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18 크로키 글쓰기
  2. 2010.04.30 우석훈, 괴물의 탄생
  3. 2010.03.22 부패와 정의
요즈음/이러고 지내2010. 6. 18. 09:16
우석훈이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강좌를 한다고 해서, 심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에 까페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http://cafe.daum.net/woo-s
과제로 쪽글이란 걸 내는데 첫 주제가 크로키 글쓰기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시작인데, 용감하게 일찍 퇴근해서 갈까...나?

일찍 깬 아침, 나는 반바지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이들의 쪽글을 주욱 훑는다.
"아니, 스토리 풍부한 인재들이 다 어디 있었지? 아닌가 내가 주변 사람들이랑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은건가??"
대학교 1학년일 때 제일 말랐었다. 밥은 안챙겨먹고 빨빨거리도 돌아다녔으니 그도 그럴만.
지금도 손목이며, 종아리 허벅지며, 가슴이며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강파르던 볼살이 조금 붙었고 배둘레에 기름이 좀 끼고, 살이 물렁해졌을뿐, 이라고 하려했지만 무지 큰 차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은 1년 다니고, 1년 휴학하고, 또 1년 다니고, 군대갔다와선 복학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때 물리가 제일 쉬워서 물리학과가 특성학과인 학교에 갔는데,
그 땐 대학원이란건 내 사전에 있지 않아서, "졸업해서 취직하고 살면 재미없겠다." 싶었다.
그때 특별소집 가족회의를 했는데, 나의 대학 자퇴에 대한 단일안건은 5분도 안되어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쿨한 가족.
한 참 지나서 돌이켜보니, 그때 어머니는 세 자식 등록금이 감당이 안되셨던 거다.(너무 늦게 알았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이 자식들은 아르바이트란건 할 생각도 안하고 대학을 다녔다.

그런 이유로 대학을 관둘 위인이니 뭐 세상을 그닥 열심히 사는 인간은 아니다.
하여 많은 날들을 백수로 지냈는데, 2000년 경에 1년 반정도 그리고 2008, 2009년 2년동안은 월급을 받았다.
둘 다 반-스카우트 형식이었는데 '청소년수련관'과 '문화예술교육'이다.
이런 일자리는, 내게는 적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넉넉치 않은 급여가 책정된다.
2000년에 하던 일은 내가 좀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신념 혹은 절차문제로 그만두었고
작 년까지 하던 일은 '일주일에 5일씩 출근하니까, 인생이 쫌 고롭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3월부터 주 3일로 줄였다.
일 많이 하기 싫은 직원과 돈 없는 기관의 합작품이다.

일을 줄이면서, "이후 반평생은 뭐하고 살지" 궁리하기로 했다.
"나랑 주변사람 몇 먹을거리 키우면 사는데 아무 문제 없겠다"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쉽지는 않다. 가까운 곳은 땅값이 택도없이 비싸고 먼 곳은 내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 우선은 텃밭을 조금 구해 손에 흙 묻히고 있는데, 한날 같이 심었는데 내 자식들은 제대로 자라는 놈이 별로 없다.
그리고는... 별로 진척되는 궁리는 없다.
우석훈의 강의를 들으려 하는 것도 삶의 궁리중 하나.
여유로와진 시간 사이로 이런저런 일들이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월급을 받지 않고 살았을 때를 돌아보면, 희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어떻게 앞가림을 하고 살았는지.
물어보나마나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었을 것이다.

난 내 얘기를 하는게 서툴다. 친구에게도 애인에게도. 술자리에서도 맨정신일 때에도.
위에 내보인 크로키들은, 어쩌면 잘 그려진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크로키들은 우선은 그냥 접어두고.


**** 과제

보통은 강의 끝나고 쪽글 주제를 내지만, 이번은 약간 특수한 상황이라서, 첫 쪽글은 미리 냅니다. 서로 인사들 하시고, 좀 편해지시라는 의미에서.

크로키라는 글 쓰기 기법이 있습니다.

짧게 인상과 단상을 그려내는 것인데, 저는 글 쓰기 연습 테크닉 중의 하나로 종종 사용합니다.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느낌과 상황을 동시에 묘사하는 그런 기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많이 쓰면, 너무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가볍게 압축하고, 그 중간 중간에 자기 목소리를 담아내는 기법에 익숙해지지요.

자, 주제 나갑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온 삶을 간단하게 크로키 기법으로 묘사해보시기 바랍니다.

요령은, 무겁지 않게, 길지 않게.
(이름이 궁금하거나, 직업이 궁금한 것은 아니니까, A4 한 장 이내로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가볍게 터치한다는 마음으로...)


Posted by
공부2010. 4. 30. 13:30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을 다시 읽었다.
  처음 봤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다시 봐도 새롭고 재미있다. 나에게 좀 더 남았기를...

  우석훈은 한국 경제를 '괴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경제가 이중경제의 8자형 구조로 진행해 가고 있고, 그 꼭대기에 중앙형 토호와 지방형 토호가 올라 앉아 있다는 해석의 표현이다.

  문장으로 풀어서 정리하고 싶었으나, 다시 참고용으로 키워드 중심으로 올린다.
  1부에 정리된 내용은,
  [자료정리]괴물의 탄생1부_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이론의 변화(우석훈)|작성자 엽집
  에서 가져왔다.

****
우석훈, 괴물의 탄생, 2008, 개마고원

책머리에

여는글/우리들의 ‘위대한 선택’에 관하여

1부 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이론의 변화

첫번째 강의_개강: 한국에서 경제학을 한다는 것
경제학 안에는 순수이론에 해당하는 학문 분과가 있습니다. 경제학사와 연계하여 경제학의 철학적 근거를 만들어 나가는 경제철학과 수학적으로 정형화된 방법론을 사용해서 이론의 근간을 만들어가는 수리경제학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학문 모두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서 그 흐름이 끊겼습니다. 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학문의 실용화와 종속화, 순수학문의 거대한 죽음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경제학에는 무조건 시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와 외국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응용하는 학자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를 좀 더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통로는 막혔고, 한국은 도그마의 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명박이 외치고 있는 실용 또한 이론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믿음의 영역, 도그마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은 왜 위기인걸까요?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에 좋은 경제학자가 없는 이유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에 좋은 경제학자가 왜 없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모든 것이 너무 잘 될 때에는 학문이 필요 없고, 정말로 학문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는 그 위기가 너무 빨라서 미처 학문적 대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강의_자본주의의가 가장 아름다웠던 18세기
자본주의는 어떻게 인류사에 등장하게 되었고,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요? 21세기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답은 15~16세기 유럽의 경제적 팽창이 만들어낸 ‘자기 진화적 체제’라는 것입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을 창구로 하여 유럽에 다량의 은(銀)이 유입되었고, 18세기 영국에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15세기 이후 시작된 경제적 번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는 사회를 맞습니다. 또 다른 기점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입니다. 지금 애덤 스미스는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친기업적인 성향으로 국민경제를 움직이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그는 생산과 교환이라는 실질적인 경제행위를 강조하였고 건전한 국가운영에 진짜 관심을 두었습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이명박과 애덤 스미스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기업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라 경제적 성장과 임금, 지대, 이윤율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다보면 기업이 결국 최고의 승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애덤 스미스는 장기적으로 정부가 기업들의 달콤한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되고, 그들이 제시하는 세제 개편 혹은 규제 철폐와 같은 것들에 대해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애덤 스미스는 또한 지주, 기업, 노동자 그리고 이들을 조율하는 국가라는 국민경제 프레임에 대한 개괄적인 밑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본과 시장이라는 범주가 추가된 하나의 시스템이 자본주의입니다.

세번째 강의_위기 그리고 또 위기: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등장
19세기는 유럽은 잦은 전쟁에 시달렸고,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러시아’에서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경제방식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1929년 기업과 자본의 투자관계에서 ‘대공황’이라는 두 번째 위기가 발생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자본주의의 붕괴까지 걱정하던 이때 케인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1936년 <일반이론>을 통해 국가가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요. 이를 통해 정부의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기본으로 하는 ‘거시경제학’이 생겨났고 이후의 자본주의를 ‘수정자본주의’라고 부르게 됩니다.

네번째 강의_국가와 시장의 경쟁, 그리고 제3부문의 존재
케인스 주의의 등장 이후 1차 석유파동이 닥친 1974년까지 유럽과 미국 경제는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습니다. 이 시기 노동자들은 가장 눈에 띄는 경제적 지위를 변화를 겪게 됩니다. 강한 케인스주의와 약한 사회주의 사이에서 운용되던 경제는 하층부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마름모형 경제구조가 만들어지죠. 그러나 1974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이러한 경제번영의 시기는 종말을 맞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 시기에 영국과 미국에는 대처, 레이건이 등장하여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조세를 줄이는 등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칩니다.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최초의 좌파 대통령 미테랑이 취임하여 국가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공공부문을 강화하는 식으로 사회주의적 정책을 펼쳐나가죠. 1980년대에는 이 둘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1990년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이 균형이 무너집니다. 세계화, 금융화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일종의 대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3만 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을 올리는 국가들에서는 국가가 기업에 완전히 떠밀려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서 필자는 이윤 극대화를 통해 움직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실체 ‘제 3부문’을 들고 있습니다.

제 3부문의 예로 필자는 대형할인마트의 입주에 대항하여 결성된 스위스의 소상인연합, 덴마크와 영국의 소규모 자영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단체, 프랑스의 소규모 가족형 기업들, 프랑스 장인들의 작업장, 북이탈리아의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클러스터’라고 불린 작은 가게들과 생산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경제활동 등을 들고 있습니다. 필자는 무정부주의, 호혜주의에 가까운 이러한 영역이 국가와 기업 사이에서 버퍼(buffer)역할을 하며 이 영역이 활발한 국가들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이고 편안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 3영역을 자본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조심스럽게 제시합니다

2부 괴물의 탄생: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다섯번째 강의_압축성장과 국가의 역할
한국경제는 (군부)개발독재에 의한 계획경제에 바탕한 것으로, 재벌 육성을 통한 압축성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1961  5.16 군사쿠데타
1966  삼성,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
1968-70  경부고속도로 완공(현대건설)
1973 73년체제 (1972년 12월 유신헌법 이후)
    : 국가주의형 케인스주의 - 중화학공업 주축 성장전략
1974 1차 석유파동
1979  79년 공황(2차 석유파동에 이은)
1980  전두환 장군 집권
    : 국가주의 강화
1997  IMF 경제위기

여섯번째 강의_‘삼성공화국’의 등장과 거듭된 시장의 승리
1998.3  김대중 1기 : IMF 경제위기
2000.7 김대중 2기 : 경제위기 회복기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 공식 분리(2001.4)
    삼성구조본, 법률회사 김앤장, 재경부 전현직 고위 간부로 구성된 3각 동맹체제 형성
2003.3  노무현 1기 : 2만달러 경제, 한국형 뉴딜
    건설 위주의 경기부양, 토목형 균형발전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2005.5)
2006.10 노무현 2기 : 한미 FTA
    ‘신자유주의
2008.  자본정권 이명박 등장

일곱번째 강의_중앙형 시스템의 비극, 토호와 자치 문제
한국경제 를 보는 특수한 눈 : 농지와 토지의 문제, 수도권 집중과 지역토호
1948  ‘유상몰수, 유상분배’에 의한 토지개혁 이후 농사짓지 않는 토지소유자 확대
‘외지인’과 ‘자치의 실종’

여덟번째 강의_괴물의 탄생, 실종된 제3부문과 파시즘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일관되게 강화되어온 신자유주의,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과도한 금융시장의 개방, 다른 자본들을 압박하는 건설자본의 과도한 비중
박정희 시절의 그린벨트제도와 전두환 시절의 의료보험제도
8자형 경제 : 주거공간, 교육기관, 시장
공식경제와 비공식 경제의 분할
사 회적 경제(제3부문)와 파시즘의 기로

3부 괴물의 해체: 한국 경제의 대안과 3가지 과제

아홉번째 강의_한국 경제의 대안에 임하는 생각: 고용, 공공성, 생태-문화적 가치
공 동체, 증여의 경제, 믿음 : 생협,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
‘이윤 극대화’의 원리로 전부 환원되지 않는 것.
스위스 의 경우 : 식품을 중심으로 한 농업의 재발견, 노동에 대한 전혀 다른 가치관
    대학등록금 연간 50만원, 대학진학률 18-20%, 사회적 마에스트로 시스템
    그리고 제3부문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
높은 임금, 낮은 안정성(대기업) : 낮은 임금, 높은 안정성(공공부문) : 노동과정이 유연한 직장(제3부문)

열번째 강의_사교육 해체와 교육문제의 대안
1. 사교육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작
2. 중등교육에서의 표준교육을 줄이고 지식과 문화교육 비중을 높임
3.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지식과 문화 프로그램 제공
4. 대학 등록금 문제 : 시장의 것은 시장에게, 공공의 것은 공공에게

열한번째 강의_‘고담’ 대구와 ‘토건’ 전주: 토호구조, 자치, 문화
중 앙형 토호와 지역형 토호
정주 定住

열두번째 강의_한국 경제의 새로운 전환, 제3부문을 위한 노력: 삼각 균형의 국민경제론
제3부문 : 시장도 아니고 국가도 아닌 경제실체
호혜성, 명예, 종교적 신념
상호이익과 공공선
종교가, 대기업이, 정부가

열세번째 강의_종강: 세계 경제에서 한국 경제가 갖는 의미와 그 교훈
“부 자되세요”란 인사는 하지 마세요.

닫는글/우리는 지는 법이 없다!
Posted by

  그래 당분간 <삼성>은 안쓰기로 했다.
  안쓰기로 했다지만,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는데 별로 쓰던 것도 없어서 사실 조심할 것도 별로 없다.
  이마트랑 홈플러스 정도.
  가끔 생협에 주문하고. 시장가기 캠페인을 혼자 하고 있으니 그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갈 일이 있다.
  집 근처에 괜찮은 가게가 있으면 좋으련만...
  <삼성>을 안쓰려는 건 혹시나 하는 기대때문이다.
  혹시 매출이 좀 떨어져서, 이건희가 긴장한다면... 하는 기대.
  슬그머니, 챙길 거 다 챙기는 권력한테 질려서 습관성 패배주의가 된 듯도 해서.

  작년에 날 즐겁게 했던 박동천은,
  “' 삼성 타격'보다 '서초동 개혁'이 중요하다”고 했다.
  옳다기 보단 그게 더 현실성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일에는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 너무 먼 법.

  퇴근하려다가 우석훈 글을 보고 빵 터졌다.
  굵고 짧게, 장하다, 한나라당
  장하다, 한나라당.
  가늘고 길게 살려는 우리 같은같은 생활인들과 달리,
  굵고 짧게를 몸소 실현해보여주시는.
  영웅들의 시대가 돌아오는 듯 싶다, 부패 영웅들의 시대.

  올해 새로이 보고 있는 김대호는
  <복지도시를 만드는 6가지 방법>에 대한 서평에서,
  하지만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선택의 키워드는 '정의'인가?
  결코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부패'인가?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