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르떼에서 문자가 들어왔다. 사회기관단체 연수 오라고.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제목이 “미학과 창의성”이다.
  창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중이어서 우선 관심이 동~했고,

  검색해보니 강사인 조윤경 교수의 책이 재밌다. 박사논문을 낸 것이라는데.
  이화인문과학원 이란 소속도 재미있고.

  충동 신청했다.


****이하 출처 : 문학과 지성사 홈페이지


초현실주의와 몸의 상상력

발행일: 2008년 04월 28일
사양: 신국판, 472쪽
ISBN: 978-89-320-1859-1
정가: 20,000원


프랑스 시사(詩史)에 의미 있는 획을 그은 두 시인 로트레아몽과 아폴리네르 이래로 초현실주의자들의 ‘몸’에 관한 맹렬한 탐색은 시작되었다. 이렇듯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우리 몸은 끊임없이 절단되고, 왜곡되고, 다른 이질적인 요소와 융합되는가 하면, 과장되게 표현되기 일쑤다.
그렇다면 ‘몸’은 왜 초현실주의 미학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초현실주의자들은 몸에 어떤 예술적 의도를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몸의 담론 속에서 이 책이 밝히고자 하는 바는 “초현실주의자들이 포착할 수 없는 무의식, 초현실, 꿈의 세계라는 추상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몸’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이 책은 ‘몸’을 중심 테마로 하여 초현실주의의 대표 시인인 엘뤼아르, 데스노스, 페레의 시적 모험을,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폴 델보 등을 비롯한 동료 화가들과의 연관 속에서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몸은 욕망과 불안, 무의식을 반영하는 ‘스크린’

초현실주의 시는 “표면적으로는 무의식의 무질서한 질주인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어떤 유파의 시보다 다층적이고 다형태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특히 ‘몸’을 중심 테마로 하여 “어렵고도 매혹적인” 초현실주의 시를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그동안 몸 이미지가 초현실주의 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저자 조윤경의 면밀한 텍스트 분석력과 흥미로운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 이 책에서 중점적인 연구 대상은 바로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세 시인 엘뤼아르, 데스노스, 페레의 시 세계.

우선 저자는 이에 앞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몸의 회화적 이미지의 유형을 살핀다. 1)파편화된 몸, 2)혼종성의 몸, 3)왜곡된 몸, 4)먹을 수 있는 몸, 5)여성의 나체, 6)풍경으로서의 몸, 7)내면으로 향한 눈의 일곱 가지 문제의식이 바로 그것. 화가들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몸을 조각내기도 하고 터무니없이 부풀리거나 다른 것들과의 혼종을 통해, 몸과 영혼 사이의 전통적 이분법으로부터 몸을 해방시켜 몸에 새로운 위치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몸은 마치 스크린처럼 꿈의 세계, 무의식의 비밀스런 영역, 환상, 착란, 존재 내면의 불안함을 투영해 보여주며,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비전의 표현체로 기능하는 것.

열린 지평이자 최상의 정점 ‘초육체성’을 향하여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몸 이미지에 관한 심도 깊은 연구는 ‘엘뤼아르’ ‘데스노스’ ‘페레’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특히 책 중간에 몸과 관련한 초현실주의 화가와 시인들의 작품 73여 점을 화보로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한층 더 쉽도록 했다. 이 책은 이들 세 시인의 ‘몸’에 관한 탐색을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책에 실린 시 작품들, 혹은 시어 하나라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 저자의 세심한 눈길은 각각의 시들이 내포하는 다양한 몸 이미지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작품 속에서 시인들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몸의 특성을 밝혀낸다.

우선 ‘혼합하는 몸’으로 대변되는 엘뤼아르의 경우 다른 시인들보다 꾸준히 몸의 다양한 부분을 시화(詩化)하고 있으며, 특히 몸과 외부세계의 합일에 천착한다. 이 시인에게 몸은 부분과 전체, 구체와 추상, 관능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연결하면서 모든 이분법을 없애는 매개적 역할을 담당. 반면 ‘해부되는 몸’의 데스노스는 몸의 조각나고 상처 난 이미지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존재의 내부로 침투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몸 내부의 풍경이 감추고 있는 신비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의 시학적인 힘은 몸에 대한 거부에서 수용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글쓰기의 파괴에서 재구성으로 향하는 끝없는 변용에서 나온다. 또한 저항정신으로 가득 찬 페레는 ‘삼키는 몸’으로 말할 수 있다. 그는 몸의 그로테스크하면서 동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감각들 간의 조응을 특화시켜 특히 미각과, 보다 광범위하게 입으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책의 제2부에서 4부까지 독립된 장을 할애하여 다루어지는 이들 세 시인의 ‘몸’은, 각기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들 세 시인은 각자의 작품에서 자신의 텍스트를 다른 작가에게 헌사하기도 하고, 그들을 떠올리며 시를 쓰는가 하면,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던 것. 또한 엘뤼아르의 작품에서 자주 시도되었듯 화가들과의 공동 작업은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수많은 교류를 이루어냈다. 특히 마지막 5부에 이르면 저자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는 개념으로 ‘초육체성le surcorporel’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한다. 이는 육체성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 가장 최상의 정점에 다다른 육체성을 의미한다. 즉, 초현실주의적인 몸의 존재론적이고 예술적인 모험을 총괄하는 개념.

이렇듯 초현실주의자들의 몸에 관한 탐험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세심하고도 차분한 자세로 독자들을 다양한 형태의 초현실주의적 ‘몸’으로 안내한다. 그것은 조각나고 미완성적인 몸, 시작도 끝도 없는 몸, 하지만 항상 다른 몸, 다른 사물과 합쳐질 준비가 되어 있는 몸이다. 그들은 끝없이 재탄생을 준비하는 불완전한 몸으로부터 무한한 잠재성과 다의성을 발견한다. 이렇게 이들이 표상하는 몸은 우리 몸의 관습적 형태와 미학의 오래된 질서를 끊임없이 문제 삼음으로써 우리에게 일상적인 시각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으로 자아와 세계를 모색하게끔 한다. 특히 인간과 세계와 예술을 변혁시킬 수 있는 혁명의 원동력으로 ‘몸’을 바라본 그들의 상상력은 나와 타인의 단절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 「초현실주의 시에 나타난 몸의 글쓰기(엘뤼아르, 데스노스, 페레): ‘초육체성’을 향하여」를 한국어로 번역·정리하여 출판한 것으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비롯해 총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다.


■ 책 속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표상하는 몸은 우리 몸의 관습적 형태와 미학의 오래된 질서를 끊임없이 문제 삼는다. 몸은 절단되고, 왜곡되고, 다른 이질적인 요소와 융합되며, 과장되게 표현됨으로써 몸 주변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밖과 안,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꿈을 융합한다. 우리는 그들의 그림 앞에서 종종 질문하게 된다. 물체가 육체로 살아나게 되었는가, 아니면 육체가 물체로 굳어지게 된 것인가? 이것이 ‘내 몸’인가 아니면 ‘타인의 몸’인가? 몸과 세계의 경계는 어디인가? 초현실주의 세계 안에서 몸과 세계는 영속적인 변용의 욕망에 사로잡혀 지속적으로 상호침투하면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동한다. (프롤로그, 26쪽)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현실로서의 몸은 일종의 스크린처럼 심리적이고 몽환적인 내면의 풍경, 벵자벵 페레의 표현에 따르면 “최면의 풍경”을 반영한다. 이러한 풍경은 수동적으로 보이고, 탐험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감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몸의 감지할 수 없는 측면, 나아가 불가능한 측면을 드러내고자 애쓰는지를 보게 된다. 주관적인 이미지의 탐사를 통해 몸과 자연, 내부와 외부,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격과 경계들은 무너진다. 몸-풍경은 몸과 풍경, 몸과 거주지, 몸과 배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제1부 2장 몸의 풍경과 내면으로 향한 시선, 68~69쪽)

다다 시기 이후 엘뤼아르의 시적 여정은 부분과 전체를 공존시키면서 점점 여성 육체의 합일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엘뤼아르의 시에서 여성의 몸은 한스 벨머나 살바도르 달리의 경우처럼 예술가이자 관찰자의 욕망에 의해 절단된 것이 아니다. 시인이 신체 부위에 천착하는 이유는 롤랑 바르트가 “분할되고 찢겨진 여성은 대상들과 물신숭배자들이 훑는 일종의 사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한 병적인 페티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몸에 독립성과 발언권을 부여하며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여성의 각 신체 부위는 마치 처음부터 몸의 전체에서 독립되었던 것처럼 나타나며 몸 이외의 다른 요소들과 자유롭게 결합한다. 눈, 손, 가슴, 다리, 손가락 등 각 부위는 생물처럼 움직이고 이동하고 자라나면서 자연과 독립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에 따라 여성의 몸은 늘 새로운 풍경으로 재구성된다. 여성의 몸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나타나는” 풍경과 흡사하다. (제2부 1장 여성 몸의 풍경들, 85쪽)

콜라주는 서로에게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두 현실의 자의적 만남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이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찬양하는 로트레아몽의 문구,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이 상징하는 것이다. 해부대는 실험실이자 변용의 장소를 의미한다. 또한 해부대는 몸의 절단과 재구성에 관한 수술작업이 이루어지는 콜라주 자체이기도 하다. 몸의 이미지에서 이질적인 언어와 이미지가 몸을 이루기 위해 합쳐지듯이 콜라주에서도 이질적인 본질을 가진 요소들이 결합된다. 자의적인 만남들은 낯섦을 일으키고, 낯섦의 효과는 몸과 콜라주를 일상적인 맥락이나 환경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제2부 1장 여성 몸의 풍경들, 98쪽)

화가들과 시인은 서로 자유롭기 위해 결합한다. 글로 표현된 삽화라 할 수 있는 엘뤼아르 시의 단어와 구절은 그림이나 사진 속 이미지들에서 비롯되지만, 회화적 이미지들과는 별개로 특유의 상상력을 펼친다. 마찬가지로 그려진 시라고 할 수 있는 화가들의 삽화는 엘뤼아르의 시 텍스트에서 영감을 받지만, 고유의 독자성을 발휘한다. 엘뤼아르의 시집 속에서 화가들과 시인은 서로 자유롭게 꿈꾸기 위한 공동의 창작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제2부 3장 시와 회화의 상호교류와 ‘탈경계’의 몸, 182쪽)

데스노스가 즐겨 해부하는 또 다른 대상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다. 그의 시집들은 심지어 고유명사에 대한 해부실험 연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러한 연구의 의미는 그자비에 뒤랑의 지적처럼 “언어를 해부하면서, 우리는 그 비밀스런 하부조직들에 관한 것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어떤 것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
데스노스는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의 이름을 가지고 유희하기를 좋아한다. 이 이름들은 시인이 보기에 결코 자의적이지 않으며 그 이름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운명과 강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는 “작가의 이름인 서명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의 삶의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며, 열쇠다”라고까지 말한다. 또한 그는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의 운명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도록 영원히 운명지워진 이름들이 있다”고 말한다. (제3부 3장 일상언어를 넘어서, 289~90쪽)

데스노스의 시적 공간 안에서 몸은 정신의 언어로 변모한다. 관습적인 몸이 파괴되고 재구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에 관한 유희들은 글쓰기의 해체를 동반한 다음 새로운 글쓰기로 변모한다. 그리하여 부정되고 재발견되는 글은 사회적 관습에 따르는 명확한 언어의 일상적 사용에 익숙해진 의식과 정신을 전복한다.
데스노스의 시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냄에 따라, 미리 규정되지 않은 무한함에 열려 있게 된다.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시인의 죽음을 천명하는 이유는 무화작용을 거친 글쓰기의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데스노스의 시학의 힘은 몸의 거부에서 수용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글쓰기의 파괴에서 재구축으로 향하는 끊임없는 변용 속에 깃들어 있다. (제3부 3장 일상언어를 넘어서, 298~99쪽)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페레 작품의 중요 테마로 ‘음식’의 테마에 주목한다. (……) 우리가 보기에 음식과 관련된 주제와 감각의 착란은 시인의 작품에서 높은 빈도수를 차지하는 삼키기와 토하기, 마시기와 오줌 누기, 들어가기와 나가기라는 몸의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들이 지칭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특별히 섭취, 소화, 배설이라는 몸의 세 기능에 집착하고 있다. 또한 그는 몸뿐 아니라 “땅, 요리, 위장에서 벌어지는 세 층위의 소화작용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다.” 소화작용으로 표상되는 몸의 왕복운동은 페레의 시학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몸과 세계, 내부와 외부 간 소통의 방식이 될 뿐 아니라, 모든 세계의 경계, 모든 이분법적 한계를 무너뜨리는 시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음식을 부수는 행위와 그것을 소화시키는 행위는 해체작용을 거친 변신을 지향한다. 그것은 새로운 발견과 창작을 위해 부순 다음에 재구성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페레가 중시하는 몸의 내적 작용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나 시인들의 내적 작업을 환기시키는 효과 또한 가져온다. (제4부 벵자멩 페레와 폭식하는 몸, 305~306쪽)

페레는 자신의 작품 속에 동화적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현실과 상상세계 사이에 단절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인이 드러내고 보여주고자 할 임무로 생각하는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동화의 고유한 자질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페레의 몸 이미지는 표면적으로 이분법적인 두 질서 사이의 경계를 없앤다. (……) 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코, 작은 손가락, 반지 등이 갖고 있는 모든 성적인 암시를 고려해본다면, 동화는 어린아이의 세계와 에로틱한 세계를 동시에 연결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관습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 꿈과 현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함께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화의 양가적인 자질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꾸는 이분법적인 것들의 무화가 지니는 욕망에 부합된다. 페레의 동화와 시는 모두 일반 동화에 고유한 “진정으로 낯선 결합을 창출해내고자 하는 욕망”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제4부 1장 동화적인 몸과 감각의 재구성, 309, 311쪽)

세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몸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을 막론하여 모두가 갖고 있는 필수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은 유기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엘뤼아르에 의해서는 자연의 요소, 정신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내포하며, 데스노스에게서는 비물질적인 것과 광물질 또는 신화적인 요소를, 그리고 페레에게서는 음식이나 사물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이를 통해 몸은 공간과 시간의 보편적인 조건 밖에 위치하면서 모든 경계나 장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
필자는 복수성(複數性)을 가진 초현실주의적 몸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초육체성le surcorporel’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려 한다. 이 용어는 아폴리네르가 ‘초-사실주의sur-réalisme’라는 신조어를 발명한 후 일반화된 초현실성이라는 개념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브루닉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아폴리네르는 리얼리즘 저 너머에 있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리얼리즘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접두사 ‘초sur’를 붙이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초현실성이 “다양한 현실의 상위 조합”인 것처럼 초육체성도 다양한 육체성과 그 복수성을 아우르는 상위 조합이다. (제5부 1장 낯선 몸, 친숙한 몸, 421쪽)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수많은 교류 속에서 시인들과 화가들은 서로에게 연결되면서도 자유롭게 활동했다. 그리하여 때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근접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격하게 분리되기도 했다. 화가들과 시인들은 각자 고유한 방식대로 몸을 일상의 규약에서 해방시키며 모든 표면적인 이분법적 구분들이 무너지는 지고의 지점의 역할을 수행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새로운 몸을 창조해냈다. 몸, 언어, 세계는 분절되고 재구성되어 궁극적으로 세 시인과 화가들의 욕망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엘뤼아르는 융합하는 몸을 통해, 데스노스는 분열하는 몸을 통해, 페레는 삼키는 몸을 통해 자유롭게 초육체성을 탐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에서 부과된 금기와 한계들은 없어진다. (제5부 2장 읽을 수 있는 몸, 볼 수 있는 몸, 443쪽)


■ 차례

프롤로그

제1부_ 초현실주의 회화와 몸의 유형
1장 몸의 변주와 외적 형상
1. 분할되고 파편화된 몸/ 2. ‘혼종성의 몸corps hybrid’/ 3. 몸의 확대와 끝없는 왜곡/ 4. 탐욕스러운 몸과 먹을 수 있는 몸

2장 몸의 풍경과 내면으로 향한 시선
1. 여성의 나체/ 2. 풍경으로서의 몸/ 3. 눈과 내면으로 향한 시선

제2부_폴 엘뤼아르와 혼합하는 몸
1장 여성 몸의 풍경들
1. 몸의 조각 맞추기/ 2. 몸과 풍경의 동일화/ 3. 여성 몸의 ‘블라종blason’ 기법과 세밀함의 글쓰기

2장 몸과 세계와 공간의 변증법
1. 몸과 세계의 ‘옴팔로스omphalos’/ 2. 피와 도로의 ‘끊임없는 시poésie ininterrompue’/ 3. (탈)중심공간과 망상공간의 변증법

3장 시와 회화의 상호교류와 ‘탈경계’의 몸
1. 동·식·광물계의 경계 넘나들기와 여성의 ‘벗은 풍경’/ 2. 언어, 이미지, 오브제로서의 몸

제3부_로베르 데스노스와 해부되는 몸
1장 위험에 빠진 육체
1. 해부하기, 몸 내부로의 침투/ 2. 익사자의 몸과 희화화된 죽음/ 3. ‘꿈의 산문les récits de rêve’ 속의 의인화된 육체

2장 비생명체들의 몸
1. 하늘과 바다와 대지의 혼종체 ‘불가사리’/ 2. “관능적인 그림자”와 애매성의 미(美)/ 3. 검은 육체의 부활과 이미지의 변용

3장 일상언어를 넘어서
1. 반복의 기법과 육성(肉聲)의 글쓰기/ 2. 해부되는 글자들과 반(反)블라종/ 3. 내면의 ‘몸-언어’와 무덤의 시학

제4부_벵자멩 페레와 폭식하는 몸
1장 동화적인 몸과 감각의 재구성
1. ‘이야기 시’ 속에서의 몸/ 2. 음식들의 질서/ 3. 몸의 순환적인 리듬

2장 그로테스크한 몸과 전복(顚覆)의 유희
1. 몸의 다양한 전이와 공격의지/ 2. 몸과 언어/ 3. 우주적인 몸과 새로운 신화창조

3장 몸의 변신과 유동적인 글쓰기
1. 초현실주의 이미지와 몸의 말/ 2. 유희로서의 글쓰기

제5부_초현실주의와 ‘초육체성les surcorporel’을 향하여
1장 낯선 몸, 친숙한 몸
1. ‘초육체성’의 시학/ 2. 소통의 몸짓과 무한한 육체

2장 읽을 수 있는 몸, 볼 수 있는 몸
1. 몸과 언어/ 2. 몸, 시, 회화의 문화적 교차로

에필로그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