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사진2007. 7. 11. 11:00

사진과 예술 - 위상의 재편성을 위하여 -

이 영준(사진평론)


오늘날 많은 한국의 사진가들이 사진을 제대로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가 없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또한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 없다는 것(현재 ‘사진영상의 해’를 기하여 추진되고 있는 사진사박물관의 의의와 미래의 파급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에 대해서도 한탄을 하며 사진도 회화나 조각같이 버젓이 미술관의 공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그 하나는 한국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를 미술관이라는 제도 속으로 편입해도 좋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1990년대 말의 한국에는 내세울 만한 사진가도 많고 (이제 사진계에는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스타급의 사진가들이 일정한 층을 이루고 있다) 사진의 어법도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 자신감이란 사진이 이제는 독자적인 예술로서 자리를 굳혔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두 번째 요인은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기존의 갤러리나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예술권력의 생산, 재생산 구조에 사진도 동참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예술의 장르들이 미술관, 큐레이터, 비평가, 딜러들의 연합적인 노력에 의하여 오늘날의 지위에 이르게 되었듯이, 사진도 그러한 지위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사진이 그렇게 되려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몇 가지 있다.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가진 공간이 있다고 해서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과연 한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반성해 보면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간다는 것에 어느 정도의 용이함, 혹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비평가가 얼마나 되는가, 있다면 그들은 사진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환영하고 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또한 사진이 그저 전시만 되었다가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매매가 이루어지려면 사진전문 딜러나, 사진매매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있는가도 따져 봐야 한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이 부정형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미술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나아가 사진의 예술성이 인정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의 사진에서의 예술권력은 회화나 조각에서와 같이 제도적으로, 담론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작가들의 서열, 위계질서에 의존하고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아직도 예술로서의 사진의 위상은 한국에서는 불안한 것이다. 그것은 사진 자체의 질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술권력의 문제는 예술이 그 특유의 미적 담론으로 말미암아 설득력을 가지는 바로 그런 구조를 어떻게 획득하느냐의 문제인데, 사진의 미적 담론은 무엇인가, 나아가 사진을 미적, 예술적으로 규정해 줄 수 있는 별개의 담론의 체계가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런 담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진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곧바로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관은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감추는 공간이고,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닫혀 있는 곳이며, 자유로와 보이지만 규율과 권력이 작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이제까지 미술이 감수해야 했던 그런 모든 조건들을 감수하면서 미술관에 들어갈 것인가는 깊이 따져 봐야 할 문제이다. 결국 미술관은 이미지를 다루는 다른 모든 기관들처럼 규율적 권력을 행사하는 곳인데, 예술작품이 거기 수용된다는 것은 그런 권력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하면 그런 권력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런 길들여지는 절차는 절대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무언가 진리를 뒤에 감추고서 겉으로는 허구적인 것만을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또 “예술의 진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즉 예술이라는 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의 작용이다. 결국 사진이 미술관에 수용되야 한다거나 갤러리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예술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예술권력이 새로운 대상을 받아들일 때 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의 신입생, 훈련소에서의 신병, 감옥에서의 신참을 받아들일 때 하는 일들과 비슷하다. 즉 그들의 기이함, 모남, 튀는 성질들(영어로 ‘이디오신크라시’(idiosyncracy)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깎고 다듬어서 수업 받을 수 있는 사람, 훈련받을 수 있는 사람, 교화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꾼다. 즉 사회 속에서의 규율적인 기관들은 주체를 생산하되, 규율적으로 통제하는 식‘으로만’ 주체를 생산한다. 미술관도 작품에 대해 같은 일을 한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예술품들은 얼핏 보면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것 같지만 미술관의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만 그런 것이다. (이 불의 썩는 냄새나는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원폭투하 폭격기 ‘에놀라 게이’를 전시하려고 했을 때 일본인들을 원폭의 희생자로 다루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아 보라.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도시와 영상전’에서 사진 속의 성기의 이미지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상기해 보라.) 이런 사례들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개념적으로도 끝이 없다. 왜냐하면 미술관 하나 하나는 ‘이디오신크라시’를 배제하는 방법과, 철학과, 코드를 가지고 일상적으로 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라는 행사와, 거기에 따라붙는 평문, 카탈로그, 전시제목 등의 텍스트들은 큐레이터의 전문가적 권위와 더불어 사진이라는 텍스트의 의미에 제한을 가하고, 그 해석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사진의 의미 자체에 규율을 가하고 길들인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을 지냈던 존 사코우스키일 것이다. 그는 1960년대에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거울과 창>이라는 전시에서, 그리고 1965년도에 출간된 <사진가의 눈>이라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모더니즘 사진의 규칙을 명확하게 밝혀 놓았는데, 최근의 평론가들은 이 때의 사코우스키의 전시방식이 사진의 풍부한 내러티브를 협소화하고, 이미지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사진가의 유아독존적인 주체성을 강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더니즘적 규범에 사로잡힌 큐레이터의 시각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큐레이터의 권력이 한 시대의 사진의 흐름을 일정한 내러티브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프레임을 씌운다는 점이다. 사코우스키에 대한 비판에서 드러나지만,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의 내용은 바로 이런 식의 배제의 규칙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 대한 고려없이 순진하게 사진도 미술관에서 대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의미없는 진술이다.
사실 예술로서의 사진의 위상은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불안한 것이었다. 사진의 역사는, 사진이 예술의 위상을 획득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사진은 그 자체의 전통의 부재로 말미암아 다른 예술 장르와의 기생적인 관계를 통해서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진은 그림의 망령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사진은 회화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듯 회화를 아버지처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모방과 반항을 되풀이 해 왔다” 이런 모방의 좋은 예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회화주의 사진, 반항의 예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나 에드워드 웨스턴 등에 의해 이루어진 스트레이트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초기에 사진은 제도적으로나(19세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전시의 일부로 열렸던 사진의 전시; 회화를 복사한 것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초기의 사진가들;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 개설, 이후 사진을 모더니즘 예술의 일부로 확립해 준 중요한 전시 등), 담론적으로나(초기 초상사진의 미학, 규범, 코드, 소유형태들; 회화주의(pictorialism)같은 사조,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미술이나 문학의 한 형태로서의 사진; 그녀가 자신을 한 사람의 작가로 프로모션한 방식 등) 기생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진가들은 사진이 미술품처럼 팔리거나, 미술관에서 기존의 미술품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을 사진의 지위격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의 중요성과 특성은 여타의 다른 예술과는 다른 제도적, 담론적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사진은 회화같이 미술관의 벽면에 전시됨으로서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다른 시각적 활동영역간의 위계(hierarchy)의 수립이다. 미술관은 인간의 시각예술의 활동이 들어갈 수 있는 궁극적인 신전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그것은 미술관이 다른 제도적 장치들에 비해 높은 위계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진은 회화나 조각처럼, 하나의 물건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예술작품과는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사진은 음악이나 연극처럼 수행(perform)되는 것, 나아가 그 수행의 와중에서 관객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술로서 간주돼야 할 것이다. 즉 보도, 다큐멘타리, 대중소비, 기록, 관찰, 신분증명, 법적 증거 등의 다양한 영역에 퍼져 있는 사진들은 그것이 대상을 기계적으로 찍은 객관적 이미지라는 사실 때문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이 요구하는 아주 이질적이고 상이한 담론들(뉴스, 진실, 재미, 여가, 과학, 수사, 정찰, 행정) 속에서 사진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그 가치를 부인하는 요인들(어떤 특정한 사진을 가짜라고, 아니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 주장들)과 끊임없이 타협, 절충을 벌이며 나름대로의 실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진의 의미는 기호학에서 말하듯이 텍스트 안에 쓰여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지고 수행되고 작동되는 것이다. 미술도 이런 타협을 하지만 그 공간은 대체로 미술관 안에 한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사진의 작동범위는 훨씬 더 넓다.


버티용 카드 1913 <프랑스 경찰의 범죄자 관리시스템인 버티용 시스켐을 사용하는 미국 산디에고 경찰화일

따라서, 사진이 기존의 예술제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수행성에서 오는 의미들을 포기하고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지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우리는 예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미학의 역사에서 말하는 예술의 정의를 들이대어 사진의 예술성을 따지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을 뿐 더러,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진이 예술이라고 했을 때 그 예술은 일정한 제도적 틀 안에서 수행되는 예술이 아니라, 그런 틀의 바깥에, 혹은 그 틀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사진, 증거로서의 사진, 관찰의 수단으로서의 사진, 정체성의 식별이나 확인의 수단으로서의 사진을 말한다. 물론 이런 사진들이 작동하는 공간은 철저하게 비예술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의 일반적인 조건이 그러하듯이, 예술로서의 사진은 바로 그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사진을 말할 때는 우리는 예술의 정의 자체를 넓게 잡아야 한다. 그것은 미술관, 극장, 연주장 등 예술의 공간으로 확립된 곳에서 수행되고 보여지는 활동 뿐 아니라, 인간의 지각과 감각을 다루고, 기존의 인간의 감각과 연관된 영역들에 개입하는 활동을 말한다. 특히 전시 뿐 아니라 출판, 홍보, 조사, 기록, 관찰같은 폭넓은 인간활동에 관여하고 있는 사진은, 바로 그런 점들을 빼버리고 예술로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포괄한 예술로서 거론돼야 한다. 물론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기존의 예술에서도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희미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이나 문학같은 장르에서의 경계의 무너짐이나 재설정과, 사진에서의 그것은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조지 스펜서 <나 자신을 사진속에 넣기> 1985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술을 말하면서도 예술이 아닌 다른 활동의 영역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예술로서의 사진을 논의한다는 것은 사진을 기존의 예술의 경계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예술을 경계의 문제, 혹은 어떤 특정하게 예술품으로서 정의된 물건을 생산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예술은 언제나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간의 경계를 허물거나 재설정하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그 경계가 재도적으로 확립된 것은 20세기의 모더니즘이 확립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따라서 경계지워진 영역으로서의 예술,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것이고, 한시적이며, 공간적으로는 뉴욕이나 파리같은, 서구의 몇몇 모더니즘의 수도들이라는 지역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사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하나의 제도로서의 미술관, 담론의 장치로서의 미술관의 일부로서의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술관이 어떤 대상에 작품의 지위를 부여하는 과정,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과정, 작품 뿐 아니라 관객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을 교육, 통제, 훈련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은 자연스럽게 가치중립적으로 주어져 있는 기구가 아니다.
사실 작가들도 위와 같은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미술관의 가치, 미술관이 부여하는 가치의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들이 예술이라는 아우라에 싸여 비가시화한다는 것이다. 즉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 화상, 언론 사이에는 끊임없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서 보여지는 작품에서는 그런 흔적들은 보이지 않도록 청소가 되어 있다. 미술관의 흰 벽이나, 작품의 프레임 등과 같은 장치들은 그런 흔적을 비가시화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만드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미술관은 가치를 분류하고 위계등급을 매기는 곳이며, 작품의 진정성은 작품이라는 물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인 인정의 체계에 의해 부여받는 것이다. 또한 미술관이라는 기관은 길들이는 곳이다. 작품이나 관객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위험한 시선, 위험한 의미를 길들이는 곳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길들이기의 수단은 미술, 예술이라는 미학적 교양이라는 코드들이다. 그런 코드에 깃들어 있는 규율적 질서는 디스플레이의 수사, 혹은 디스플레이라는 수사를 통하여 내면화된다. 또한 미술관은 지식과 권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산에 대해서나,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집단적인 기억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큐레이터의 권력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순간은 어떤 전시가 미술사의 획을 긋는 중요성을 인정받을 때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업적이 유명해져서가 아니라, 미술사라는 지식을 낳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즉 지식은 권력 없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관의 권위가 궁극적으로 고정되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 미술관의 권위는 끊임없이 도전 받고 있다. 미술관의 규율과 경계짓기의 관습을 거부, 재검토, 재편성하는 작업들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전시의 형태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전의 이론가들은 이미 예술로서의 사진의 어떤 측면이 저항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예술로서의 사진에 따라 다니는 해로운 관념은 아직도 예술작품이 유일무이하고 독창적이라는 믿음이다. 벤야민의 예측과는 달리, 사진과 영화의 출현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예술제도는 예술품, 작가의 아우라를 강화시키는 여러 가지 전략들,수사들을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아우라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수시로 그 전략과 모습을 바꾸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기술복제수단으로서의 사진이 아우라의 붕괴를 가져 왔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형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사진과 영화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예술에 아우라, 즉 복제 불가능한 일회적 현존성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품이란 것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다. 즉 진품이라는 개념은 가짜라는 개념과 같이 나타난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제도적 장치 없이 그런 개념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에까지 진품이라는 개념, 혹은 진짜의 어떤 것이라는 개념이 확장될 때 예술로서의 사진도 두터운 아우라에 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 아우라의 두께는 회화나 음악 등 다른 더 오래 된 예술의 장르 못지 않다. 사진가들은 작가의 명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진품으로 추앙 받는다. 그들은 또한 진품성의 유지를 위해 네거티브 필름을 파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아우라에 대한 이의제기와, 그것의 유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문화정치적인 갈등이다. 더글러스 크림프는 옳게도, 미술관이 아우라를 회복하려는 시도 그 자체를 미술관의 위기로 보았다. 그는 예술사진의 승리도 그런 위기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다. (크림프, “포스트모더니즘과 사진”, 더글러스 크림프, 『현대미술의 지형도』 이영철 엮음, 시각과 언어)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사실은 예술로서의 사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진은 확실치 않은 예술이다. 예술가가 대상에 투사하는 힘, 혹은 그 결정체로서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무질서하고 우연적이며, 혼돈에 가득 찬 것이라는 점에서 사진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이 아니다. 다른 예술의 형태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겠으나 사진의 경우 이미지와 대상의 물리적인 밀착성에서 오는 객관성의 외양과 확실성의 외양 때문에 그 불확실성은 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확실한 사진에 확실성을 가져다주는 요인은 텍스트의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작가라고 하는 관념이다. 그것은 예술사진에 깃들어 있는 독창성이라는 망령과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이미지의 뒤에 있는 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재현에 의해 시작된 욕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한에 있어서, 원본은 항상 연기된다. 재현은 원본의 부재 속에서만 일어난다. “사진은 노출이 이루어지기 전에 전부 구상되어야 한다”는 웨스턴의 말은 재현의 뒤에 뭔가 선험적인 것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지만 그런 선험적인 어떤 것은 그의 마음속에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더글러스 크림프는 그것은 세계 속에 있으며 웨스턴은 그것을 복사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글러스 크림프, 위의 글, p.319) 사진이 가지고 있는 외관상의 진실성이 여러 가지 장치(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공모관계 속에 일치시키는 재현의 장치,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 수사학, 이데올로기 등, 사진을 분류, 정리하는 체계로서의 아카이브, 규율적 제도로서의 미술관)에 의존하고 있음을 은폐, 혹은 비가시화 하는 한에 있어서 사진의 객관성과 진실성이 사진의 예술성의 토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의 생산에 동참하는 것이다.


조 스펜서<나 자신을 사진 속에 넣기> 198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에비게일 솔로몬-고도가 자신이 옹호하는 작가들에 대해 말하면서, “예술사진이 정확히 모더니즘적인 예술형식으로서의 그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때 보여 주었던 경건함과 예의바름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던 방식들 때문”에 그들을 옹호한다고 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는 단순히 그들 예술가들(빅터 버긴, 새라 찰스워드, 바바라 크루거, 셰리 레빈, 신디 셔먼 등)의 태도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대항하고 있던 사진의 권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즉 다시 솔로몬 고도의 말을 빌자면, “사진이 완전히 아우라적이고 주관화된 자율적 순수예술로서 제도적으로 강화되고 정당화되는 것과 같은 병적인 징후”는 20세기 후반 고급예술로서의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모습이다. 그 권력이란 미술관 권력, 작가권력, 작품권력, 비평권력 등인데, 이 모든 권력은 고도의 전문지식, 기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고 있고, 그것들을 다시 생산한다. 그러므로 이는 생산적인 권력이다. 즉, 사람을 죽이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특정한 형태로 태어나게 하는 권력이다. 예술로서의 사진 속에는 그런 권력이 삼투해 있다.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사진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문제를, ‘이러이러하게 하면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필요충분조건을 밝히는 것은, 그 조건이 설사 아무리 논리적으로 명확한 것이라 해도, 경계의 논리를 다시금 되살린다는 점에서 별 의미가 없다. 단지, 그것은 사진이 제도적인 틀 속에서 보여지는 방식과, 그 속에서 소통되는 의미에 대한 재구성과 재검토를 포함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만약 예술이라는 것을 경계의 문제가 아니고, 거꾸로 개입의 문제로 본다면 사진이 어떤 영역에 개입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즉, 미술관에 대해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미술관의 작동방식에 개입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또한 보다 더 큰 테두리, 즉 출판, 보도, 증명, 기록, 감시, 관찰 등의 영역에서 사진이 보여지는 방식들이야말로 사진이 개입해야 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그 보여지는 방식이란 것이 간단치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에 어떤 코드가 작용하고 있는가 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선은, 사진적 재현의 구조 전체가 문제인 것이다. 즉, 우리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이미지 속의 시선, 혹은 카메라의 시선과 보는 이의 시선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런 관계를 빅터 버긴은 두 시선간의 공모관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공모관계에서 이데올로기적 작용이 일어난다. 사진이 전달하는 내용 속에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사진 속의 시선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선의 역사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며, 사진을 보는 주체도 그런 시선의 역사와 더불어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이 사진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큐멘타리나 보도, 증명사진에서 사진의 존립근거 그 자체로 여겨지고 있는 사진의 진실성(facticity)과 증거능력을 가능케 하는 부분도 개입의 영역이다. 이는 푸코가 말한 진리의 체제(regime of truth)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사진의 진실성이 사진이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진리(truth)를 생산하는 담론적인 체제 전반의 문제이다. 즉 사진의 규격에서부터 사진을 찍는 방식, 태도, 어법에 대해 부여되는 코드, 그 코드가 통용되는 제도적 실천이 사진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 혹은 진실성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체제에 의해 확증되고, 진리의 담론 속에서 실천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 대한 검토 없이 사진을 진실 되게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다큐멘타리적 사고방식은 아주 소박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진들의 구체적인 실천, 기능방식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진이 감시카메라, 정찰, 주민등록체제 등을 통해 감시와 관리의 기능을 하는 것, 그리고 사진이 그런 경우에 증거로서 작용하는 체제는 일상속에서의 사진의 의미의 아주 큰 부분이다.
또 다른 개입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문제들과도 연관되는 영역인데, 사진과 정체성의 문제이다. 즉 어떤 종류의 사진적 표상(representation)과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카자 실버만(Kaja Silverman)의 규정을 따라, 정체성이란 ‘외적인 이미지를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진, 건축, 자연환경, 의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문화적 표상들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표상에 자신을 맞출(align) 것인가 하는 전략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체성의 전략, 혹은 정체성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이미지는 항상 고도의 선택적인 판단의 결과이며,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게끔 만드는 그 구조는 바로 성적,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에 대한 고려 없이 ‘사진은 만국 공통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소박한 견해이다. 모든 사진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체성에 따라 다르게 어필하며, 거기에는 자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정체성의 전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조 스펜서<나 자신을 사진속에 넣기> 1985


따라서 개입의 영역들은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이들 모두에 공통되는 개입의 전략이나 방법, 코드가 있을 수는 없다. 각기 다른 영역에 다른 전략이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개입이 없이는 더 이상 예술이라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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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참고로 삼았거나 논의한 사진 이론의 갈래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문헌목록과 함께 정리했으므로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론의 중요한 갈래를 든다면 그 초기적인 형태로서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시작되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문화산업비판과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론으로부터 세례를 많이 받았으면서 이들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는 존 버거와 수잔 손탁을 들 수 있다. 두 사람 다 벤야민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버거는 어떻게 하여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체험의 단절과 파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사진적 실천은 무엇인가에 대해, 손탁은 벤야민과 바르트를 절충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문헌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발터 벤야민 지음, 반성완 옮김, 민음사
『시각과 언어1--산업사회와 미술』 최민, 성완경 옮김 열화당
『이미지와 글쓰기--롤랑 바르트의 이미지론』 롤랑 바르트 지음, 김인식 편역, 세계사
『신화론』 롤랑 바르트 지음, 정현 옮김, 현대미학사
『텍 스트의 즐거움』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동문선
『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존 버거 지음, 편집부 옮김, 동문선
『말 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장 모르 지음, 이희재 옮김, 눈빛
『사진이야기』수잔 손탁 지음, 유경선 옮김, 해뜸


한 편, 사진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는 심리학, 해체주의, 담론이론 등으로부터의 영향을 통해 좀 더 넓은 상호텍스트성의 바다로 나아간다. 이제 사진은 단순히 읽어야 할 기호나 사회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주체를 구성하는 문화적 표상이며, 철학, 역사학, 비평이론 등 인문학의 폭넓은 주제들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또한 오늘날 보여지는 바와 같은, 사진에 대한 관심이 단지 매체에 대한 지식의 양이 순차적으로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와서, 장르 간의 경계의 해체, 심지어는 경계라는 개념 자체의 해체, 기계적인 이미지 생산방식에 대한 새로운 반성, 매체와 설치 등을 중시하는 작가들의 경향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여기서는 신체라든가 감시, 욕망, 시선 등 이전의 이론에서는 다루지 않던 주제들이 논쟁의 핵심이 된다. 다음의 저술들은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현대미술의 지형도--비평, 매체, 제도분석』 이영철 엮음, 정성철 외 옮김, 시각과 언어
『문화연구이론』 정재철 편저, 한나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존 스토리 지음, 박모 옮김, 현실문화연구
『프 로이트의 문학예술이론』 허창운 외 지음, 민음사
『알기 쉬운 자끄 라깡』 마단 사럽 지음, 김해수 옮김, 백의
『라깡의 욕망이론』자크 라깡 지음, 권택영 옮김
『포스트모던의 조건』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유종완 외 옮김, 민음사
『포 스트모더니즘론』 정정호, 강내희 편, 문화과학
『포스트모던 문화--현대이론서설』 스티븐 코너 지음, 김성곤, 정정호 옮김, 한신문화사
『데리다와 푸코,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마단 사럽 외 지음, 임현규 편역, 인간사랑
『권력과 지식--푸코와의 대담』 콜린 고든 지음, 홍성민 옮김, 나남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나남
『담 론의 질서』 미셸 푸코 지음, 이정우 옮김, 샛길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미셸 푸코 외 지음, 정일준 옮김, 새물결
『육 체의 문화사』 스티븐 컨 지음, 이성동 옮김, 의암출판


이런 모든 논의의 갈래들을 포괄하면서, 사진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서구에서 일어나는 가장 집약적인 논의는 다음과 같은 이론모음집의 형태를 띠고 있다. 빅터 버긴이 편집한 Thinking Photography (London: MacMillan, 1982)는 이런 경향의 책으로는 교과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기호학, 심리분석, 마르크스주의, 권력이론 등 서구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지적인 흐름들이 사진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되고 있다. 사진이론에 대해 알아보자면 다음의 책들은 필수적인 것들이다.
Bolton, Richard. [ed.]. The Contest of Meaning: Critical Histories of Photography. Cambridge,
Mass.: MIT Press, 1989.
Squires, Carol. [ed.] The Critical Image--Essays on Contemporary Photography. Seattle: Bay Press, 1990.
Petro, Patrice. [ed.] Fugitive Images--From Photography to Video.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Evans, Jessica. [ed.] The Camerawork Essays--Context and Meanign in Photography. London: Rivers Oram Press, 1997.
Spence, Jo and Patricia Holland. [eds]. Family Snaps: The Meanings of Domestic Photography. London: Virago, 1991.
Wallis, Brian. [ed.]. Art After Modernism: Rethinking
Representation. New York: Godine,1984.
Doane, Mary Ann, Patricia Mellencamp and Linda Williams. Re-Vision: Essays, in Feminist
Film Criticism. Frederick, MD : University Publications of America, 1984.


출처: 포럼a 4호

    http://www.foruma.co.kr/__v2/faForumA/view.asp?fNum=69&showPublishNo=4&page=1&whichPage=1&write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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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진2007. 7. 11. 11:00

현 대 사 진 의 길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 영역: John E. Bowlt | 영문중역: 양현미



보리스 쿠쉬너(Boris Kushiner)의 “공개 편지”에 대한 답변인 이 논문은 로드첸코가 사진을 통해 시각적 사유방식을 “혁신”시킬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매우 정교하게 진술해 놓은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관이 지각상의 습관들과 회화형식의 관례들로 인해 어쩔 수없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뒤흔들어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시각적 충격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사진이 회화로부터 물려받은 시각적 전통들은 도시화된 기술적인 세계를 묘사하는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카메라만이 동시대의 삶을 반영할 수 있다”라고 로드첸코는 주장한다. 로드첸코는 그의 목표가 개인적인 사진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신문사진의 변혁을 고무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광범위한 관중에게 새로운 시각적이고 지각적인 습관들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쿠쉬너에게

당신은 “상향시점(from below up)과 하향시점(from above down)”에 관하여 흥미로운 문제를 지적했으며, 이러한 사진의 시점들이 나에게 “전가되어온” 만큼(만약 Sovetskoe foto지의 “교양 있는” 언어를 사용해도 좋다면), 이에 응수해야 한다고 느낀다.
사실 나는 다른 모든 시점들보다 이러한 시점들의 사용을 지지하는 바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모든 나라의 미술사나 회화사를 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회화들이, 약간의 극히 작은 예외들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배꼽 높이나 눈 높이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화와 원시 회화들에서 외관상 받은 인상을 새의 시점으로 간주하지 말아라. 많은 인물들을 담을 수 있도록 수평선을 올려놓은 데 불과하며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눈 높이에서 제시되어 있다. 함께 보면 전체는 현실에도 새의 시점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위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각각의 인물은 정확하게 정면 시점과 측면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그들은 인물 위에 인물이 놓여있지 사실주의 회화들에서처럼 인물 뒤에 인물이 놓여있지 않다.
중국 미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들은 한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어떤 대상의 가능한 모든 사선들(declivities)은 운동의 순간(단축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관찰의 시점은 언제나 중간 높이이다.
사진이 실린 오래된 잡지들을 살펴보라─그러면 당신은 똑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가끔 다른 관점들을 접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에 불과하다. 가끔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런 새로운 시점들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 잡지들을 많이 사며 사진을 모으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은 전부 합쳐서 약 36점 모았을 뿐이다.
이런 위험한 스테레오타입 뒤에는 인간의 시각적 지각을 교육시키는 편향되고 인습적인 관례, 시각적 이성의 과정을 왜곡하는 일방적인 접근방식이 놓여있다.
회화적 창안의 역사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Vereshchagin의 회화1나 Denner의 초상화들2처럼 처음에는 어떤 것을 “실물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욕망이 있었다─그들은 프레임 밖으로 막 기어 나올 것 같았으며 피부 구멍도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화가들은 칭찬 받기는 커녕 “사진가” 같다고 비난받았다.
회화적 창안의 두 번째 길이 세계에 대한 개인주의적이며 심리학적인 관념의 뒤를 이었다. 정확하게 동일한 유형의 변형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 등의 회화들에 묘사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사용했고, 루벤스는 자신의 아내를 사용했다.
세 번째 길은 양식화, 회화를 위한 회화였다: 반 고호, 세잔,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그리고 마지막 길은 추상, 비대상성이었다: 그때 사실상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유일한 관심은 과학적인 것이었다. 구성, 질감, 공간, 무게 등.
그러나 새로운 시점, 원근법, 그리고 단축방법을 탐색하는 길들은 전혀 가보지 않은 상태였다.
회화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AKhRR3의 견해대로라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어느 누구도 시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사진─새롭고, 신속하며, 구체적인 세계의 반영체─은 반드시 세계를 모든 관점에서 보여주고 모든 방면에서 볼 수 있는 국민의 능력을 계발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사진은 이것을 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중대한 때에 “회화적 배꼽”의 심리학이 시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현대의 사진가를 꾸짖고 있다.
그것은 Sovetskoe foto의 “사진-문화의 경로들”과 같은 사진잡지의 무수한 논문들을 통해 성모와 백작부인들을 그린 유화 같은 모델들을 제공하면서 그를 가르치고 있다.
만약 대천사, 그리스도, 그리고 군주들의 구성에 능한 세계의 권위자들이 제시한 사례들로 인해 시각적 이성이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소비에트 사진가 또는 기자를 갖게 될 것인가?
내가 회화를 버리고 사진을 시작했을 때, 나는 회화가 자신의 무거운 손으로 사진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제 당신은 현대 사진의 가장 흥미로운 시점들이 하향시점과 상향시점이며 배꼽 높이가 아닌 다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사진가는 회화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쓰기가 힘들다. 나의 사고과정은 시각적이며, 단편적인 아이디어들만 떠오른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에 관해 쓴 적이 없었으며, 사진, 그것의 임무와 성공에 관한 논문은 하나도 없다. 모홀리 나기(Moholy-Nagy) 같은 좌파 사진가들 조차 “내가 작업하는 방식”, “나의 길” 등과 같은 개인적인 논문을 쓴다. 사진잡지의 편집자들은 화가들을 초빙해서 사진의 발전에 관해 글을 쓰게 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신문사진가들을 다룰 때도 아둔하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문사진가들은 그들의 사진을 사진잡지에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있으며 사진잡지 스스로 일종의 미술계(Mir iskusstva, The World of Art)4로 변화하고 있다.
Sovetskoe foto에 실린 나에 대한 편지는 우스꽝스러운 중상모략에 불과하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사진에 투하된 일종의 폭탄이다. 나를 깎아내리면서, 그것은 또한 새로운 시점들을 사용하고 있는 사진가들을 위협하려고 하는 것이다.
Mikulin이 대표로 있는 Sovetskoe foto는 젊은 사진가들에게 너희들은 “로드첸코처럼” 작업하고 있으며 따라서 너희의 사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문화화되어 있는가 보여주기 위해, 잡지들은 현대 외국 사진가들의 사진 한 두점을 싣고 있다─미술가의 사인도 없고 출처도 명시하지 않고 말이다.
이제 본래 문제로 되돌아가자.
다층건물들로 이루어진 현대도시, 특수하게 디자인된 공장들과 설비들, 2층이나 3층 규모의 상점 창문들, 전차들, 자동차들, 조명장치가 된 표지판과 간판들, 쾌속선들과 비행기들─당신이 자신의 『서구에서의 103일(On Hundred and Three Days in the West)』5에서 그토록 멋있게 묘사했던 그 모든 것들이─시지각의 평균적인 심리학을 바꾸어놓았다(약간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카메라만이 동시대의 삶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 합리성이라는 구시대적인 법칙들은 사진을 그들과 동일한 복고적 원근법을 지닌 일종의 낮은 등급의 회화, 에칭, 또는 판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의 힘 때문에 미국에서 68층 건물 사진을 배꼽 높이에서 찍게 된다. 그러나 이 배꼽 높이는 34층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접해 있는 건물 안으로 기어올라가 34층에서 68층짜리 거인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만약 인접한 건물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동일한 정면의 부분적인 광경을 얻게 된다.
길을 걸어갈 때 당신은 건물들을 위로 쳐다본다. 위층에서는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과 보행자들을 내려다본다.
당신이 전차 창문이나 자동차에서 힐끗 바라보는 모든 것, 당신이 극장의 청중석에 앉아 내려다 볼 때 얻게 되는 광경─모든 것이 고전주의적인 “배꼽” 시점으로 변형되거나 정돈되어 버린다.
그가 맨 위층 관람석에서 『Uncle Vanya』를 내려다 볼 때, 관객은 그가 보는 것을 변형시킨다. 그의 마음 속의 중간-시점(mid-view)에 따라 『Uncle Vanya』는 실제의 삶처럼 전개된다.
내가 파리에 있으면서 에펠탑을 멀리서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6 그러나 버스를 타고 매우 가까이 지나갔을 때 나는 창문을 통해 철근으로 된 저 선들이 좌우로 위로 뻗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시점은 나에게 그것의 규모와 구조에 대한 감동을 주었다. 배꼽 시점은 당신이 본 모든 엽서에 지겹게 찍혀있는 달콤한 얼룩같은 것을 제시해 줄 뿐이다.
당신 은 공장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안에서, 아래로, 위로 조사하는 대신 왜 공장을 멀리서 그리고 중간 시점에서 보려고 애쓰는가?
현실에서 원근법이 왜곡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카메라 자체가 원근법을 왜곡하지 않게 되어 있다.
만약 거리가 좁아서 옆으로 물러날 공간이 없다면, “법칙들”에 따라 당신은 아마도 렌즈가 있는 카메라 앞면을 들어올리고 뒤를 기울일 것이다 등등.
이 모든 것은 “알맞는” 투시원근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들어 비로소 일명 아마추어 카메라들에도 광각 렌즈들이 사용되게 되었다.
수백만장의 스테레오타입 사진들이 도처에 넘치고 있다. 그들 간의 유일한 차이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좀더 성공적이거나 어떤 것은 에칭을 모방했거나 다른 것들은 일본 판화를 그리고 나머지들은 여전히 “렘브란트” 작품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사건들을 담은 사진들은 신문사진이라고 불리는 반면, 풍경, 두상, 나체여인들을 찍은 사진들은 예술사진이라고 불린다.
신문사진은 저급한 어떤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응용사진, 이런 저급한 종(種)이 사진에 혁명을 일으켰다─잡지와 신문 간의 경쟁을 통해서, 사진에 필수적인 많은 노력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종류의 빛과 모든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든 사진을 찍는 것이 필수적인 순간에 이를 수행함으로써.
이제 새로운 투쟁이 생겨났다: 순수사진과 응용사진 간에, 예술사진과 신문사진 간에.
사진-보도에서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역시, 바로 이런 진정한 활동 속에서도, 스테레오타입과 거짓된 리얼리즘이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놓았다. 나는 야유회를 갔다가 기자들이 춤을 각색하고 그림 같은 일군의 사람들을 언덕에 배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림 같은” 무리에 서둘러 끼여든 소녀들이 어떻게 차에 숨어서 그들의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했는지 재미있다.
“자 가서 사진을 찍읍시다!”
주제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사진가가 아니라, 카메라에 잡히는 것이 주제이다. 그리고 사진가는 회화의 법칙에 따라 올바른 자세를 그에게 제시한다.
여기에 『Die Koralle』라는 잡지에 실린 사진 몇 장이 있다. 그들은 하나의 연대기, 한편의 민족지, 하나의 기록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가가 따라오기 직전까지 이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고 있었으며 자기 자리에 있었다.
사진가가 그들을 갑자기, 모르는 사이에 찍었다면 그가 포착했을 장면들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모르는 사이에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 반면에 포즈를 잡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빠르고 쉽다. 그리고 당신의 고객도 오해를 하지 않게 된다.
잡지들에서 당신은 작은 동물들과 곤충들을 실물 크기보다 더 크게 확대해서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메라를 그들에게 가깝게 들이댄 사람은 사진가가 아니다.
카메라에 등장한 것은 그들이다.
새로운 사진의 주제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그들은 과거의 전통에 따라 찍히고 있다.
모기들은 배꼽 높이에서 레핀의 Zaporoahtsy8의 회화적 법칙에 따라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는(see) 관점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쳐다보는(look at) 관점에 따라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매우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대상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플라흐(Flach)의 다리에 대해 쓰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꼽 높이에서 찍힌 것이 아니라 지표면 높이에서 찍힌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당신은 카우프만(Kaufman)과 프리드리앤드(Fridliand)의 슈코프(Shukhov) 라디오 타워 사진들이 나쁘다고, 타워들이 정말 뛰어난 구조물이라기 보다는 빵바구니를 닮았다고 쓰고 있다. 나도 정말 동의한다. 그러나..." 만약 대상이 새롭고 당신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면, 어떤 시점이라도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 침해할 수 있다.
프 리들리앤드만이 여기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지 카우프만은 아니다. 카우프만의 사진은 다양한 시점에서 타워를 찍은 여러 개의 프레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러한 광경들은 움직인다. 카메라가 돌고 타워 위에서 구름들이 떠다닌다.
Sovetskoe foto는 “사진-회화”가 마치 독특하고 영원한 어떤 것인 양 이야기한다.
정반대이다. 우리는 마치 주제를 포위하기라도 하듯이─열쇠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여러 개의 다른 시점에서 그리고 다른 사진에서는 다양한 위치에서 주제를 찍어야 한다. 사진-회화를 만들지 말고 기록적 (예술적이 아니라) 가치가 있는 사진-순간들을 만들어야 한다.
요약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시점에서 보는데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친숙한 주제들을 완전히 예기치 못한 관점에서 그리고 완전히 예기치 못한 위치에서 찍는 것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주제들은 또한 주제의 완전한 인상을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찍어야 한다.
끝으로 나는 나의 주장을 예시해줄 수 있는 몇 개의 사진들을 동봉한다.
나는 일부러 같은 건물의 사진들을 골랐다.
첫 번째 것은 미국 앨범 『아메리카』에서 나온 것이다. 이 사진들은 가장 스테레오타입의 방식으로 찍혀져 있다. 그들을 찍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왜냐하면 인접한 건물들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정되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모두 올바른 원근법의 원리에 따라 미국을 이런 식으로 보도록 키워졌다.
실제로는 그렇게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동일한 건물의 두 번째 세트의 사진들은 독일 좌파 건축가 멘델슨(Mendelsohn)9의 것이다. 그는 거리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직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기에 소방수가 있다. 매우 사실적인 시점이다. 만약 당신이 창문을 내다본다면 그를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얼마나 충격적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사물들을 자주 쳐다보지만 그들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쳐다보는(look at) 것을 보지(see) 않는다.
우리는 사물들의 특이한 원근법들, 단축법들, 위치들을 보지 않는다.
평범한 것, 용인된 것을 보는 데 익숙해진 우리들은 시각의 세계를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 논법을 혁신해야 한다.
“배꼽 시점을 제외한 모든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 수용될 때까지.”
“그리고 오늘날 가장 흥미로운 시점들은 그러한 하향시점과 상향시점 그리고 그들의 대각선들이다.”

8월 18일, 1928년



1 Vasilii Vasilievich Vereshchagin(1842~1904), 사실주의 화가이며 세부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한 전쟁 장면과 민족지적인 구성으로 유명했다.
2 Balthasar Denner(1685~1749)는 정확하기로 유명한 초상화가이자 미니어처 화가였다. 그는 살색을 묘사하기 위해 초상화에 특수한 유약을 사용했으며 이런 이유에서 “Porendenner”라는 별명이 붙었다.
3 AKhRR: The Association of Artists of Revolutionary Russia. 혁명러시아예술가연맹
4 World of Art는 1890년대에 Sergei Diaghilev와 Alexander Benois가 성페테르스부르그에서 이끌던 일군의 미술가들, 미학자들, 작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들은 장식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쏟음으로써 러시아 미술의 오래된 전통을 새롭게 하려고 하였다. 이 단체는 The World of Art라는 이름으로 잡지(1898~1904)를 발견했고 일련의 전시들(1899~1906)을 조직했다. 1906년에 시작된 분열을 겪은 후에, 동일한 이름을 견지해온 그룹이 1910년~24년 동안 전시 활동을 재개했다.
5 Boris Kushner는 묘사들과 일화들을 담은 이책, Stotri dnia na Zapade을 1928년 모스크바에서 출판했다.
6 1925년 3월 19일~6월 10일 까지 이루어졌던 로드첸코의 파리방문은 국제장식미술엑스포 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럄oratifs와 같은 시기였다. 그는 소비에트관을 위해 노동자의 독서실을 디자인했다. 파리에서 보낸 그의 편지들은 Novyi lef, no.2(1927)에 실렸다.
7 Die Koralle는 베를린에서 1925년~41년에 출판된 도판이 있는 대중적인 과학잡지였다.
8 The Zaporoahtsy(1878~91)는 사실주의자 Ilia Efimovich Repin(1848~1930)이 그린 화려한 회화로서 Zaporzhe Cossacks가 터키의 Ottoman이 그의 제국과 연합하자고 청하는 것을 거절한 일화를 그린 것이다.
9 Mendelsohn에 대해서는 pp.221(출전)의 상단을 보시오.

 

**출처: 포럼a 4호

   http://www.foruma.co.kr/__v2/faForumA/view.asp?fNum=51&showPublishNo=4&page=1&whichPage=1&write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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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웹진 땡땡

          http://www.arte.ne.kr/webzine/webzine_view.asp?idx=46

 

 

미술평론가 박신의 선생님

정리 : 신정수
(웹진 콘텐츠팀, yamchegong@naver.com)





전효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계신데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이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기억하기로는 작년에 문예진흥원 심사 이후에 약간의 ‘시비’가 있었고,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했던 것에 대해 나는 ‘다모 폐인’이다 이런 식으로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지요. 선생님 개인을 정의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박신의: 어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벨기에 현대만화전을 위해 내한한 벨기에 만화작가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제 명함만 보고는 어떻게 만화 자리에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저보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일단 그들에게 저는 만화를 예술로서 접근한다고 했고, 그런 점에서 사진과 영화,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에 이르는 영역까지 마찬가지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 모든 예술적 성과를 함께 나눠 갖기 위해 효율적인 예술제도와 매개장치를 연구하고, 문화정책을 고민한다고 하였더니 금방 이해하더군요. 문제는 장르나 전공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문화적 관심의 확장과 사회적 연속성을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늘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다면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전문성의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고 봅니다. 지난 해 문예진흥원 지원 심사를 할 때 어떤 분이 저를 80년대 방식으로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로 구분하면서 색깔론 비슷하게 몰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 저는 ‘다모폐인이다’라고 대답했어요. 당대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으로서 매일의 생활 속에서 문화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맞는 말 아니겠어요? 저는 직업상으로는 대학에서 미술사와 예술경영을 가르치고 미술평론과 전시 기획을 하고, 문화정책과 문화기획 전반을 다루는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여러 명칭을 가지고 있지요.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미술평론가’라는 지위를 택하고 싶어요. 미술의 확장과 문화적 힘을 믿는 사람, 늘 당대적 담론에 반응하며 현장감을 가지고 문화적 실천을 시도한다는 의미에서의 ‘미술평론가’ 말입니다. 또 겸손하고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직함이기도 하잖아요?

전효관: 미술평론가라고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사회적으로 개입하고 계시잖아요? 그것은 호기심에서 비롯되신 건가요?

박신의 : 물론 미술평론이라는 활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저로서는 평론 작업은 기본적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의식과 쟁점을 풍부하게 살려주는 작업이라고 봐요. 그리고 한 예술가의 삶과 그의 사회적 지위, 그의 작품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실천력을 살려주고, 이를 많은 사람들이 나눠갖도록 하는 일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러니 미술평론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되고, 또 사회적 실천도 고민하게 되죠. 그런 과정이 결국 예술작품을 매개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살피는 일이 되면서 사회적 개입이라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요.

전효관: 제가 책이나 글로 보면서 아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관심 영역과 관심의 확장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신의: 정말 그래요. 저는 미술사를 공부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여러 영역의 일을 하는 것처럼 비치지요. 경희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학과를 맡다보니, 또 제가 경영대학원 소속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된 것도 있어요. 최근 저는 문화예술기반시설에서의 인력문제를 다룬 연구를 하면서 경제학과 경영학 전공하신 분들과 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회에 노동의 문제와 경영의 문제에서 문화 영역을 덧붙여 냈지요. 또 도시계획 연구자들이 새로운 도시계획 개념으로 문화기획(Cultural Planning)을 시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쟁점이 드러나게 되면서 제가 그 부분에 합류하게 된 것도 같은 경우지요. 이런 식으로 문화예술 외부의 영역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서 제가 여러 일을 하는 것이 된 셈인데, 사실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문화부분이 고려되지 않다가 이제야 문화가 들어오는 시점이 된 것이라는 변화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느라 그렇게 바쁜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미술사를 통해 그런 간학문적인(interdisciplinary) 측면을 훈련받은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저는 미술사를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입장인데, 예술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역사적 구조를 보고, 욕망을 읽으며, 모순을 관찰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겐 미술사가 단순히 지식체계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사유 모델이 되어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을 해석하고 해체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봐요.




전효관: 미술의 위기, 이에 관한 대응들과 관련된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박신의: 요즘에는 ‘미술’이 너무 위축되어, 미술교과모임의 미술 선생님들도 미술이라는 이름 대신 ‘시각문화’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시각문화’는 저 역시 80년대 말부터 미술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각문화 혹은 영상문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강하게 제안한 용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미술을 대체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시각문화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교육’을 문제삼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만일 미술의 위기를 말한다면, 저는 미술교육을 실행하는 ‘제도의 위기’이지 그 자체의 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미술이 변화를 거듭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보수적인 제도적 틀에 안주하는 것 역시 미술제도의 위기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지요. 저는 미술을 제대로 교육해 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틀로 미술을 갱신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판단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전효관: 선생님께서 미술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시대 환경 변화에서 미술의 대응이 약했다고 봅니다. 한국, 외국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미술은 쇠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역별로 넓혀가려는 자체 노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박신의: 지난 해 11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문화정책회의에 참석하면서, 저는 프랑스 미술대학 교육 프로그램 혁신을 주제로 미술학교 방문을 신청해서 간 적이 있어요. 이미 프랑스에서는 변화하는 매체 현상에 대응하면서 미술교육을 시각문화 중심으로 바꿔가고 있었어요. 5년 기간의 미술학교 기간 중 1학년과 2학년의 기초과정을 마치면 3년 차부터는 사진과 비디오, 3-D 디자인 및 영상, 음향작업 등을 배울 수 있게 해요. 다시 말하면 그리고, 만들고, 표현한다는 전통적인 미술개념을 바탕으로 기술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예술세계를 미술교육의 범주로 포괄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비하면 한국의 미술교육은 여전히 낡은 미술개념을 고수하는 입장이지요. 저로서는 새로운 세대들이 게임과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한데, 이들에게 여전히 그리고 만드는 작업만을 교육한다면, 미술교육 자체가 억압이 된다고 봐요. 게다가 뉴미디어라는 것이 여전히 예술적 표현과 생각의 기록과 질문을 던지기 위한 ‘도구’인 한, 결코 미술을 대체하는 요소가 아니겠지요. 오히려 뉴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게 되는 교육적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전효관: 미술사에서 그런 선례가 있을까요?

박신의: 저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로 통칭되는 구성주의와 생산주의 예술, 그리고 그 흐름을 서구의 바우하우스에서 받아들인 라즐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의 예술 개념을 모델로 두고 있어요. 생소하실지 모르겠는데, 모홀리-나기는 우리가 잘 아는 파카 만년필을 디자인 한 사람이에요. 그 디자인으로 돈을 벌어 바우하우스를 운영하는 데 보탰다고 하지요. 그는 회화에서 조각, 사진, 영화, 건축, 디자인 분야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어서 오늘날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리고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컴퓨터를 가지고 많은 작업을 했을 겁니다. 또한 독일 바우하우스와 미국의 바우하우스를 이끌기도 한 훌륭한 교육자이자, 이론가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지요. 그는 바우하우스 총서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1924년에 발표한 사진과 영화 등의 미디어에 대한 예술적 사고는 차후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매우 탁월한 이론적 성과로 남고 있답니다. 제가 이 예술가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에 큰 의미를 두는 부분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다면적 능력을 믿는다는 점이고, 또 예술이 한 사회의 문화생산에 기여함으로써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미디어 발달에 대해 능동적인 대응을 보여준 태도에 있구요. 저는 예술이 인간의 생체리듬에 가까운 표현이라 생각하는데, 미디어 역시 그런 생체리듬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전효관: 이제 문화예술교육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하죠.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박신의: 문화예술교육이 왜 중요한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일깨워주는 것이어서 그렇다고 답하고 싶어요. 다시 말하면 생체리듬이란 열려진 것이어서, 이를 통해 인간은 다면적인 활동과 복합적인 자기 개발이 충분히 가능한데, 오히려 학교교육이 그 가능성을 닫아버렸다고 보는 관점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의 실행을 위한 연구작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적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수혜 개념에 한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실제로 어떤 문화예술이고, 어떤 교육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의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 부분이 아쉽더군요. 저는 예술에 대해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는 편이고, 또 그래서 예술을 통해 사회 변화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갖고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자기발견’이라는 교육 효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에게 고유한 생체리듬을 찾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터득하게 되는 전 과정을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예술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에서 우월함이 있다고 봐요. 현실 정치의 맥락에서나 계량적인 방식으로 따져보면, 월드컵과 촛불시위로 모인 사람들의 엄청난 공감대와 열정을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생체리듬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게 마련이지요. 엄청난 상상력이 수반된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계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아마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의 기초를 예술가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란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예술가 없이도 사회가 돌아갈 법도 한데, 왜 그 사람들에 대해 신뢰를 갖는 걸까요. 그리고 왜 그 결과물을 나눠 갖자고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그럴까요. 그것은 세계를 바꿔갈 수 있는 힘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저보고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라면, 제 모델은 바로 이런 구조를 갖습니다.

전효 관: 선생님 말씀에 재미있는 부분은 보통 사람들이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인간의 이성 능력을 믿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내 휴머니즘은 어떤 에너지에 대한 신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박신의: 사회는 설득력 있는 ‘공감대’로 인해 바뀌지, 측량 가능한 ‘수치’로 바뀌지는 않거든요. 아시잖아요. 아주 소수라도 내용의 핵심과 설득력을 가지면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는 것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 문화와 예술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선생이 말하는 에너지를 믿는 휴머니즘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래서라도 문화예술교육의 경우도 어떤 예술인가, 어떤 교육인가를 먼저 논의했으면 합니다. 다시 말하면 문화예술교육을 단순히 예술 향유의 기회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일테면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입장하도록 한다거나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어린이 그림대회를 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기회 확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의 에너지를 찾아가도록 하는 교육말입니다.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말하는 ‘예술과 삶의 결합’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술가라는 전문집단만의 예술을 거부하는 의미이거든요. 그들이 예술을 일상에서 찾는다는 행동도 일반 대중의 예술적 잠재력을 믿는다는 의미이구요. 저는 예술가와 아마추어의 생체리듬을 찾는 공동의 프로젝트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행해지길 바라고, 그런 가운데 진정한 에너지가 사회의 힘으로 쌓이는 과정을 보고 싶은 겁니다.

전효관: 어떤 과정과 사례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 부연해서 설명해주세요.

박신의: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하면 될 것 같네요. 흔히 새로운 예술하면 형식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하지만, 저로서는 작품 제작의 방법, 작품 감상의 방법, 작품이 사회에서 존재하는 방법, 작품이 소통하는 경로의 문제에서 새로운 접근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현대미술에서 이미 완성된 작품을 감상한다는 개념은 매우 약화되었지요. 현대미술의 혁명은 개념 예술, 즉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예술이 등장하면서 주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예술가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주고 대중들이 참여하면서 작품을 같이 만들어 가는 개념이 가능하지요. 현재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만날 수 있는 개념미술의 한 사례를 들어볼께요. 공원에 가면 헤드폰이 걸려있고, 누구나 헤드폰을 끼면 그 안에서 목소리가 나와 공원을 산책하도록 가이드를 합니다. 그런데 걷다 보면 실제 바람이 부는 가운데, 헤드폰에서 동일한 바람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립니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무심코 지나는 바람소리를 의식적으로 듣게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목소리는 오른편으로 몇 발자국 가다가 멈춰 왼편 아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따라하면 그 아래에서 자그마한 버섯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죠. 이렇듯 예술가는 우리에게 일상에서의 어떤 ‘주의력’을 제공합니다. 그 주의력이 사회의 모순을 읽는 주의력이 되고, 휴머니즘을 헤아리는 주의력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가끔 예술가들을 정의할 때, ‘주의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주의력이 왜 중요한지, 왜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지, 한번 같이 생각해 볼까요?

전효관: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을 수 있지요.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버린 공간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하고, 그런 교육을 해줄 예술가의 결합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특히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말이죠.




박신의: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은 문화예술교육의 개념과 철학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실행방안은 다양한 형태로 가능하리라 봅니다. 학교 교육이 바뀌면서 가능할테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문예회관, 문화의 집 등의 문화기반 시설을 통한 교육, 공공성을 살린 새로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이 모두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에는 기획자의 매개가 필요하다고 봐요. 최근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인력풀을 만든다고 하던데, 인력풀을 직접적인 교육자로서 예술가에 집중하지 말고, 매개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자가 포함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전효관: 문화교육, 예술교육 명명법이 다르고, 그 명명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요. 관객 개발의 입장에서 보는 문화예술교육부터 교육개혁의 맥락에서 보는 문화예술교육도 있지요.

박신의: 저는 문화교육과 예술교육을 나누는 입장에는 전적으로 반대입니다. 전문인을 위한 예술이 따로 있고, 대중을 위한 예술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은 예술 개념을 전통적인, 혹은 모더니즘적 구분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예술인을 위한 교육도 매우 중요하지요. 그것은 한 사회의 경쟁력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문인과 아마추어의 구분이 교육 자체로 전제된다는 것은, 교육 개념에서 대중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이 문제를 새로운 예술에서 풀었지만, 실제로 삶의 공간에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즉 대중을 새로운 예술행동의 주체로 유도하면서 도시문화를 바꾸는 것, 문화환경을 바꾸는 것도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술대학의 커리큘럼에 대해서도 더 이상 강의식 개념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제 수업은 일종의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고 봐요. 다시 말하면 프로젝트는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협업으로 생각을 바꿔가고 현실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 가는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의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에도 ‘프로젝트’ 모델을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에 대해서라면, 뭔가 모험을 하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교육의 효과가 엄청난 것임에도, 그것을 통해 전적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감히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예 이번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아름다운’ ‘위험한’ 일을 저질러 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생체리듬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전효관: 현실적으로 사회적 사실로는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를 접근시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언젠가 선생님과 같은 토론회에서도 문화의 민주주의, 예술의 질 문제 이런 것이 쟁점이 되었지요.

박신의: ‘문화의 민주화’라는 개념은 프랑스 문화정책에 기조가 되는 것인데, 그러나 여기서도 전문 예술인을 배제한 상태에서 나온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이 바탕이 되고, 예술이 사회화되는 것이 문화이며, 그 문화가 사회적,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논리에 따른 것입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은 문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만일 이것이 편의적으로 해석되면 예술의 힘을 배제할 수 있다고 봐요. 직업적으로, 제도적으로 전문가와 아닌 사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갖는 예술적 잠재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여야 한다고 봅니다.

전효관: 사회 참여를 통해서, 정책 개입을 통해서 느끼시는 점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박신의 : 저는 정책평가위원회에서 정부 업무와 정책에 접하면서 궁극에는 모든 사회문제가 ‘문화적으로’ 밖에는 풀 방법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카드대란이나 유해식품, 청소년 범죄와 모든 사회문제들이 언제까지 형사처벌 강화로만 풀 수 있겠습니까. 또 외교력과 통일의 문제도 문화적 접근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지난 주말에 KBS TV를 통해 일본의 한류 열풍을 르포르타주한 프로를 아주 인상깊게 보았는데, 그런 실질적인 문화현상과 교류가 노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만난 현실 정치적 사건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화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사회의 치유를 이루어보자고 하기에는 아직 우리의 인식 수준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저는 문화는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적어도 기득권자들, 혹은 진정한 좌절감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에게 문화는 여전히 향유할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라도 대중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문화가 마음에 닿아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만들어 가는 것을 기대해 보자는 것입니다.

전효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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