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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10.10.2.

문화예술교육 콜로퀴엄 : 미래사회와 문화예술교육

예술교육에서의 인간 이해 - '인간'과 문화예술교육


!느낌과 ?물음의 과정
- 예술교육에서의 인간 이해

김성희 (서울대 교수)


1. 들어가며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삶을 표현하고 삶을 넘어서기도 하는 예술은 그 예술이 형성된 각각의 문화를 대변한다. 문화는 지속성과 상황성을 포함하며, 지역성과 시대성을 반영한다. 결국 문화는 포괄적인 인간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를 식물로 본다면, 예술은 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꽃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에 이 지상의 생명체들이 모두 감응한다. 꽃의 아름다움은 결국 모든 생명체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내포한다. 그것이 없이도 생명체는 생존할 수 있지만 단지 ‘생존’의 수준이고 더 ‘상향上向’된 개체를 생성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는 도태된 상태로 소멸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꽃에서 ‘아름다움’은 생존을 위한, 그것도 상향된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것이다.
인간의 오감을 감응시키며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은 문화의 총체적인 DNA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이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다. 단지 인간 삶의 상향된 생존이 불가능할 뿐이며, 거시적으로 보면 소멸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의 각박한 삶에서 예술은 항상 경제논리에 밀려나며 여유가 있으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식물들을 보라. 그들이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는 것을 보았는가? 기름진 땅이라면 보다 크고 화사한 꽃을 피우겠지만, 척박하다고 하여 아름다운 꽃을 생략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오늘날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린 때는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요만큼 생존의 위협도 커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경제성만을 적용시켜 나간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경제성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화학적 변화가 필요하고, 이러한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분야가 언뜻 가장 비경제적이라고 인식되는 예술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추구되고 있는 ‘창의성’으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에 내포된 ‘근본적 변화’는 오감과 연결되는 ‘아름다움’의 겉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겉옷인 동시에 인류가 추구하는 방향을 지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육에서도 예술은 여타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오늘날은 더욱 비중 있게 추구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 예술과 예술교육의 특성을 느낌과 물음의 과정으로 집약하였다.


2. !느낌의 과정


느낌은 생명체의 살아있는 감각이자 모든 창의적 가능성들과 예술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느낌의 과정은 생명체로서의 인간 삶의 과정이자 예술 실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 느낌을 갖는 인간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느낌을 가지며 살아간다. 느낌의 상태에서는 몸 감각들이 하나하나 열려 활성화되고, 통합적으로 작용하며 직관적 성향을 드러낸다. 느낌은 일차적으로 감각기관과 관련되므로 나의 외부적 환경에서 촉발되는 경우와 내적인 작용으로 스스로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양자는 모두 ‘관념성’에 매이지 않아야 만날 수 있는 세계임에는 분명하다. 즉, 느낌의 세계는 ‘지금’, ‘여기’에서의 나의 실존적 체험이 중요하다.

예술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이 ‘느낌’에서 시작된다. 동아시아의 걸출한 화가 스타오(석도石濤, 17세기)는 감수성(感受性:받아들여 느낌)이 분별의식(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의식적 작용) 보다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창의적 사고에 대한 연구자 팀 허슨Tim Hurson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성적 성향의 창의적 사고는 비판적 사고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존의 분별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틀’ 즉, 관념성으로 느낌에 접근한다면 창의성과 결부된 진정한 느낌을 가질 수 없다. 물리학자인 파인만 Richard Phillips Feynman은 문제를 풀지 않고 ‘느꼈으며’,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
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진정한 느낌의 시작은 나의 관념성을 거부한다. 바로 이는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무아無我’, ‘허심虛心’, ‘좌망坐忘’, ‘물아일체(物我一體:대상과 내가 하나가 됨)’의 상태와 같은 맥락이다. 나를 형성해 온 기존의 틀을 벗어나 세상 속에 나를 투
여한다. 이러한 투여는 관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관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체험’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라고 인식되어온 모든 사고의 틀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상태에서 비로소 한 생명체의 특성이 온전히 발현되기 시작한다. 느낌에 진입하는 순간,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창작도 시작된다.
창의성은 과거의 기억과 함께 상상과 미래로 향한 추론을 한순간에 강력하게 통합하여 방대한 정보량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창의성 연구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는 “일반인의 상태와 달리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우 예민한 감정을 느낀다”라고 언급한다. 이 예민한 감정이 느낌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느낌은 생명체가 살아있는 생생한 실존의 감각이며, 창의력을 포함한 인간 삶의 모든 면들이 전개되기 시작하는 지점이자 예술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우뇌로 느끼는 인간


일반적으로 좌뇌는 몸의 오른쪽을 통제하고 분석적 ․ 순차적 기능과 함께 논리 ․ 연산․ 시간감각 ․ 언어능력에 관련된다. 반면, 우뇌는 몸의 왼쪽을 통제하고 종합적․ 동시적 기능과 함께 감정표현 ․ 문맥 ․ 공간감각 ․ 예술적 감각 ․ 큰그림 ․ 창의성에 관련된다. 이처럼 좌뇌와 우뇌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므로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양 쪽 뇌의 균형 있는 활용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뇌는 좌뇌라고 생각해 왔다. 즉, 우뇌는 메이저 뇌인 좌뇌를 보조하는 마이너 뇌로서의 역할에 불과하다고 믿어온 것이다. 이러한 좌뇌 중심적인 사고는 서구에서는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 깊다.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사회적 지각변동에 힘입어, 수천년 지속되어 왔던 좌뇌 중심의 역사도 바뀌고 있다.
뇌의 역할과 중요성은 세상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우뇌가 가장 활성화되는 영역으로는 예술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우뇌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와 함께 예술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루트번스타인 Root-Bernstein 부부는 ‘느낌’과 좌․우뇌 통합적 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상력 넘치는 통찰을 낳을 수 있다.


3. ?물음의 과정


예술적 실행은 흔히 일순간에 번뜩이는 영감의 소산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느낌의 세계로만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느낌들은 그 이전의 축적된 느낌들과 함께 수많은 ?물음들의 소산이기도 하다. 느낌은 오랜 축적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상태이기도 하다.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서의 느낌은 오랜 축적의 상태를 0(無)로 돌리는 ?물음의 과정을 겪으며 만나게 된다.


1) 성찰하는 인간


관찰은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파악이기도 하다. 덴마크의 현대화가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은 “내 작업은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행위는 ‘성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해, 그 관계와 자신의 형성에 대한 ?물음과 성찰이 없다면, 우리는 일상의 당연함 속에 매몰될 것이다.
무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우연히 마주친 사건일 수도 있고, 나의 의도가 작용하는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적 사건에서 ‘내가 주목한다’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속에 나의 오랜 ‘추구함’이 숨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관심을 끈다는 것은 이미 내 속에 그와 연관된 씨앗이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음을 던지며, 바로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이 없다면, 그 문맥을 연결하여 행위의 필연성을 찾을 수 없다면 진정한 창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창출이기도 하다. 지식은 무언가를 깨닫는 행위에서 창출된다. 무언가를 깨닫고 이해하는 행위와 예술행위에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에릭 부스는 “나는 예술행위가 무언가를 깨닫고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예술행위는 학습자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성찰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학습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지름길의 하나일 수 있다.

2009년 이후 새로운 체제의 교양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하버드대학교의 교양교육 General education 목표는 다음과 같다. “하버드 교육은 자유교육 Liberal Education 이다....... 자유교육의 목적은 추정을 뒤흔들어 놓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의 저변과 이면에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는지를 규명하고, 젊은이의 감각을 혼란시키며 그들이 스스로 방향감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유교육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설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자기 성찰을 유발하며,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가르치고, 학생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역사적 계기와 문화적
구성물들과의 만남에서 낯선 경이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미 설정한 정의들을 뒤흔들고, 낯설게 보며, 원점에서 시작하는 예민한 감각의 상태에서 ?물음을 던지며, 성찰하고, 비판적․분석적 시각을 가지며, 모든 상황성에 대해 낯선 경이감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예술행위와 예술교육이 추구해 온 인성의 방향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나이젤 비거 교수는 물질적 유용성과 결부된 실용주의와 공리주의를 중심에 둔 오늘날의 교육방향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예술과 인문학의 존재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예술과 인문학이 가져다주는 비할 바 없이 귀한 선물은 그것이 낯선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 이러한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세계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얻는 이익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낯선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보고, 사랑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에 대해 성찰하면서 우리는 때때로 그들이 ‘좀 더’ 잘 보고, 사랑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갱신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의 개혁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음의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알 수 없는 낯설고 모호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술은 이러한 용기를 기꺼이 가질 수 있도록 실제적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2) 정체성을 가진 인간


예술을 실행하는 사람은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해, 그 관계와 자신의 형성에 대한 ?물음과 성찰의 과정에서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물음은 존재론적인 측면을 내포하며, 현전 presence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인지하게 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가장 첨예하게 표현되는 예술의 세계에서 자화상들이 수없이 제작된 것도 이를 반영하는 점이다.

자신을 ‘바로 바라보기’는 솔직한 자세와 물음, 성찰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 자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표현은 스스로 개성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바로 바라보기’에 따른 표현에서는 그 결과물에 대한 ?물음 - 자신의 형성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된다. 그 형성에는 무수한 상황들이 있어왔으며, 그 상황들의 만남이 ‘지금’, ‘여기’로 집약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뜻하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형성한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찾는 관점이 열리는 것이다.


3) 더불어 사는 인간


우리의 근대 이후는 자신을 솔직하게 ‘바로 바라보기’보다는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타자 바라보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솔직히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타자 바라보기’에서는 자신도, 타자도 진정한 이해와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유일무이함을 느끼고, 자신이 속한 문화의 유일무이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타자와 타자가 속한 문화의 유일무이함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예술은 이러한 조화로운 화합을 위한 삶의 유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근대기 냉혹한 무력의 세계를 몸소 체험한 가운데 김구 선생이 마침내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이었고, 우리 민족이 이러한 문화의 힘을 스스로 창출하는 민족이 되어 세계의 진정한 화합에 기여하기를 추구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예술과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 나이젤 비거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예술과 인문학은 우리를 낯선 세계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 낯선 세계를 잘 다룰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 겸손함과 부드러움, 관용을
가지고 낯선 개념들과 관행들을 만날 수 있게 하고, 낯선 세계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그쪽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
것들은 ‘타자’를 잠재적인 예언자로, 즉 무엇이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지에 관해 새로운 언어로 말하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정직 한 대화를 실천하게 된다.”
예술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과정은 타자를 만나는 과정으로 연계되며,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그 범위가 확대되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 이는 결국 나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생태적 삶의 공간을 돌아보게 하므로, 근본적으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갖게 한다. 예술의 통로를 통해 우리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나와 전혀 다른 별개의 개체들이 아니라 나와 끊임 없이 교류하고 있고, 나를 형성하는 세계이며, 근원적으로 인간이 돌아가야 할 세계임을 체험하며 !느끼는 과정에 들 수 있다.

4. 열린 마음과 창의적 표현의 인간


!느낌을 갖는 단계에서 이미 자신은 열려있게 된다.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긴밀한 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물음을 갖는 단계에서는 설정된 규정들이 혼란스럽게 흐트러지며 무화 無化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비판적 성향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정과 긍정이 함께 작용하며 이마저도 ?표 속에 넣어둔다. 예술은 느낌을 열어주고, 모호함의 세계 속에서 그 느낌을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실행해 보게 한다.
이러한 실행의 과정들 속에서 하나의 개체와 그 개체의 관계망을 인지하게 되고,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력이 형성된다. 즉, !느낌에서 ?물음의 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은 하나의 개체가 전체를 향해 원심력과 같이 열려나가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감각이 열릴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열린 마음의 세계에서는 정체되거나 축소된 상태와 달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물론, 예술을 체험하면 당연히 지고의 상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을 표현하는 가운데 보다 자
유롭고 자연스러우며, 충만한 상태로 조금씩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술은 이러한 표현들을 자유롭고 즐겁게 시도해 보게 한다. 학습해야 할 ‘숙제’나 정답을 맞추어야 할 ‘문제’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내밀한 ‘일기’에 가깝다. 거기에는 규정된 답이 없다. 모든 답은 자신에게 있음을 느낀다. 진솔하게 다가갈수록 모호함의 세계에서 언뜻 드러나는 한줄기 길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개성과 창의성, 조화와 소통능력 등은 바로 이러한 열린 마음과 표현의 상태에서 발현되는 하나의 측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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