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10.10.2.

문화예술교육 콜로퀴엄 : 미래사회와 문화예술교육

예술교육에서의 인간 이해 - '인간'과 문화예술교육


미학적 인간과 의미론적 인간

_신승환(가톨릭대학교)


1. 머리말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과정에서, 약 2,500년 전쯤 '이해 체계'라는 커다른 전환이 있었다. 세계와 자연, 인간과 다른 인간, 역사화 문화, 사회와 삶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며,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행위. 이것은 지식이나 진리란 이름으로, 때로는 앎과 직관으로, 또는 믿음의 체계와 신념으로 형상화 되었다. 인간이 지닌 앎과 이해의 과정, 스스로의 지성과 스스로에서 이 모두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 생물학적 인간을 문화적 인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지성적 노력 일반을 우리는 철학이라 이름한다. 철학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자기이해 self-understanding 의 과정이다.

철학이 말하는 최종 근거와 근원은 결국 진선미가 일치하는 데 자리하며, 이것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이루어가는 인간의 자기이해 과정이 곧 인간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철학과 윤리, 예술은 이런 면에서 인간의 본질적 이해 노력의 과정에서 일치하며, 그에 대한 재현의 방식에서 차이를 지닌다.

철학과 예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이해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만 철학은 이 과정에서 어떤 지서적 능력으로 문제의 역사를 추적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구별된다. 또한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관점에서 객체적 지식을 말하는 과학과 다르지만, 근원에 대한 체험과 재현이란 관점에서는 예술과 같은 지평에서 만나게 된다.

근원에 대한 체험과 그에 대한 존재의 의미론적 재현이란 관점에서 철학과 예술은 같으면서 다르다.(동일성과 차이) 서구의 전통은 철학과 예술의 동일성과 차이를 진리 이해와 인간의 지성적 특성에서 찾았다. 그것은 객체적 진리와 존재론적 진리, 이성과 감성의 구별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미美의 현상, '아름다운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한 미학  Aesthetics은 “감성적 인식의 학문”을 가리킨다. 진선미에 관계하는 인간의 이해체계를 지성과 감성, 의지의 세 분야로 구분하여 다룬 전통은 라이프니츠가 정리한 것처럼 논리학(이성), 윤리학(의지와 행위), 미학(감성의 영역)으로 분류되었다. 아름다운 것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은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 즉 감성, 감각적인 직관, 그 현상에 관한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학은 지각 aisthesis, 즉 감성적 지각에 관한 학문이다. 

예술교육은 예술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예술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간 존재에의 이해와 해석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2. 인간의 자기 이해


1)

그 시대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표상은 언제나 그 시대정신과 관련하여 거듭 새롭게 해석되고 다시금 주어진다. 새로운 이해와 사유의 패러다임이 제시될 때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인간상을 표상하고, 그로써 그 시대정신을 재현하는 것이다. 시대란 시간이 그때마다 '현재'(지금-여기)로 재현된 모습이다.

현재란 지평에서 형성된 인간의 자기이해, 그 안에는 보편적 인간이해와 함께 현재의 지평에서 다르게 이해되는 인간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은 일차적으로 '사이 존재'로 이해된다. 인간은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 사이, 출발과 완성 사이에, 공간적으로 우주와 이곳 사이, 육체적으로 욕망과 이상 사이, 감성과 이성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그의 정신과 의식은 생명의 첫 시작에 근거하면서도 또한 신적인 영성을 향해가는, 그 사이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다. 하늘을 바라보지만 땅 위에 자리한 존재, 욕망에 매여 있지만 그를 벗어나기를 원하는 졸재, 이성의 원리에 합당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감성의 움직임에 마음을 기울이는 존재이기에 그는 근원적으로 모순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서 주어지는 근원적인 중간자적 상황과 모순성을 내적으로 매듭짓고 자신 안에서 통합함으로써, 이를 넘어서려는 과정에서 자신을 이루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영원히 교육받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 paideia 개념은 어떤 주어진 원리와 객체적 지식을 주입하고, 외적 목표를 향해가는 훈육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이루어가는 양성으로서의 교육을 의미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학적 지평은 주어진 조건과 역사적 경험이며, 미래를 향하는 초월성인 것이다. 주어진 역사적 경험, 초월성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시간은 '지금, 여기' hiter nunc란 시간적 지평으로서 현재이기에, 인간의 자기이해는 현재에서 이루어지는 이해와 해석의 행위이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그를 위한 존재론적 성찰을 의미한다.


3)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 조건과 한계, 근원적 모순성에 의해 실존적으로 불안하고 허무한 존재이면서 존재론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며 이를 구현하는 충만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간이 수행하는 근원적 의미 추구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의미론적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타자, 우주와 역사에 의해 관계지어져 있는 존재이다. 관계 안에서 인간은 타자에 연결되어 자신을 이해하며, 타자의 존재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궁극적으로 책임의 존재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관계와 책임을 의미한다. 그것을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윤리 ethics라 이름한다. 윤리란 한 사회의 관례적 측면 Ethos과 개인의 실존적 열정 Pathos을 조화시키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에 있다.


4)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정신을 채현하는 보편적이고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근대의 인간 이해는 이전 시대와는 달리 자신이 지닌 능력, 특히 이성과 계몽된 정신으로 세계와 자연에 맞서는 진보적 인간상으로 재현되었다. 근대를 극본하고 이를 넘어서 새로움을 향해 가려는 시대적 요구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은 어떻게 재현되는 것일까.


3. 미학적 존재


1)

칸트의 말처럼 인간은 진리와 선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와 함께 인간은 진선미에 관한 질문과 행위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규정하면서, 그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결정해 간다. 인간의 자신의 이해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결정되는 존재이기에인간은 이해하며 해석하는 존재이다. 생물학적 층위를 넘어 인간을 이해한다면, 그는 이러한 존재론적 의미 지평에 자리한 존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

이러한 존재론은 인간이 지닌 지성적 능력, 이성 logos-nous, rationality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성이 근대에 이르러 사물을 인식하고 지식을 얻는 인식 이성으로 규정됨으로써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은 이성을 넘어서는 존재성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성과 감성은 물론, 인간이 지닌 초월적 지평에 관계하는 영성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특성 가운데 하나가 미학적 이성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학적 이성에 의한 인간의 존재성은 심미적 이해를 자신의 존재에서 이끌어내는 존재, 아름다움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특성, 미학적 존재 homo aestheticus라 이름할 수 있는 특성일 것이다.


3)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독특한 심성이다. 예술은 다만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에 의해 표현되고 재현된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예술적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근원에 흐르는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과 그에 대한 재현, 그 안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는 같은 근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술이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인간이 그것을 자신의 존재를 통해 이해하고 재현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아름다움에의 체험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존재 이해이며, 작품은 그것이 재현된 결과이며 형상인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은 다만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의미 영역, 역사의 경험과 세계와 자연에 대한 이해, 자신의 존재와 초월적이거나 성스러운 것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재현하는 존재이다.

인간을 미학적 존재라 정의하는 것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존재란 의미를 넘어서 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의미체험과 의미구현의 존재성을 재현하는 존재이다. 미학적 존재란 말은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의미성과 그 안에 담긴 진리성은 물론,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재현하는 존재란 의미이다.


4. 구원과 해방의 예술


1)

예술은 다만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을 통해 재현하는 인간의 의미 체험과 의미 구현, 존재성의 재현이란 층위를 넘어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예술은 스스로 자신을 이루어가는 포이에시스 poiesis적 행위에서 이해된다. 창작 행위를 뜻하는 테크네 techne는 포이에시스적 행위가 인간의 산출적 행위로 구체화된 한 가지 형태이다. 테크네는 자연을 변형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술적 행위이기도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진리는 근원적으로 감추어져 있다. 진리는 기꺼이 자신을 감춘다. 테크네로서 예술은 이러한 감추어진 진리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그러한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술은 무의미함과 허무함, 헷갈림과 혼돈을 넘어 의미의 세계를 재현하는 행위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은 그러한 죽음을 예술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죽음을 현재화하고 죽음을 내재화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행위가 예술로 드러난다. 예술은 인간의 실존성을 떠나 주어지지 않는다. 예술은 자신의 한계와 모순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예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이론이 될 때 미적 체험과 표현은 사라지게 되고, 인간의 실존성은 재현되지 않는다. 이때 예술은 종말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 되고,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으로 자리하게 될 때, 예술은 종말에 처해지게 된다.


2)

후기 산업사회를 사는 현대의 위기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예술이 종말에 처해졌다는 데 자리한다. 예술의 근원적 체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만 기술행위만이 흘러넘치게 된다. 예술이 다만 자본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에 충실할 때, 그러한 예술은 죽은 예술이 될 것이다. 인간의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고 진리 추구와 의미 세계, 초월성을 망각할 때, 그를 채현하는 예술은 위기로 함몰되는 것이다.

존재의 위기가 극대화된 근대의 시대정신은 예술을 다만 기술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서만 이해하려 한다. 그와 함께 예술은 순수 예술로,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로 규정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럴 때 예술의 철학은 미학으로 규정되거나, 예술 감상이나 비평으로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시대는 예술의 삶의 자리를 상실하고 순수예술, 전문가를 위한 예술로 자리한 시대와 일치한다.

미학은 인간의 예술행위를 단순히 미의식의 표현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현재의 위기는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진리 추구와 의미 세계, 초월적 지평을 망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존재의 위기는 예술과 철학의 위기를 의미한다. 단순히 테크네를 현대 기계문명의 테크닉으로 이해하며, 참된 가치를 상실하고 단지 물질과 기계 문명으로 이 모든 것을 대치시킬 때, 인간과 그의 세계는 본질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때 인간의 존재론적 지평은 위에 처해지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구원과 해방은 예술을 떠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이런 위기를 넘어서는 구원과 해방의 예술로 자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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