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자유교육 *** 보다 맘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송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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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家윤家 LEEYOON.COM - 덴마크 자유교육 : 삶을 위한 학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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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학교
-덴마크 자유학교 '폴케호이스콜레'의 세계
시미즈 미츠루(일본 그룬트비협회 간사)
@녹색평론사
이家윤家 LEEYOON.COM - 삶을 위한 학교 :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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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게는 더 많은 학교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삶이 필요하다!
프리스콜레
교육에 대한 국가의 독점을 거절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힘을 합쳐 정치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자유로운 형태로 설립, 운영하는 독자적 교육기관인 자유학교
폴케호이스콜레 (Folke Højskole·Folk Highschool)
'대화와 상호작용'의 정신
시험이 없고, 졸업해도 자격증을 주지 않고, 기숙사에서 교사와 학생 전원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커리큘럼은 자유롭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
생산과 생활, 기술이 전부 하나가 되는 일종의 코뮌(공동체)과 같은 형태의 학교
강의보다는 대화와 실천이 우선, 삶의 불가사의와 신비를 배우면서 자립정신 체득
니콜레이 그룬트비(1783~1872)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말하기 전에, 나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을 하나의 인격으로 흥미롭게 발견하는 일은 전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만을 유일하게 흥미로운 존재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된다 함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교육(uddannelse)이라는 단어는 훈련을 뜻하며, 원숭이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 사용할 말이 아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국민교육을 '폴케오프뤼스닝(folkeoplysning)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언어'를 '살아있는 귀'로 : '살아있는 언어'란 그것을 만하는 사람의 뜨거운 마음이 때와 장소를 만나 숨결을 토하게 된 언어를 의미한다. 제아무리 마음을 담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의 가세가 없이는 헛돌고 만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듣는 사람의 귀는 ‘살아있는 귀’가 되기도 하고 ‘죽은 귀’가 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위압적으로 강요하듯 말하면 아무리 ‘살아있는 언어’라도 듣고 있는 학생에게는 거북스러운 말로밖에는 안 들릴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크리스텐 콜(1816~1870)
바람의 교실
이 학교는 교사(敎舍)도 없도 교사도 없습니다. 하물며 시험도 교과서도 없습니다. 그래도 학교입니다.
우리 교실에는 벽이 없기 때문에, 꽃향기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바람소리마저 전해져 옵니다. 천장은 그 어떤 거인도 닿지 않을 하늘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도 내립니다. 일단 강사가 있지만 모두가 선생님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원숭이도 소도 아니기 때문에, 가르침이니 교육이니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당신이 만들어가는 학교이고, 당신 자신의 ‘나의 학교’입니다.
또 이 학교는 농(農)학교입니다. 하지만 농업학교와도 다르고 농민의 학교와도 다릅니다.
논을 만드는가 하면 밭도 만들고, 가끔 바다에도 나가도 산에도 나가 배웁니다….때로는 어부에게 배워 김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농학교였지만 나중에는 어떤 학교가 될지 모릅니다. 다만 다시 한번 ‘농사’를 재평가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티볼리공원
인간적인 규모의 공원. 온갖 기술을 동운한 자극적인 탈것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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