 나아가 사진을 미적, 예술적으로 규정해 줄 수 있는 별개의 담론의 체계가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담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진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곧바로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은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감추는 공간이고,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닫혀 있는 곳이며, 자유로와 보이지만 규율과 권력이 작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이제까지 미술이 감수해야 했던 그런 모든 조건들을 감수하면서 미술관에 들어갈 것인가는 깊이 따져 봐야 할 문제이다. 결국 미술관은 이미지를 다루는 다른 모든 기관들처럼 규율적 권력을 행사하는 곳인데, 예술작품이 거기 수용된다는 것은 그런 권력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하면 그런 권력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런 길들여지는 절차는 절대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무언가 진리를 뒤에 감추고서 겉으로는 허구적인 것만을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또 “예술의 진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즉 예술이라는 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의 작용이다. 결국 사진이 미술관에 수용되야 한다거나 갤러리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예술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예술권력이 새로운 대상을 받아들일 때 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의 신입생, 훈련소에서의 신병, 감옥에서의 신참을 받아들일 때 하는 일들과 비슷하다. 즉 그들의 기이함, 모남, 튀는 성질들(영어로 ‘이디오신크라시’(idiosyncracy)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깎고 다듬어서 수업 받을 수 있는 사람, 훈련받을 수 있는 사람, 교화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꾼다. 즉 사회 속에서의 규율적인 기관들은 주체를 생산하되, 규율적으로 통제하는 식‘으로만’ 주체를 생산한다. 미술관도 작품에 대해 같은 일을 한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품들은 얼핏 보면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것 같지만 미술관의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만 그런 것이다. (이 불의 썩는 냄새나는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원폭투하 폭격기 ‘에놀라 게이’를 전시하려고 했을 때 일본인들을 원폭의 희생자로 다루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아 보라.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도시와 영상전’에서 사진 속의 성기의 이미지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상기해 보라.) 이런 사례들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개념적으로도 끝이 없다. 왜냐하면 미술관 하나 하나는 ‘이디오신크라시’를 배제하는 방법과, 철학과, 코드를 가지고 일상적으로 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라는 행사와, 거기에 따라붙는 평문, 카탈로그, 전시제목 등의 텍스트들은 큐레이터의 전문가적 권위와 더불어 사진이라는 텍스트의 의미에 제한을 가하고, 그 해석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사진의 의미 자체에 규율을 가하고 길들인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을 지냈던 존 사코우스키일 것이다. 그는 1960년대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거울과 창>이라는 전시에서, 그리고 1965년도에 출간된 <사진가의 눈>이라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모더니즘 사진의 규칙을 명확하게 밝혀 놓았는데, 최근의 평론가들은 이 때의 사코우스키의 전시방식이 사진의 풍부한 내러티브를 협소화하고, 이미지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사진가의 유아독존적인 주체성을 강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더니즘적 규범에 사로잡힌 큐레이터의 시각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큐레이터의 권력이 한 시대의 사진의 흐름을 일정한 내러티브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프레임을 씌운다는 점이다. 사코우스키에 대한 비판에서 드러나지만,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의 내용은 바로 이런 식의 배제의 규칙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 대한 고려없이 순진하게 사진도 미술관에서 대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의미없는 진술이다.
사실 예술로서의 사진의 위상은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불안한 것이었다. 사진의 역사는, 사진이 예술의 위상을 획득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사진은 그 자체의 전통의 부재로 말미암아 다른 예술 장르와의 기생적인 관계를 통해서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진은 그림의 망령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사진은 회화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듯 회화를 아버지처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모방과 반항을 되풀이 해 왔다” 이런 모방의 좋은 예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회화주의 사진, 반항의 예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나 에드워드 웨스턴 등에 의해 이루어진 스트레이트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초기에 사진은 제도적으로나(19세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전시의 일부로 열렸던 사진의 전시; 회화를 복사한 것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초기의 사진가들;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 개설, 이후 사진을 모더니즘 예술의 일부로 확립해 준 중요한 전시 등), 담론적으로나(초기 초상사진의 미학, 규범, 코드, 소유형태들; 회화주의(pictorialism)같은 사조,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미술이나 문학의 한 형태로서의 사진; 그녀가 자신을 한 사람의 작가로 프로모션한 방식 등) 기생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진가들은 사진이 미술품처럼 팔리거나, 미술관에서 기존의 미술품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을 사진의 지위격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의 중요성과 특성은 여타의 다른 예술과는 다른 제도적, 담론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사진은 회화같이 미술관의 벽면에 전시됨으로서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다른 시각적 활동영역간의 위계(hierarchy)의 수립이다. 미술관은 인간의 시각예술의 활동이 들어갈 수 있는 궁극적인 신전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그것은 미술관이 다른 제도적 장치들에 비해 높은 위계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진은 회화나 조각처럼, 하나의 물건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예술작품과는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사진은 음악이나 연극처럼 수행(perform)되는 것, 나아가 그 수행의 와중에서 관객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술로서 간주돼야 할 것이다. 즉 보도, 다큐멘타리, 대중소비, 기록, 관찰, 신분증명, 법적 증거 등의 다양한 영역에 퍼져 있는 사진들은 그것이 대상을 기계적으로 찍은 객관적 이미지라는 사실 때문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이 요구하는 아주 이질적이고 상이한 담론들(뉴스, 진실, 재미, 여가, 과학, 수사, 정찰, 행정) 속에서 사진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그 가치를 부인하는 요인들(어떤 특정한 사진을 가짜라고, 아니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주장들)과 끊임없이 타협, 절충을 벌이며 나름대로의 실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진의 의미는 기호학에서 말하듯이 텍스트 안에 쓰여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지고 수행되고 작동되는 것이다. 미술도 이런 타협을 하지만 그 공간은 대체로 미술관 안에 한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사진의 작동범위는 훨씬 더 넓다.


버티용 카드 1913 <프랑스 경찰의 범죄자 관리시스템인 버티용 시스켐을 사용하는 미국 산디에고 경찰화일

따라서, 사진이 기존의 예술제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수행성에서 오는 의미들을 포기하고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지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우리는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미학의 역사에서 말하는 예술의 정의를 들이대어 사진의 예술성을 따지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을 뿐 더러,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진이 예술이라고 했을 때 그 예술은 일정한 제도적 틀 안에서 수행되는 예술이 아니라, 그런 틀의 바깥에, 혹은 그 틀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사진, 증거로서의 사진, 관찰의 수단으로서의 사진, 정체성의 식별이나 확인의 수단으로서의 사진을 말한다. 물론 이런 사진들이 작동하는 공간은 철저하게 비예술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의 일반적인 조건이 그러하듯이, 예술로서의 사진은 바로 그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사진을 말할 때는 우리는 예술의 정의 자체를 넓게 잡아야 한다. 그것은 미술관, 극장, 연주장 등 예술의 공간으로 확립된 곳에서 수행되고 보여지는 활동 뿐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감각을 다루고, 기존의 인간의 감각과 연관된 영역들에 개입하는 활동을 말한다. 특히 전시 뿐 아니라 출판, 홍보, 조사, 기록, 관찰같은 폭넓은 인간활동에 관여하고 있는 사진은, 바로 그런 점들을 빼버리고 예술로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포괄한 예술로서 거론돼야 한다. 물론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기존의 예술에서도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희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이나 문학같은 장르에서의 경계의 무너짐이나 재설정과, 사진에서의 그것은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조지 스펜서 <나 자신을 사진속에 넣기> 1985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술을 말하면서도 예술이 아닌 다른 활동의 영역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예술로서의 사진을 논의한다는 것은 사진을 기존의 예술의 경계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예술을 경계의 문제, 혹은 어떤 특정하게 예술품으로서 정의된 물건을 생산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예술은 언제나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간의 경계를 허물거나 재설정하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그 경계가 재도적으로 확립된 것은 20세기의 모더니즘이 확립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따라서 경계지워진 영역으로서의 예술,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이고, 한시적이며, 공간적으로는 뉴욕이나 파리같은, 서구의 몇몇 모더니즘의 수도들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사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하나의 제도로서의 미술관, 담론의 장치로서의 미술관의 일부로서의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술관이 어떤 대상에 작품의 지위를 부여하는 과정,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과정, 작품 뿐 아니라 관객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을 교육, 통제, 훈련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은 자연스럽게 가치중립적으로 주어져 있는 기구가 아니다.
사실 작가들도 위와 같은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미술관의 가치, 미술관이 부여하는 가치의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들이 예술이라는 아우라에 싸여 비가시화한다는 것이다. 즉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 화상, 언론 사이에는 끊임없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서 보여지는 작품에서는 그런 흔적들은 보이지 않도록 청소가 되어 있다. 미술관의 흰 벽이나, 작품의 프레임 등과 같은 장치들은 그런 흔적을 비가시화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만드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미술관은 가치를 분류하고 위계등급을 매기는 곳이며, 작품의 진정성은 작품이라는 물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인 인정의 체계에 의해 부여받는 것이다. 또한 미술관이라는 기관은 길들이는 곳이다. 작품이나 관객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위험한 시선, 위험한 의미를 길들이는 곳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길들이기의 수단은 미술, 예술이라는 미학적 교양이라는 코드들이다. 그런 코드에 깃들어 있는 규율적 질서는 디스플레이의 수사, 혹은 디스플레이라는 수사를 통하여 내면화된다. 또한 미술관은 지식과 권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산에 대해서나,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집단적인 기억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큐레이터의 권력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순간은 어떤 전시가 미술사의 획을 긋는 중요성을 인정받을 때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업적이 유명해져서가 아니라, 미술사라는 지식을 낳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즉 지식은 권력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관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고정되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 미술관의 권위는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있다. 미술관의 규율과 경계짓기의 관습을 거부, 재검토, 재편성하는 작업들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전시의 형태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전의 이론가들은 이미 예술로서의 사진의 어떤 측면이 저항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예술로서의 사진에 따라 다니는 해로운 관념은 아직도 예술작품이 유일무이하고 독창적이라는 믿음이다. 벤야민의 예측과는 달리, 사진과 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예술제도는 예술품, 작가의 아우라를 강화시키는 여러 가지 전략들,수사들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아우라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수시로 그 전략과 모습을 바꾸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기술복제수단으로서의 사진이 아우라의 붕괴를 가져 왔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형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사진과 영화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예술에 아우라, 즉 복제 불가능한 일회적 현존성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품이란 것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다. 즉 진품이라는 개념은 가짜라는 개념과 같이 나타난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제도적 장치 없이 그런 개념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까지 진품이라는 개념, 혹은 진짜의 어떤 것이라는 개념이 확장될 때 예술로서의 사진도 두터운 아우라에 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 아우라의 두께는 회화나 음악 등 다른 더 오래 된 예술의 장르 못지 않다. 사진가들은 작가의 명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진품으로 추앙 받는다. 그들은 또한 진품성의 유지를 위해 네거티브 필름을 파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아우라에 대한 이의제기와, 그것의 유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문화정치적인 갈등이다. 더글러스 크림프는 옳게도, 미술관이 아우라를 회복하려는 시도 그 자체를 미술관의 위기로 보았다. 그는 예술사진의 승리도 그런 위기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다. (크림프, “포스트모더니즘과 사진”, 더글러스 크림프, 『현대미술의 지형도』 이영철 엮음, 시각과 언어)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사실은 예술로서의 사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진은 확실치 않은 예술이다. 예술가가 대상에 투사하는 힘, 혹은 그 결정체로서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무질서하고 우연적이며, 혼돈에 가득 찬 것이라는 점에서 사진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 아니다. 다른 예술의 형태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겠으나 사진의 경우 이미지와 대상의 물리적인 밀착성에서 오는 객관성의 외양과 확실성의 외양 때문에 그 불확실성은 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확실한 사진에 확실성을 가져다주는 요인은 텍스트의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작가라고 하는 관념이다. 그것은 예술사진에 깃들어 있는 독창성이라는 망령과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이미지의 뒤에 있는 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재현에 의해 시작된 욕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한에 있어서, 원본은 항상 연기된다. 재현은 원본의 부재 속에서만 일어난다. “사진은 노출이 이루어지기 전에 전부 구상되어야 한다”는 웨스턴의 말은 재현의 뒤에 뭔가 선험적인 것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지만 그런 선험적인 어떤 것은 그의 마음속에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더글러스 크림프는 그것은 세계 속에 있으며 웨스턴은 그것을 복사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글러스 크림프, 위의 글, p.319) 사진이 가지고 있는 외관상의 진실성이 여러 가지 장치(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공모관계 속에 일치시키는 재현의 장치,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 수사학, 이데올로기 등, 사진을 분류, 정리하는 체계로서의 아카이브, 규율적 제도로서의 미술관)에 의존하고 있음을 은폐, 혹은 비가시화 하는 한에 있어서 사진의 객관성과 진실성이 사진의 예술성의 토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의 생산에 동참하는 것이다.


조 스펜서<나 자신을 사진 속에 넣기> 198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에비게일 솔로몬-고도가 자신이 옹호하는 작가들에 대해 말하면서, “예술사진이 정확히 모더니즘적인 예술형식으로서의 그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때 보여 주었던 경건함과 예의바름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던 방식들 때문”에 그들을 옹호한다고 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단순히 그들 예술가들(빅터 버긴, 새라 찰스워드, 바바라 크루거, 셰리 레빈, 신디 셔먼 등)의 태도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대항하고 있던 사진의 권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즉 다시 솔로몬 고도의 말을 빌자면, “사진이 완전히 아우라적이고 주관화된 자율적 순수예술로서 제도적으로 강화되고 정당화되는 것과 같은 병적인 징후”는 20세기 후반 고급예술로서의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모습이다. 그 권력이란 미술관 권력, 작가권력, 작품권력, 비평권력 등인데, 이 모든 권력은 고도의 전문지식, 기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고 있고, 그것들을 다시 생산한다. 그러므로 이는 생산적인 권력이다. 즉, 사람을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특정한 형태로 태어나게 하는 권력이다. 예술로서의 사진 속에는 그런 권력이 삼투해 있다.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사진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문제를, ‘이러이러하게 하면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필요충분조건을 밝히는 것은, 그 조건이 설사 아무리 논리적으로 명확한 것이라 해도, 경계의 논리를 다시금 되살린다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다. 단지, 그것은 사진이 제도적인 틀 속에서 보여지는 방식과, 그 속에서 소통되는 의미에 대한 재구성과 재검토를 포함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만약 예술이라는 것을 경계의 문제가 아니고, 거꾸로 개입의 문제로 본다면 사진이 어떤 영역에 개입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즉, 미술관에 대해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미술관의 작동방식에 개입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또한 보다 더 큰 테두리, 즉 출판, 보도, 증명, 기록, 감시, 관찰 등의 영역에서 사진이 보여지는 방식들이야말로 사진이 개입해야 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그 보여지는 방식이란 것이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에 어떤 코드가 작용하고 있는가 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선은, 사진적 재현의 구조 전체가 문제인 것이다. 즉, 우리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이미지 속의 시선, 혹은 카메라의 시선과 보는 이의 시선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런 관계를 빅터 버긴은 두 시선간의 공모관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공모관계에서 이데올로기적 작용이 일어난다. 사진이 전달하는 내용 속에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사진 속의 시선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선의 역사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며, 사진을 보는 주체도 그런 시선의 역사와 더불어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이 사진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큐멘타리나 보도, 증명사진에서 사진의 존립근거 그 자체로 여겨지고 있는 사진의 진실성(facticity)과 증거능력을 가능케 하는 부분도 개입의 영역이다. 이는 푸코가 말한 진리의 체제(regime of truth)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진의 진실성이 사진이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진리(truth)를 생산하는 담론적인 체제 전반의 문제이다. 즉 사진의 규격에서부터 사진을 찍는 방식, 태도, 어법에 대해 부여되는 코드, 그 코드가 통용되는 제도적 실천이 사진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 혹은 진실성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체제에 의해 확증되고, 진리의 담론 속에서 실천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 대한 검토 없이 사진을 진실 되게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다큐멘타리적 사고방식은 아주 소박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진들의 구체적인 실천, 기능방식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진이 감시카메라, 정찰, 주민등록체제 등을 통해 감시와 관리의 기능을 하는 것, 그리고 사진이 그런 경우에 증거로서 작용하는 체제는 일상속에서의 사진의 의미의 아주 큰 부분이다.
또 다른 개입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문제들과도 연관되는 영역인데, 사진과 정체성의 문제이다. 즉 어떤 종류의 사진적 표상(representation)과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카자 실버만(Kaja Silverman)의 규정을 따라, 정체성이란 ‘외적인 이미지를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진, 건축, 자연환경, 의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문화적 표상들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표상에 자신을 맞출(align) 것인가 하는 전략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체성의 전략, 혹은 정체성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이미지는 항상 고도의 선택적인 판단의 결과이며,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만드는 그 구조는 바로 성적,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사진은 만국 공통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견해이다. 모든 사진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어필하며, 거기에는 자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정체성의 전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조 스펜서<나 자신을 사진속에 넣기> 1985


따라서 개입의 영역들은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이들 모두에 공통되는 개입의 전략이나 방법, 코드가 있을 수는 없다. 각기 다른 영역에 다른 전략이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개입이 없이는 더 이상 예술이라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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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참고로 삼았거나 논의한 사진 이론의 갈래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문헌목록과 함께 정리했으므로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론의 중요한 갈래를 든다면 그 초기적인 형태로서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시작되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문화산업비판과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론으로부터 세례를 많이 받았으면서 이들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는 존 버거와 수잔 손탁을 들 수 있다. 두 사람 다 벤야민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버거는 어떻게 하여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체험의 단절과 파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사진적 실천은 무엇인가에 대해, 손탁은 벤야민과 바르트를 절충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문헌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발터 벤야민 지음, 반성완 옮김, 민음사
『시각과 언어1--산업사회와 미술』 최민, 성완경 옮김 열화당
『이미지와 글쓰기--롤랑 바르트의 이미지론』 롤랑 바르트 지음, 김인식 편역, 세계사
『신화론』 롤랑 바르트 지음, 정현 옮김, 현대미학사
『텍 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동문선
『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존 버거 지음, 편집부 옮김, 동문선
『말 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장 모르 지음, 이희재 옮김, 눈빛
『사진이야기』수잔 손탁 지음, 유경선 옮김, 해뜸


한 편, 사진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는 심리학, 해체주의, 담론이론 등으로부터의 영향을 통해 좀 더 넓은 상호텍스트성의 바다로 나아간다. 이제 사진은 단순히 읽어야 할 기호나 사회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주체를 구성하는 문화적 표상이며, 철학, 역사학, 비평이론 등 인문학의 폭넓은 주제들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또한 오늘날 보여지는 바와 같은, 사진에 대한 관심이 단지 매체에 대한 지식의 양이 순차적으로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와서, 장르 간의 경계의 해체, 심지어는 경계라는 개념 자체의 해체, 기계적인 이미지 생산방식에 대한 새로운 반성, 매체와 설치 등을 중시하는 작가들의 경향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여기서는 신체라든가 감시, 욕망, 시선 등 이전의 이론에서는 다루지 않던 주제들이 논쟁의 핵심이 된다. 다음의 저술들은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지형도--비평, 매체, 제도분석』 이영철 엮음, 정성철 외 옮김, 시각과 언어
『문화연구이론』 정재철 편저, 한나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존 스토리 지음, 박모 옮김, 현실문화연구
『프 로이트의 문학예술이론』 허창운 외 지음, 민음사
『알기 쉬운 자끄 라깡』 마단 사럽 지음, 김해수 옮김, 백의
『라깡의 욕망이론』자크 라깡 지음, 권택영 옮김
『포스트모던의 조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유종완 외 옮김, 민음사
『포 스트모더니즘론』 정정호, 강내희 편, 문화과학
『포스트모던 문화--현대이론서설』 스티븐 코너 지음, 김성곤, 정정호 옮김, 한신문화사
『데리다와 푸코,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마단 사럽 외 지음, 임현규 편역, 인간사랑
『권력과 지식--푸코와의 대담』 콜린 고든 지음, 홍성민 옮김, 나남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나남
『담 론의 질서』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샛길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미셸 푸코 외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
『육 체의 문화사』 스티븐 컨 지음, 이성동 옮김, 의암출판


이런 모든 논의의 갈래들을 포괄하면서, 사진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서구에서 일어나는 가장 집약적인 논의는 다음과 같은 이론모음집의 형태를 띠고 있다. 빅터 버긴이 편집한 Thinking Photography (London: MacMillan, 1982)는 이런 경향의 책으로는 교과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기호학, 심리분석, 마르크스주의, 권력이론 등 서구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지적인 흐름들이 사진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되고 있다. 사진이론에 대해 알아보자면 다음의 책들은 필수적인 것들이다.
Bolton, Richard. [ed.]. The Contest of Meaning: Critical Histories of Photography. Cambridge,
Mass.: MIT Press, 1989.
Squires, Carol. [ed.] The Critical Image--Essays on Contemporary Photography. Seattle: Bay Press, 1990.
Petro, Patrice. [ed.] Fugitive Images--From Photography to Video.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Evans, Jessica. [ed.] The Camerawork Essays--Context and Meanign in Photography. London: Rivers Oram Press, 1997.
Spence, Jo and Patricia Holland. [eds]. Family Snaps: The Meanings of Domestic Photography. London: Virago, 1991.
Wallis, Brian. [ed.]. Art After Modernism: Rethinking
Representation. New York: Godine,1984.
Doane, Mary Ann, Patricia Mellencamp and Linda Williams. Re-Vision: Essays, in Feminist
Film Criticism. Frederick, MD : University Publications of America, 1984.


출처: 포럼a 4호

    http://www.foruma.co.kr/__v2/faForumA/view.asp?fNum=69&showPublishNo=4&page=1&whichPage=1&write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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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부/사진2007. 7. 11. 11:00

현 대 사 진 의 길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 영역: John E. Bowlt | 영문중역: 양현미



보리스 쿠쉬너(Boris Kushiner)의 “공개 편지”에 대한 답변인 이 논문은 로드첸코가 사진을 통해 시각적 사유방식을 “혁신”시킬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매우 정교하게 진술해 놓은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관이 지각상의 습관들과 회화형식의 관례들로 인해 어쩔 수없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뒤흔들어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시각적 충격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사진이 회화로부터 물려받은 시각적 전통들은 도시화된 기술적인 세계를 묘사하는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카메라만이 동시대의 삶을 반영할 수 있다”라고 로드첸코는 주장한다. 로드첸코는 그의 목표가 개인적인 사진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신문사진의 변혁을 고무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광범위한 관중에게 새로운 시각적이고 지각적인 습관들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쿠쉬너에게

당신은 “상향시점(from below up)과 하향시점(from above down)”에 관하여 흥미로운 문제를 지적했으며, 이러한 사진의 시점들이 나에게 “전가되어온” 만큼(만약 Sovetskoe foto지의 “교양 있는” 언어를 사용해도 좋다면), 이에 응수해야 한다고 느낀다.
사실 나는 다른 모든 시점들보다 이러한 시점들의 사용을 지지하는 바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모든 나라의 미술사나 회화사를 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회화들이, 약간의 극히 작은 예외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배꼽 높이나 눈 높이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화와 원시 회화들에서 외관상 받은 인상을 새의 시점으로 간주하지 말아라. 많은 인물들을 담을 수 있도록 수평선을 올려놓은 데 불과하며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눈 높이에서 제시되어 있다. 함께 보면 전체는 현실에도 새의 시점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위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각각의 인물은 정확하게 정면 시점과 측면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그들은 인물 위에 인물이 놓여있지 사실주의 회화들에서처럼 인물 뒤에 인물이 놓여있지 않다.
중국 미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들은 한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어떤 대상의 가능한 모든 사선들(declivities)은 운동의 순간(단축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관찰의 시점은 언제나 중간 높이이다.
사진이 실린 오래된 잡지들을 살펴보라─그러면 당신은 똑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가끔 다른 관점들을 접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에 불과하다. 가끔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런 새로운 시점들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 잡지들을 많이 사며 사진을 모으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은 전부 합쳐서 약 36점 모았을 뿐이다.
이런 위험한 스테레오타입 뒤에는 인간의 시각적 지각을 교육시키는 편향되고 인습적인 관례, 시각적 이성의 과정을 왜곡하는 일방적인 접근방식이 놓여있다.
회화적 창안의 역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Vereshchagin의 회화1나 Denner의 초상화들2처럼 처음에는 어떤 것을 “실물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욕망이 있었다─그들은 프레임 밖으로 막 기어 나올 것 같았으며 피부 구멍도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화가들은 칭찬 받기는 커녕 “사진가” 같다고 비난받았다.
회화적 창안의 두 번째 길이 세계에 대한 개인주의적이며 심리학적인 관념의 뒤를 이었다. 정확하게 동일한 유형의 변형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 등의 회화들에 묘사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사용했고, 루벤스는 자신의 아내를 사용했다.
세 번째 길은 양식화, 회화를 위한 회화였다: 반 고호, 세잔,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그리고 마지막 길은 추상, 비대상성이었다: 그때 사실상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유일한 관심은 과학적인 것이었다. 구성, 질감, 공간, 무게 등.
그러나 새로운 시점, 원근법, 그리고 단축방법을 탐색하는 길들은 전혀 가보지 않은 상태였다.
회화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AKhRR3의 견해대로라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어느 누구도 시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사진─새롭고, 신속하며, 구체적인 세계의 반영체─은 반드시 세계를 모든 관점에서 보여주고 모든 방면에서 볼 수 있는 국민의 능력을 계발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사진은 이것을 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중대한 때에 “회화적 배꼽”의 심리학이 시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현대의 사진가를 꾸짖고 있다.
그것은 Sovetskoe foto의 “사진-문화의 경로들”과 같은 사진잡지의 무수한 논문들을 통해 성모와 백작부인들을 그린 유화 같은 모델들을 제공하면서 그를 가르치고 있다.
만약 대천사, 그리스도, 그리고 군주들의 구성에 능한 세계의 권위자들이 제시한 사례들로 인해 시각적 이성이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소비에트 사진가 또는 기자를 갖게 될 것인가?
내가 회화를 버리고 사진을 시작했을 때, 나는 회화가 자신의 무거운 손으로 사진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 당신은 현대 사진의 가장 흥미로운 시점들이 하향시점과 상향시점이며 배꼽 높이가 아닌 다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사진가는 회화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쓰기가 힘들다. 나의 사고과정은 시각적이며, 단편적인 아이디어들만 떠오른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에 관해 쓴 적이 없었으며, 사진, 그것의 임무와 성공에 관한 논문은 하나도 없다. 모홀리 나기(Moholy-Nagy) 같은 좌파 사진가들 조차 “내가 작업하는 방식”, “나의 길” 등과 같은 개인적인 논문을 쓴다. 사진잡지의 편집자들은 화가들을 초빙해서 사진의 발전에 관해 글을 쓰게 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신문사진가들을 다룰 때도 아둔하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문사진가들은 그들의 사진을 사진잡지에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있으며 사진잡지 스스로 일종의 미술계(Mir iskusstva, The World of Art)4로 변화하고 있다.
Sovetskoe foto에 실린 나에 대한 편지는 우스꽝스러운 중상모략에 불과하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사진에 투하된 일종의 폭탄이다. 나를 깎아내리면서, 그것은 또한 새로운 시점들을 사용하고 있는 사진가들을 위협하려고 하는 것이다.
Mikulin이 대표로 있는 Sovetskoe foto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너희들은 “로드첸코처럼” 작업하고 있으며 따라서 너희의 사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문화화되어 있는가 보여주기 위해, 잡지들은 현대 외국 사진가들의 사진 한 두점을 싣고 있다─미술가의 사인도 없고 출처도 명시하지 않고 말이다.
이제 본래 문제로 되돌아가자.
다층건물들로 이루어진 현대도시, 특수하게 디자인된 공장들과 설비들, 2층이나 3층 규모의 상점 창문들, 전차들, 자동차들, 조명장치가 된 표지판과 간판들, 쾌속선들과 비행기들─당신이 자신의 『서구에서의 103일(On Hundred and Three Days in the West)』5에서 그토록 멋있게 묘사했던 그 모든 것들이─시지각의 평균적인 심리학을 바꾸어놓았다(약간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카메라만이 동시대의 삶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 합리성이라는 구시대적인 법칙들은 사진을 그들과 동일한 복고적 원근법을 지닌 일종의 낮은 등급의 회화, 에칭, 또는 판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의 힘 때문에 미국에서 68층 건물 사진을 배꼽 높이에서 찍게 된다. 그러나 이 배꼽 높이는 34층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접해 있는 건물 안으로 기어올라가 34층에서 68층짜리 거인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만약 인접한 건물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동일한 정면의 부분적인 광경을 얻게 된다.
길을 걸어갈 때 당신은 건물들을 위로 쳐다본다. 위층에서는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과 보행자들을 내려다본다.
당신이 전차 창문이나 자동차에서 힐끗 바라보는 모든 것, 당신이 극장의 청중석에 앉아 내려다 볼 때 얻게 되는 광경─모든 것이 고전주의적인 “배꼽” 시점으로 변형되거나 정돈되어 버린다.
그가 맨 위층 관람석에서 『Uncle Vanya』를 내려다 볼 때, 관객은 그가 보는 것을 변형시킨다. 그의 마음 속의 중간-시점(mid-view)에 따라 『Uncle Vanya』는 실제의 삶처럼 전개된다.
내가 파리에 있으면서 에펠탑을 멀리서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6 그러나 버스를 타고 매우 가까이 지나갔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철근으로 된 저 선들이 좌우로 위로 뻗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시점은 나에게 그것의 규모와 구조에 대한 감동을 주었다. 배꼽 시점은 당신이 본 모든 엽서에 지겹게 찍혀있는 달콤한 얼룩같은 것을 제시해 줄 뿐이다.
당신 은 공장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안에서, 아래로, 위로 조사하는 대신 왜 공장을 멀리서 그리고 중간 시점에서 보려고 애쓰는가?
현실에서 원근법이 왜곡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카메라 자체가 원근법을 왜곡하지 않게 되어 있다.
만약 거리가 좁아서 옆으로 물러날 공간이 없다면, “법칙들”에 따라 당신은 아마도 렌즈가 있는 카메라 앞면을 들어올리고 뒤를 기울일 것이다 등등.
이 모든 것은 “알맞는” 투시원근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들어 비로소 일명 아마추어 카메라들에도 광각 렌즈들이 사용되게 되었다.
수백만장의 스테레오타입 사진들이 도처에 넘치고 있다. 그들 간의 유일한 차이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좀더 성공적이거나 어떤 것은 에칭을 모방했거나 다른 것들은 일본 판화를 그리고 나머지들은 여전히 “렘브란트” 작품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사건들을 담은 사진들은 신문사진이라고 불리는 반면, 풍경, 두상, 나체여인들을 찍은 사진들은 예술사진이라고 불린다.
신문사진은 저급한 어떤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응용사진, 이런 저급한 종(種)이 사진에 혁명을 일으켰다─잡지와 신문 간의 경쟁을 통해서, 사진에 필수적인 많은 노력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종류의 빛과 모든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든 사진을 찍는 것이 필수적인 순간에 이를 수행함으로써.
이제 새로운 투쟁이 생겨났다: 순수사진과 응용사진 간에, 예술사진과 신문사진 간에.
사진-보도에서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역시, 바로 이런 진정한 활동 속에서도, 스테레오타입과 거짓된 리얼리즘이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놓았다. 나는 야유회를 갔다가 기자들이 춤을 각색하고 그림 같은 일군의 사람들을 언덕에 배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림 같은” 무리에 서둘러 끼여든 소녀들이 어떻게 차에 숨어서 그들의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했는지 재미있다.
“자 가서 사진을 찍읍시다!”
주제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사진가가 아니라,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주제이다. 그리고 사진가는 회화의 법칙에 따라 올바른 자세를 그에게 제시한다.
여기에 『Die Koralle』라는 잡지에 실린 사진 몇 장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연대기, 한편의 민족지, 하나의 기록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가가 따라오기 직전까지 이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으며 자기 자리에 있었다.
사진가가 그들을 갑자기, 모르는 사이에 찍었다면 그가 포착했을 장면들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모르는 사이에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 반면에 포즈를 잡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빠르고 쉽다. 그리고 당신의 고객도 오해를 하지 않게 된다.
잡지들에서 당신은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을 실물 크기보다 더 크게 확대해서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메라를 그들에게 가깝게 들이댄 사람은 사진가가 아니다.
카메라에 등장한 것은 그들이다.
새로운 사진의 주제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그들은 과거의 전통에 따라 찍히고 있다.
모기들은 배꼽 높이에서 레핀의 Zaporoahtsy8의 회화적 법칙에 따라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는(see) 관점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쳐다보는(look at) 관점에 따라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매우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대상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플라흐(Flach)의 다리에 대해 쓰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꼽 높이에서 찍힌 것이 아니라 지표면 높이에서 찍힌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당신은 카우프만(Kaufman)과 프리드리앤드(Fridliand)의 슈코프(Shukhov) 라디오 타워 사진들이 나쁘다고, 타워들이 정말 뛰어난 구조물이라기 보다는 빵바구니를 닮았다고 쓰고 있다. 나도 정말 동의한다. 그러나..." 만약 대상이 새롭고 당신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면, 어떤 시점이라도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 침해할 수 있다.
프 리들리앤드만이 여기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지 카우프만은 아니다. 카우프만의 사진은 다양한 시점에서 타워를 찍은 여러 개의 프레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러한 광경들은 움직인다. 카메라가 돌고 타워 위에서 구름들이 떠다닌다.
Sovetskoe foto는 “사진-회화”가 마치 독특하고 영원한 어떤 것인 양 이야기한다.
정반대이다. 우리는 마치 주제를 포위하기라도 하듯이─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여러 개의 다른 시점에서 그리고 다른 사진에서는 다양한 위치에서 주제를 찍어야 한다. 사진-회화를 만들지 말고 기록적 (예술적이 아니라) 가치가 있는 사진-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요약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시점에서 보는데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친숙한 주제들을 완전히 예기치 못한 관점에서 그리고 완전히 예기치 못한 위치에서 찍는 것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주제들은 또한 주제의 완전한 인상을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찍어야 한다.
끝으로 나는 나의 주장을 예시해줄 수 있는 몇 개의 사진들을 동봉한다.
나는 일부러 같은 건물의 사진들을 골랐다.
첫 번째 것은 미국 앨범 『아메리카』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진들은 가장 스테레오타입의 방식으로 찍혀져 있다. 그들을 찍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왜냐하면 인접한 건물들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정되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모두 올바른 원근법의 원리에 따라 미국을 이런 식으로 보도록 키워졌다.
실제로는 그렇게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동일한 건물의 두 번째 세트의 사진들은 독일 좌파 건축가 멘델슨(Mendelsohn)9의 것이다. 그는 거리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직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기에 소방수가 있다. 매우 사실적인 시점이다. 만약 당신이 창문을 내다본다면 그를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얼마나 충격적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물들을 자주 쳐다보지만 그들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쳐다보는(look at) 것을 보지(see) 않는다.
우리는 사물들의 특이한 원근법들, 단축법들, 위치들을 보지 않는다.
평범한 것, 용인된 것을 보는 데 익숙해진 우리들은 시각의 세계를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 논법을 혁신해야 한다.
“배꼽 시점을 제외한 모든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 수용될 때까지.”
“그리고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시점들은 그러한 하향시점과 상향시점 그리고 그들의 대각선들이다.”

8월 18일, 1928년



1 Vasilii Vasilievich Vereshchagin(1842~1904), 사실주의 화가이며 세부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한 전쟁 장면과 민족지적인 구성으로 유명했다.
2 Balthasar Denner(1685~1749)는 정확하기로 유명한 초상화가이자 미니어처 화가였다. 그는 살색을 묘사하기 위해 초상화에 특수한 유약을 사용했으며 이런 이유에서 “Porendenner”라는 별명이 붙었다.
3 AKhRR: The Association of Artists of Revolutionary Russia. 혁명러시아예술가연맹
4 World of Art는 1890년대에 Sergei Diaghilev와 Alexander Benois가 성페테르스부르그에서 이끌던 일군의 미술가들, 미학자들, 작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들은 장식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쏟음으로써 러시아 미술의 오래된 전통을 새롭게 하려고 하였다. 이 단체는 The World of Art라는 이름으로 잡지(1898~1904)를 발견했고 일련의 전시들(1899~1906)을 조직했다. 1906년에 시작된 분열을 겪은 후에, 동일한 이름을 견지해온 그룹이 1910년~24년 동안 전시 활동을 재개했다.
5 Boris Kushner는 묘사들과 일화들을 담은 이책, Stotri dnia na Zapade을 1928년 모스크바에서 출판했다.
6 1925년 3월 19일~6월 10일 까지 이루어졌던 로드첸코의 파리방문은 국제장식미술엑스포 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럄oratifs와 같은 시기였다. 그는 소비에트관을 위해 노동자의 독서실을 디자인했다. 파리에서 보낸 그의 편지들은 Novyi lef, no.2(1927)에 실렸다.
7 Die Koralle는 베를린에서 1925년~41년에 출판된 도판이 있는 대중적인 과학잡지였다.
8 The Zaporoahtsy(1878~91)는 사실주의자 Ilia Efimovich Repin(1848~1930)이 그린 화려한 회화로서 Zaporzhe Cossacks가 터키의 Ottoman이 그의 제국과 연합하자고 청하는 것을 거절한 일화를 그린 것이다.
9 Mendelsohn에 대해서는 pp.221(출전)의 상단을 보시오.

 

**출처: 포럼a 4호

   http://www.foruma.co.kr/__v2/faForumA/view.asp?fNum=51&showPublishNo=4&page=1&whichPage=1&write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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