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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꽃놀이에 관한 연구로서 시작했던 만큼 한동안은 사쿠라와 군국주의의 관계를 미처 몰랐지만,
일본의 전체주의 정권이 사쿠라의 미적 가치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깨닫고부터는 그것이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
'미의식과 군국주의'란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배다리의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집현전 할아버지께서 주셨다.
작년 배다리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찾아갔었는데, 책 하나 골라보라고 해서 고른 책이다. 참고서가 대부분인 이 책방에서 유독 눈에 띄는 책이었는데, 양장에 600쪽이 넘는 비싼 책이어서 망설이다 집어들었었다.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해가 바뀌고서 서장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의 절대주의적 정치체제가 상징이나 이상을 '미화'함으로써 국민이 정책을 어떻게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였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나의 관심은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조성하는데 아름다운 꽃이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사쿠라꽃은 애초에 무사, 젊은 여성, 게이샤, 치고, '자기'의 표현과 그 변용, 광기, 삶, 죽음 그리고 환생 등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었는데, 그 상징은 국가의 철저한 검열과 사상 관리 아래에서 "천황을 위해서 사쿠라꽃처럼 아름답게 죽는" 표상으로 수렴되어 일본 군국주의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상징에 수반되는 미적 가치의 역할에 대해 검토하고, '미의식'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쿠라꽃의 미적 가치를 검토하고 사쿠라꽃의 상징이 군국주의화되는 과정을 살피고, 이를 카미카제특공대원의 수기 등을 통해 이 과정에 작동하는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국가내셔널리즘의 '자연화'과정을 밝힌다.
서장의 내용 중에 가장 살떨리는 부분은 이러한 군국주의화의 과정에 크게 기여한 행동이나 사상의 많은 부분이 군국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역사적 주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세계평화에 기여하거나 군국주의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우리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무를 비트는 악의 힘에 말려들어 가장 위험한 문화.역사적 과정에 관계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한다.(이 책의 원제목은 '비틀린 사쿠라'이다)
과정에서의 진정성과 충실함이 늘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경고는 나, 그리고 우리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해당된다.이용악, 낡은 집 (0) | 2008.0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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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는 월드뮤직에 대한 글에서도 나온다.
심영보가 쓴 <월드뮤직 -세계로 열린 창>의 첫 단락은 "항구는 노래를 만든다"인데, 거기에 파두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다. 그리고 15세기, 해양제국 포르투갈 이야기도.
"파두의 음악적 뿌리는 포르투갈이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15세기의 해양진출시기에 맞닿아 있다.
포르투갈의 해양진출은 이제껏 그 어느 민족도 경험하지 못한 이질적인 문화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식민지 정책의 최종 목표는 포르투갈과 식민지 문화의 완전한 융합에 있었다.
이에 따라 19세기 초 리스본의 알파마 거리에는 아프리카인들과 브라질에서 건너온 혼혈인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해있지만, 피레네 산맥에 의해 나뉘어 있는 스페인과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민족성에는 우울과 고독, 향수와 같은 정서가 내면에 깊이 존재하고 있는 반면,
스페인 사람들의 핏속에는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본능이 흐르고 있다."
파두 Fado라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파두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운명관과 정서가 깊이 배어있다. 운명의 노리갯감에 불과한 인간이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떤 대상을 열망하는 극단의 모순과 긴장.
음악적으로는 1800년 전후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풍이면서도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modinha와 경쾌한 춤노래 룬두 lundú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5세기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융성했던 제국 포르투갈과 19세기 문화융합으로 발생한 파두. 그 연결고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번 들어봐야지.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Amalia Rodrigues의 Barco Negro 검은 돛배와 Maldicao 어두운 숙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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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초, 유럽대륙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기를 지나고 있었고, 중국은 명나라 건국 초기로 정화의 남해원정을 마지막으로 바깥 세계로 향한 문을 닫아버렸다. 이 시기에 바닷길로 세계가 연결되기 시작했는데 그 나라는 유럽의 땅끝,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었다.
작지만 안정된 국가인 포르투갈은 해상교역권을 장악하기 위해 항해술을 발전시키고, 아프리카 연안을 돌아서 인도에 이르는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바로 해양대국 포르투갈을 일으킨 엔리케 왕자는 오늘날 항해왕으로 불린다. 포르투갈은 지속적인 탐험으로 1435년에는 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을 넘었고, 1487년에는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에 닿았다. 그리고 그 십년 후엔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했다.(1500년엔 인도로 가던 배가 바람에 밀려 오늘날의 브라질에 닿았다.)
인도에 닿기까지 아프리카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첫 번째 노예 시장이 1444년 포르투갈 라고스 근교에서 처음 열린다. 그래서 아프리카 인들을 기독교 세상인 유럽의 노예시장에 팜으로써 영혼을 구원하고자 했던, 지독한 기독교인 항해왕 엔리케는 노예무역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새로운 발견이 곧바로 새로운 정복으로 전이되는 장면이다.(발 로스, <지도를 만든 사람들>, 아침이슬, 2007)
포르투갈의 독무대였던 해양에 스페인이 등장한 것은 15세기 말이다.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막 독립국가를 성립한 스페인은 그 힘을 바다로 돌렸고, 포르투갈에서 항해술을 습득한 콜럼버스와 마젤란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 횡단 항로를 개척한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인도에 닿고자 시작된 항해로 인해 콜럼버스는오늘날의 남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마젤란 일행은 바다를 통해 지구를 일주했다.
이후 지구의 해양은 두 나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양분하여 지배한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연안을 돌아서 항해했고, 스페인은 대서양을 건넜다. 그리고 두 나라는 먼저 발견한 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 시기 스페인의 침략전쟁과 다른 대륙에서 건너온 전염병으로 인해 남아메리카의 인구가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인도에 살지 않는 인디언들.
그런데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융성했던 두 나라는 16세기 중반 급격하게 쇠락하고 만다. 개척정신으로 해양시대를 열었다는 관점으로 두 나라를 지목한 CCTV는 그 원인이 약탈로 쌓은 급격한 부는 일부 귀족에게 집중되었고, 사회경제체제는 빈약해져서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상황이 미래로의 길을 막았다고 분석한다. 돈키호테처럼.
"파도와 같이 일순간에 밀려든 재물을 종교와 식민지확장을 위한 전쟁이 모두 쏟아부었지만,
국가부흥을 위한 상공업 발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밀물같이 밀려왔던 재물들은 썰물같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귀족들은 사치에 빠졌지만 백성들은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세의 영웅을 꿈꾸던 돈키호테의 방패가 보호한 것은 옛 세상, 그의 칼이 내려친 곳은 새로운 세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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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가 대선이 끝나고, 개표가 끝나고, 새 날이 밝은 아침 일곱시 사십분에 자신의 홈피 http://www.oisoo.co.kr/ 에 올린 글이다.
세속으로부터의 은퇴
잘 있거라
어두워지는 세속
빌어먹을
순수여
썩어 문드러진
사랑이여
과거에서 멎어 버린
광장의 시계탑
찢겨져 펄럭거리는
이념이여
녹슨 양심이여
플라스틱
꽃이여
텅 빈 머리 속에
마른 모래만 서걱거리는
젊음
위선의 빵덩어리에
버터처럼
번들거리는
지성이여
벙어리 목탁이여
타락한 십자가여
이제 한 해는 저물고
나는
쓸쓸히
원고지 속으로
들어간다
잘 있거라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이외수의 글이다.
멎어버린 시계, 모래로 가득찬 머리, 버터같은 지성...
글쟁이는 글쟁이구나 하면서
들어갈 원고지가 없는 나는,
어디로 나가야하나 둘러본다.정지용, 까페 프란스 (0) | 2008.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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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어느 외로운 날, 취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밤
김광석이 부른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듣고 또 들었다.
노래야 귀에 익은 것이지만, 시는 새롭게 들린다.
꽃 피기는 쉬워도 ... 사랑과 죽음의 자유 ... 무덤도 없이 ... 산을 입에 물고 ...정지용, 까페 프란스 (0) | 2008.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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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서장 (0) | 2008.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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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러스킨,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김석희 옮김 (0) | 2007.12.28 |
김석희 선생은 젊다. 밤 늦게까지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체력體力과 주력酒力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모습도 그렇다.
얼마 전 함께 중국여행을 다녀왔던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선생이 책 한 권을 돌렸다. 존 러스킨 John Ruskin 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 전에 만났을 때부터 연말에 좋은 책이 하나 나온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 책을 챙겨나오신 것이다.
돈 주고 산 책은 종종 책꽂이에 그냥 꽂아두어도, 선물로 받은 책은 제법 열심히 읽는 습성이어서 시간 나는대로 훑어 읽었다.
1860년에 근대자본주의국가를 처음으로 형성해가던 영국에서 발표된 이 글은,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 등의 소위 주류 경제학 이론을 비판하며 러스킨 식 경제학을 주창하고 있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기술들에 대해서만 칭송하는 경제학(그 부가 만든 그늘은 무시하는)은 개인의 부는 확대시킬 수 있지만, 국가 전체의 부는 오히려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당한 경제학은 부의 바탕에 정직을 이 두어야 하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지키고 전체의 이익을 견지하며 사람에 대한 사랑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러스킨의 주장은 가슴을 울리는 바가 없지 않지만, 현재의 자본주의를 해석하고 대응해나가는 데는 유효하지 못한 것 같다. 19세기 중엽 자본주의화의 거친 물결 속에서 그 이면을 고찰하여 주장한 '도덕적' 자본주의랄까.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을 첨부한다.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2211635321&code=900308
[책@세상. 깊이읽기]‘사람’ 그 자체가 경제 목적 | ||
입력: 2007년 12월 21일 16:35:32 |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존 러스킨|느린걸음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되는’ 그런 사회가 바로 천국이라는 비유다. ‘합리적 이기주의자’를 가정하는 주류·비주류를 막론한 애덤 스미스 이래의 근대 경제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들로는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다. 마르크스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 살며 산업화하는 영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지켜본 저자는 자본론보다 7년 앞서 이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요성을 논했던 마르크스의 사상과 달리 너무 ‘온건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아니 온건했다기보다 근본적이었기 때문에, 성공한 상인이었던 그의 부친을 포함한 당시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외면받았다. ‘브레이크 없이’ 전진을 거듭하는 중이었던 당시 영국인들은 ‘근대 화가론’를 쓴 바 있는 저명한 예술평론가인 저자의 입을 통해 예의 그 고상한 미술론 같은 얘길 듣고싶어 했다. 저 자 스스로 이 책을 ‘부(富)의 정의’와 ‘정직의 회복과 유지’를 궁구한 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경제사상의 핵심은 ‘사랑’과 ‘정직’, 곧 ‘사람’이다. 그렇다고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말씀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부유함’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 묻는다. 경제학은 결국 ‘모두 다 부자가 되기 위한’ 학문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는 상대적이다. 내 주머니 속 1만원의 힘은 내 이웃의 주머니 속에 1만원이 없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저자는 “보통의 상업적 경제학자가 말하는 부자 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내 이웃을 계속 가난 속에 방치해두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상업적 경제학이 타인의 노동에 대한 법률적 청구권이나 지배력을 개인의 수중에 축적하는 것이라면 정치적 경제학은 단순히 유용하거나 쾌락을 줄 수 있는 사물을 가장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 생산하고 보존하고 분배하는 것이다. “적당한 시기에 건초를 베어 들이는 농부, 단단한 목재에 대못을 단단히 박는 목수, 잘 이긴 회반죽에 양질의 벽돌을 쌓아올리는 건축공… 이들이야말로 궁극적 의미에서 진정한 정치적 경제학자이고, 자신이 속한 국가의 부와 행복에 끊임없이 이바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이 실제로 욕심내는 것은 부 그 자체보다는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라고 본다. 그것은 “단순한 의미에서는 하인이나 상인이나 예술가의 노동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힘이고,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국민대중을 다양한 목적으로 이끌어가는 권위”일 뿐이다. 진짜 경제학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가르치는 학문”이다. 노동자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최고의 이익을 내는 것은 결코 강한 압력이나 높은 보수를 받을 때가 아니라, ‘최대한의 애정’이 발휘될 때라고 한다. 우 리는 근대 경제학과 함께 너무 많이 와버려 이런 얘기에 귀기울이는 것이 사치스럽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 ‘애정’ 등 인간의 정신적 요소를 합리적 결정을 교란시키는 우발적인 요인이라고 보는 근대 경제학은 옳은 것인가. 효율적이면 다 좋은 것인가. 우리는 이따금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석희 옮김. 1만2000원 〈손 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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