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8.02 이창동, 아네스의 노래
  2. 2008.01.30 이용악, 낡은 집
  3. 2008.01.23 정지용, 까페 프란스
  4. 2007.12.29 정호승, 부치지 않은 편지
공부2010. 8. 2. 13:42
  말을 잃어버린 시대
  세상에 눈감아버린 시대
  이창동의 영화 '시'는 나이먹고 힘없는, 하지만 소녀의 감성을 갖고있는 양미자를 통해 묻는다.

  영화를 보면서는 어려워서 들리지 않았던,
  양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를 찾아봤다.
  여전히 좀더 쉬웠으면 하는 단순한 생각...



아네스의 노래

   - 양미자(윤정희 역) or 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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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2008. 1. 30. 22:10

낡은 집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한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 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이용악,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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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2008. 1.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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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2007. 12. 29. 04:00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어느 외로운 날, 취해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밤

  김광석이 부른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듣고 또 들었다.

  노래야 귀에 익은 것이지만, 시는 새롭게 들린다.

  꽃 피기는 쉬워도 ... 사랑과 죽음의 자유 ... 무덤도 없이 ... 산을 입에 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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