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2019. 8. 16. 16:45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욕망의 생활문화정책, 누구를 위한 누구의 욕망인가

/2018.09.03.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포럼 발제 자료

 

 

. 객석에서 무대로,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 문화민주주의로...

 

(1) 왜 문화민주주의인가?

 

1.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라는 사회에 직면해 있다. ... 과연 누가 집에 남겨진 노인과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는가?

 

2.

모두가 늙어가고, 활동반경이 현격히 줄어든 사회에서는 '지역' 속에서 서로 기대고 살아야 한다. ... 도시를 가로지느며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직은 ... 지역의 연결고리가 없고, 직장의 직위라는 여건 속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생활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권력이 끊어지는 순간 '나홀로'가 된다. ... 이들이 서로 관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내자는 것, 그것이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를 외쳤던 배경이었다.

 

3.

나를 표출하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통매체를 가짐으로서 나는 타인과 더 쉽게 관계하며 나를 표출할 수 있다. ... 내가 곧 문화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으로, 필자인 나는 각 개인이 '지역'이라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략으로서 문화민주주의를 말했던 것이다.

 

4.

문화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 한 개인이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문화체계) 속에 수동적으로 '편입'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그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활동하고 관계함을 말한다. ... 모든 문화는 갈등과 대립 속에 '전쟁'하며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한다. 그 생산 속에 내가 개입하며, 주체로 등장한다. ... 그것은 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함에 있어 개인의 문화가 존중되어야 함을 말하는, 개인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것이자 각 집단과 계층, 지역의 문화가 중시되어야 함을 말하는, 문화의 기본원리로서 '다양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5.

문화민주주의는 단편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화를 구성하는 기본원리로서 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정치를 만나면서 ... 늘 하던 대로 문화는 예술로 해석되고, 문화민주주의는 단지 누가 하느냐는 '주체'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6.

그 대표적인 방식이,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예술을 강요하는 것이다. 예술을 행복의 원천이라 말하며, 아마추어 활동을 강요하고, 1인 1기를 주창하는 그런 주장이다. ... 예술을 강요하는 것은 똑같다. ... 문화는 예술이 아니다. 문화는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고, 문화민주주의란 그 여러 층위 속에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고, 모두가 골고루 자기를 표출하며 하나의 문화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그것은 예술지상주의를 외치는 그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짓고, 경계를 형성한다. 

 

7.

'문화민주주의'는 예술을 강압하는 방식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사실 예술은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결과물이거나 그 생산물이다. 그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관람자인 수용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예술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작품들은 자신이 해석한 세계의 표출을 통해 누군가가 감동받고 변하길 원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가치를 설득하는데서 출발한다. 때문에 그 예술이 특정인이 아닌 '모두가 하는 방식'으로 바꿜다고 해서 문화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와 같은 소비적 방식이 아니라, 이 예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내 문화체계와 그것에 기초한 욕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화민주주의다. ... 예술은 그 자체로 혀성되거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소비되는 맥락에서 의미를 갖고, 소비된다. 때문에 특정인이 아니라 '모두가 한다'고 해서 문화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8.

'생활문화/생활예술'정책 ... 이것이 과연 문화민주주의인가? '문화의 민주화'를 좀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전략 아닌가? 과연 그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말하는 문화민주주의와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2) 문화민주주의에서 아마추어 활동, 동아리로...

 

9.
문화민주주의를 호명하며 새로운 문화정책의 전략으로 생활문화/생활예술이, 본래 문화가 갖는 ‘다양성’을 실천전략에서 ‘예술 동아리’ 전략으로 전락(!)한 것은 하루아침인 것 같다. 2014년 탄생한 <지역문화진흥법>은 그 우울한 전경을 현실로 드러낸다.

10.

<지역문화진흥법> 제2조 정의는 생활문화를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라 규정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문화적 욕구 충족’이 무엇을 말하는 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문화에 대한 규정에 기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 문화와 예술을 구분하지 않고, 문화예술로 연이어 예술을 수식하는 단어로 문화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문화는 차라리 액세서리에 가깝다. 

 

11.

제7조는 생활문화지원을 규정하고 있는데, 조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활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주민 문화예술단체 또는 동호회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 전문(업)예술에 의해 가려졌던 주민들의 일상적 문화가 제자리를 잡는 전략, 또는 각 지역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가 당당하게 사회에서 호명받는 전략으로서 문화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예술단체나 동아리를 지원하는 전략'으로서 사용되어 버린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 예술을 실천하는 전략으로서 생활문화가 도입된 것이다.

 

(3) 시민문화권과 '객석에서 무대로'

 

12.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 문화도시가 문화시민도시, 즉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도시' 계획으로 전환되었음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주요한 전략은 시민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 각 정책이나 사업이 시민, 혹은 집단과 지역사회, 계층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도록 문화영향평가를 두고 있고, 문화주체로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평생학습체계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이 관람객이 아닌 무대의 주체가 되도록 다양한 생활형 공간, 시민눈높이에 맞춘 문화 공간 조성, 누구나 필요하면 장비와 공간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화공간・공유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시민이 주도가 되어 그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13.

계획에는 물론, 여러 욕망이 섞여 있다. ... 실행하는 현장에서 그 욕망은 더 커진다. 그렇기에 계획주체는 실행되는 현장에서 '이게 원래 계획이었나'를 체감하게 되고, 실행주체는 '실현되지 못할 것을 계획해 놨네'라고 말하게 된다.

 

(4) 그리고, 생활문화의 탄생

 

14. 

2017년 생활문화가 탄생했다. ... 그것도 완벽하게 '폭발적'이고 '전폭적'으로...

생활문화사업은 '폭발적' 추진력과 '전폭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15.

우선, 공간지원사업이 있다. <생활문화지원센터> 조성・운영으로 대표되는 이 사업은 <생활문화지원센터>를 생활권형과 디딤형, 거점형으로 나누어 각 지역별로 생활문화 거점을 만드는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2017년 추진결과 총 50개의 센터가 조성되었다. 조성된 것은 생활권형 7개소, 디딤형 43개소다. 거점형은 조성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센터는 민간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생활권형 3개소가 공공이고, 나머지 4개소는 민간이다. 디딤형에서는 2개소를 제외한 41개소가 민간이다.
둘째, 생활예술활동의 결과로서 오케스트라 축제와 댄스축제다. 

셋째, 다른 한편 주력하는 것은 생활문화동아리 발굴·육성이다. 이는 생활문화진흥 사업의 핵심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캠페인 사업이다.

 

16.

사업 구조로 보면 자치구와 협력을 통해 FA를 동원하여 동아리를 발굴육성하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거점을 제공하며, 그 결과를 축제로 발표하고, 이를 통해 여러 시민의 참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17. 

나는 우선 생활문화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도대체 생활문화는 무엇일까? 그리고 또 생활예술이란 무엇일까?

 

(1) 다시 생활문화에 대하여

 

18.

우리는 우리의 의도대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본래의 개념성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사용할 뿐이다. 그렇기에 생활문화는 더 이상 생활문화를 지시하지 않는다.

 

19.

<지역문화진흥원> 웹사이트에는 ... 생활문화공동체는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를 매개로 한 자발적인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고, 이러한 활동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의 품격과 행복온도를 높여나가는 공동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 좀 더 나아가면 그들이 만든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자료에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의 목적이 소개되어 있다. ... 간단히 말해 생활문화란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문화 활동, 아니 정확히는 문화를 매개로 하는 활동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 것이고, 그것으로 문화소외 지역의 격차해소와 (주민의) 주체적인 문화활동, 마을을 넘어선 지역의 문화형성과 지역 간 소통기회마련을 목적으로 한 사업으로 설명된다.

 

20.

아주 간단하게 생활에 내재된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고, 수사(修辭)에 수사(修辭)를 달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일까?

 

21.

사실 이런 방식의 해석은 문화가 어떤 정체화 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것을 특정한 상태로 만드는 행위자적 개념으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22.

정책사용자에 의해 이 문화(생활문화)는 주관자로서 행위를 획득한다. 그래서 '문화를 매개로 한 자발적인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문화적 삶을 향유하고',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 주체로서 활동한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과연 이게 문화민주주의로 호명된 생활문화 정책이 해야 할 일일까?

 

23.

문화소외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문화향유를 일상화하며, 마을을 넘어선 지역단위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난 이 말을 도대체 이해 못하겠다.

 

24.

모두가 알 듯, 문화란 모든 곳에 잠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어떤 집단이나 계층, 지역, 공간 등에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문화는 어떤 우수성과 우선성을 말하지 않은 채 단지 그 집단과 계층, 지역, 공간의 정체적 상태를 얘기할 뿐이다. 그럼에도 문화소외지역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문화가 갖는 불편부당성과 편재성, 그로부터 오는 다양성의 본질을 무시하는 태도다. 문화다양성과 그것으로부터 구성되는 문화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얘기라는 것이다.

 

25.

이것을 예술로 바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이해는 편해진다. “‘예술을 매개로 한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예술적 삶을 향유하고’,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것이 생활예술공동체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의 목적은 예술소외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주체적 예술향유의 일상화 및 지속기반 마련, 지역단위 공동체 형성을 통한 지역문화 형성 및 지역 간 소통기회 마련 등을 목적으로 한다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라 하더라도 문화민주주의를 호명할 자격은 없다.

 

26.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술은 전쟁터 중 하나다.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행동하는 순간 특정한 가치체계를 강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각 개인이 자신을 미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전자일 경우는 문화의 민주화전략이며, 후자는 문화민주주의전략이다. ...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의 기술로서 예술이 소외된 지역이 있을까? 곧 생활예술의 개념을 설명하겠지만, 예술은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며, 찰라적인 가치의 산물일 뿐이다.

 

27.

정확히 말해 생활문화는 육성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활 속에 정체되어 나타나는 산물을 말할 뿐이다.

 

28.

아름다운 생활문화, 품격있는 생활문화, 예술적인 생활문화를 만들자 할 때, 예술은 그 생활문화는 만드는 매개물로서 자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의 우선성, 특정한 가치체계, 이성의 산물로서 예술 등을 상상하는 것이다. 각자의 삶에 내재된 것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예술이 아니라, 특정 가치체계를 개입시켜, ‘삶의 품격을 놓이고 행복의 온도를 높이고자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문화란, 또 예술이란 삶으로부터 나온 그 어떤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민주주의가 아닌 문화의 민주화를 실천하는 고도의 전략으로서 예술을 생활 속에 개입시키고자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건 그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2) 이제 생활예술에 대하여

 

29.

생활예술에 대해 말할 때 ... 분명히 위계가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활문화와 같은 위계에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30.

다른 한편, 생활예술을 말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자율적인 시민의 문화-예술이겠죠-활동'이라 말하며, '전업 작가의 예술'과 구분하는 것이다.

 

31.

이런 종류의 분류법은 예술이 갖는 내재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겠지만, 예술은 근본적으로 감동을 매개로 한 결정체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조건으로 감동을 말했고, 감동을 주어야만 예술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감동은 주관적이고 찰라적이다.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없다. 특정한 맥락과 매개 속에 감동을 주며, 사람을 움직인다. 때문에 예술은 그 자체로서가 특정한 맥락에서 가치를 획득하며, 의미를 부여받는다.

 

32.

이 예술이 고정화 된 것은 산업주의의 산물이다. 익히 알 듯, 아트(fine art)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그 자체로 실재를 추구하고 목적하는 행위로서 예술을 말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장르가 탄생한다. ...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 상의 문화예술 개념 또한 이에 따른다.

 

33.

생활예술이 같은 영역으로서 전업예술가가 아닌-쉽게 말해 예술인복지법 대상이 아닌, 일반인(시민)들의 예술이라면, 그렇게 해석된다면, 생활예술은 장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이 경우 이 예술은 무엇을 말할까? 서양예술체계에 갇힌 예술을 일상 속에 집어 넣는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급화 된 문화의 민주화를 위한 수행전략이 된다.

 

34.

일상에서 예술은 그와 같은 파인아트와는 다르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순간적이고, 찰라적이며, 맥락적이다. 감동을 전제로 설명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며 오싹한 전율을 느낄 때 야 예술이다라고 말하면 그 때 얻어지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어떤 대상이나 행위에 내면의 공감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장르의 벽에 갇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생활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는 다양한 생활기술과 표출의 능력, 관계의 영역을 가리킨다. 우리가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을 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같이 공감하며 놀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일상의 감동이 단지 장르적 예술에서 제한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 속 예술, 생활예술은 주민이 스스로 그들을 표출하며 드러내는 양상이다. 그것은 전업예술가든 아마추어든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의도한 목적만 가릴 뿐이다.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표출하며, 타인과 관계하는 영역에서 작동할 때 그것은 생활예술이다. 그것을 떠나 상업적 혹은 대중적 소비를 목적으로 활동할 때 그것은 전업예술이다.

생활예술을 사람의 영역으로 구분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을 장르적으로 해석하지 마라. 그것을 생활 속에 넓게 펼쳐진 다양한 양상일 뿐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자신을 표출하고,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며,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때 그것은 예술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 이제 다시 현실로

 

39.

나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예술을 강압하는 새로운 전략으로서 생활문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생활 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행위체계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생활문화 사업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르적 행위가 되어선 안 되며, 삶의 기술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양상을 만들어야 한다.

 

40.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사업을 함에 있어 정부의 최소한으로 개입을 요구한다. 개인이 자기 삶을 바꾸고 안 바꾸고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우리가 아무리 재미없는 삶, 의미없는 삶이라 보아도 그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 생활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41.

그렇기에 난 '최소개입주의'를 말한다. 그들이 원하고자 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악기를 배우고 싶은 데, 악기가 없을 때 악기를 빌려주고, 좋은 강사를 소개시켜 주며, 괜찮은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을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유일한 관점이 있다면, 그들이 '원할 때'이다.

 

42.

내가 주장한 뭐든지 지원센터는 동아리들의 거점 또는 활동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구해주고 공유해주는 거점시설, ‘플랫폼과 같은 것이다.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에서 제기했던 문화장비시설공유센터가 바로 이런 것이다

 

43.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최영주 사무처장은 행복이란 관념적 척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다양한 행복지수를 어떻게 수렴하고 만족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과연 지표개발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관심공동체에서 취향공동체, 문화자원봉사공동체, 문화축제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에 대해 이런 구조설정은 이른바 선수’(문화기획자들)이 추진하는 사업구조와 닮아 있다라 지적한다우리가 문화의 다양성, 가치의 다양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면, 문화정책에 있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개인의 주관성과 가치,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이한 문화체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44. 

그것이 자신의 삶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완성하고 상업적 혹은 대중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지원은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란다고 본다. 그러나 생활예술,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예술은 자칫 커다란 상처와 낙담을 낳는다. 정치를 향한 분노는 명확한 선을 가르고 경계하도록 만들지만, 일상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변수와 관계 속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정치지형과 관계도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서 단지 동아리라고 해서 묶어버리고 지원해버린다면 그것은 누굴 위한 지원일까?

 

45.

시민의 욕구는 순간순간 변화하고, 다양한 관계망과 얼개를 만들어 낸다. 그 욕망에 대응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면, 생활문화 정책은 정부의 욕망에 의해 한순간 불타오르는 사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보다 정확히 시민의 욕구를 살피고, 그에 대응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여러 기관과 네트워킹하며 그들이 다양한 기관과 시설을 활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FA라는 생활문화 전문가(?)들이 동아리 발굴을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욕망과 욕구를 발굴하고 이해하며 필요한 것들을 찾고,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이 그에 필요한 각 자원이 있는 기관과 협력하고 필요한 것을 연결시켜주며 활동의 공간을 찾는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 그래도 남는 문제

 

(1) 마술소와의 관계

 

46.

몇 가지 문제 ... 그 첫째는 선행이었던 <마을예술창작소>를 배제함으로 인해 발생한 행정적 혼선과 사업의 중복이다.

 

47.

정부가 <생활예술지원센터>를 설립구상을 할 때, 참고했던 모든 자료가 <마을예술창작소>. 그 모든 형태는 다 따갔으며, 핵심인 민간주도형만 버렸다. 그리고 관()주도로 관()의 시설에 실적 중심으로 시설을 설치했다. 그 설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48.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은 혁신적인 계획과 엄정한 관리, 그리고 운영주체 간 화합과 협업 속에 자체 중간지원조직이 형성된 정말 환상적인 사업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생활문화계획 속에 어디에도 상정되거나 고려되지 않았고, 마치 없는 듯한 취급을 받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49.

민간의 자율성에 호응은 못해줄망정, 자신의 사업체계 내로 민간을 편입시키는 이 방식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나는 이 부분에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모두 깊은 반성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2) 지역문화본부, 지역화로 방향을 잡은 문화예술교육’, 지역을 매개로 하는 생활문화지원단’, 그들의 협력은?

 

50.

지금 서울시의 모든 문화정책은 지역을 매개로 달려가고 있다. 아니 문화정책만이 아니다. 도시정책, 마을정책, 행정 모두 마을을 향해 달려간다. 그럼에도 이들 간에는 협력이 없다. 모두가 따로 노는, 각자의 관계와 협력망을 형성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51.

우리가 정부의 지역문화 정책을 말할 때, 핵심은 지자체가 꾸려놓은 '지역문화재단'을 마구잡이로 자신의 정책협력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산의 자율성이나 사업구성의 주도성, 예컨대 지역분권을 말할 때 기초적 원리인 보충성의 원칙따위는 없다.

 

52.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 계획에는 문화예술교육만 지역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생활문화 사업은 이런 형태로 추진될지 예상하지 못했으며, <지역문화본부>는 만들어 질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53.

우리가 어떻게 지역-자치구 등-과 협력해야 하는지, 지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우리-서울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하는 방식의 오류를 우리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3) 정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것들

 

54.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다만, 결론적 차원에서 다시 정리해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55.

우선, 최소한의 영역에서 개입하기 위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하고자 했을 때 없거나 부족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항목을 정해 리스트화 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56.

이 응답할 체계를 갖추는 데 새로운 시설과 장비, 공간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존 시설과 기관, 장비, 공간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일이다. ...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이 기관과 협력이다. 각 기관과 협력을 통해 주민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어느 한 기관에서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불편함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이다.

 

57.

그리고 더한 노력이 있다면, 민간을 중심으로 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다서울에 사는 뛰어난 예술가나 문화기획자, 사회혁신가를 네트워크로 묶어 필요한 곳에 연결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며, 그들이 생활문화 사업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해하며, 시민의 입장에서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가들의 주체적 참여를 유발하기 위한 많은 토론과 적절한 비용보상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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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자치구와 협력이다. 자치구는 행정의 하위단위가 아니다. 동등한 협력자이자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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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도 거버넌스 25라는 명칭으로 자치구와 협력이 추진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치구의 자율성과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은 서울시 목표 중심의 협의구조다. 이것은 명확한 의미의 거버넌스는 아니다. 정책실현의 협조대상일 뿐이다.

명칭에 걸맞은 거버넌스를 하려면, 각 자치구에 우선권, 자기결정권을 줘야 한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그렇게 주어진 결정권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컨설팅하고 다음 년도 사업을 위해 모니터링해주는 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결정된 것들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 예컨대 재정이나 사람, 시설, 장비 등을 지원하는 게 서울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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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성의 원리, 그것은 문화정책에 있어 지켜져야 할 첫 번째 원리 중 하나다. 문화는 가장 구체적인 장소와 지역, 집단에 정체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치구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의 협력을 통한 진짜 생활중심의 생활문화가 펼쳐지길 바란다.

 

 

 

욕망의 생활문화정책, 누구를 위한 누구의 욕망인가 발제문(라도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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