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2019. 8. 16. 16:45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욕망의 생활문화정책, 누구를 위한 누구의 욕망인가

/2018.09.03.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포럼 발제 자료

 

 

. 객석에서 무대로,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 문화민주주의로...

 

(1) 왜 문화민주주의인가?

 

1.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라는 사회에 직면해 있다. ... 과연 누가 집에 남겨진 노인과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는가?

 

2.

모두가 늙어가고, 활동반경이 현격히 줄어든 사회에서는 '지역' 속에서 서로 기대고 살아야 한다. ... 도시를 가로지느며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직은 ... 지역의 연결고리가 없고, 직장의 직위라는 여건 속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생활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권력이 끊어지는 순간 '나홀로'가 된다. ... 이들이 서로 관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내자는 것, 그것이 문화의 민주화에서 문화민주주의를 외쳤던 배경이었다.

 

3.

나를 표출하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통매체를 가짐으로서 나는 타인과 더 쉽게 관계하며 나를 표출할 수 있다. ... 내가 곧 문화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으로, 필자인 나는 각 개인이 '지역'이라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략으로서 문화민주주의를 말했던 것이다.

 

4.

문화민주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 한 개인이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문화체계) 속에 수동적으로 '편입'되거나 소비되지 않고, 그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활동하고 관계함을 말한다. ... 모든 문화는 갈등과 대립 속에 '전쟁'하며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한다. 그 생산 속에 내가 개입하며, 주체로 등장한다. ... 그것은 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함에 있어 개인의 문화가 존중되어야 함을 말하는, 개인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것이자 각 집단과 계층, 지역의 문화가 중시되어야 함을 말하는, 문화의 기본원리로서 '다양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5.

문화민주주의는 단편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화를 구성하는 기본원리로서 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정치를 만나면서 ... 늘 하던 대로 문화는 예술로 해석되고, 문화민주주의는 단지 누가 하느냐는 '주체'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6.

그 대표적인 방식이,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예술을 강요하는 것이다. 예술을 행복의 원천이라 말하며, 아마추어 활동을 강요하고, 1인 1기를 주창하는 그런 주장이다. ... 예술을 강요하는 것은 똑같다. ... 문화는 예술이 아니다. 문화는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고, 문화민주주의란 그 여러 층위 속에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고, 모두가 골고루 자기를 표출하며 하나의 문화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그것은 예술지상주의를 외치는 그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짓고, 경계를 형성한다. 

 

7.

'문화민주주의'는 예술을 강압하는 방식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사실 예술은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결과물이거나 그 생산물이다. 그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관람자인 수용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예술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작품들은 자신이 해석한 세계의 표출을 통해 누군가가 감동받고 변하길 원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가치를 설득하는데서 출발한다. 때문에 그 예술이 특정인이 아닌 '모두가 하는 방식'으로 바꿜다고 해서 문화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와 같은 소비적 방식이 아니라, 이 예술을 통해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내 문화체계와 그것에 기초한 욕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화민주주의다. ... 예술은 그 자체로 혀성되거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소비되는 맥락에서 의미를 갖고, 소비된다. 때문에 특정인이 아니라 '모두가 한다'고 해서 문화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8.

'생활문화/생활예술'정책 ... 이것이 과연 문화민주주의인가? '문화의 민주화'를 좀 더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전략 아닌가? 과연 그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말하는 문화민주주의와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2) 문화민주주의에서 아마추어 활동, 동아리로...

 

9.
문화민주주의를 호명하며 새로운 문화정책의 전략으로 생활문화/생활예술이, 본래 문화가 갖는 ‘다양성’을 실천전략에서 ‘예술 동아리’ 전략으로 전락(!)한 것은 하루아침인 것 같다. 2014년 탄생한 <지역문화진흥법>은 그 우울한 전경을 현실로 드러낸다.

10.

<지역문화진흥법> 제2조 정의는 생활문화를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라 규정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문화적 욕구 충족’이 무엇을 말하는 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문화에 대한 규정에 기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 문화와 예술을 구분하지 않고, 문화예술로 연이어 예술을 수식하는 단어로 문화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문화는 차라리 액세서리에 가깝다. 

 

11.

제7조는 생활문화지원을 규정하고 있는데, 조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활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주민 문화예술단체 또는 동호회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 전문(업)예술에 의해 가려졌던 주민들의 일상적 문화가 제자리를 잡는 전략, 또는 각 지역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가 당당하게 사회에서 호명받는 전략으로서 문화민주주의가 아니라 '생활예술단체나 동아리를 지원하는 전략'으로서 사용되어 버린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 예술을 실천하는 전략으로서 생활문화가 도입된 것이다.

 

(3) 시민문화권과 '객석에서 무대로'

 

12.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은 ... 문화도시가 문화시민도시, 즉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도시' 계획으로 전환되었음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주요한 전략은 시민의 문화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 각 정책이나 사업이 시민, 혹은 집단과 지역사회, 계층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도록 문화영향평가를 두고 있고, 문화주체로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평생학습체계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이 관람객이 아닌 무대의 주체가 되도록 다양한 생활형 공간, 시민눈높이에 맞춘 문화 공간 조성, 누구나 필요하면 장비와 공간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화공간・공유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시민이 주도가 되어 그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13.

계획에는 물론, 여러 욕망이 섞여 있다. ... 실행하는 현장에서 그 욕망은 더 커진다. 그렇기에 계획주체는 실행되는 현장에서 '이게 원래 계획이었나'를 체감하게 되고, 실행주체는 '실현되지 못할 것을 계획해 놨네'라고 말하게 된다.

 

(4) 그리고, 생활문화의 탄생

 

14. 

2017년 생활문화가 탄생했다. ... 그것도 완벽하게 '폭발적'이고 '전폭적'으로...

생활문화사업은 '폭발적' 추진력과 '전폭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15.

우선, 공간지원사업이 있다. <생활문화지원센터> 조성・운영으로 대표되는 이 사업은 <생활문화지원센터>를 생활권형과 디딤형, 거점형으로 나누어 각 지역별로 생활문화 거점을 만드는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2017년 추진결과 총 50개의 센터가 조성되었다. 조성된 것은 생활권형 7개소, 디딤형 43개소다. 거점형은 조성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센터는 민간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생활권형 3개소가 공공이고, 나머지 4개소는 민간이다. 디딤형에서는 2개소를 제외한 41개소가 민간이다.
둘째, 생활예술활동의 결과로서 오케스트라 축제와 댄스축제다. 

셋째, 다른 한편 주력하는 것은 생활문화동아리 발굴·육성이다. 이는 생활문화진흥 사업의 핵심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캠페인 사업이다.

 

16.

사업 구조로 보면 자치구와 협력을 통해 FA를 동원하여 동아리를 발굴육성하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거점을 제공하며, 그 결과를 축제로 발표하고, 이를 통해 여러 시민의 참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17. 

나는 우선 생활문화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도대체 생활문화는 무엇일까? 그리고 또 생활예술이란 무엇일까?

 

(1) 다시 생활문화에 대하여

 

18.

우리는 우리의 의도대로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본래의 개념성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사용할 뿐이다. 그렇기에 생활문화는 더 이상 생활문화를 지시하지 않는다.

 

19.

<지역문화진흥원> 웹사이트에는 ... 생활문화공동체는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를 매개로 한 자발적인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고, 이러한 활동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의 품격과 행복온도를 높여나가는 공동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 좀 더 나아가면 그들이 만든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자료에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의 목적이 소개되어 있다. ... 간단히 말해 생활문화란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문화 활동, 아니 정확히는 문화를 매개로 하는 활동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 것이고, 그것으로 문화소외 지역의 격차해소와 (주민의) 주체적인 문화활동, 마을을 넘어선 지역의 문화형성과 지역 간 소통기회마련을 목적으로 한 사업으로 설명된다.

 

20.

아주 간단하게 생활에 내재된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고, 수사(修辭)에 수사(修辭)를 달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일까?

 

21.

사실 이런 방식의 해석은 문화가 어떤 정체화 된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어떤 것을 특정한 상태로 만드는 행위자적 개념으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22.

정책사용자에 의해 이 문화(생활문화)는 주관자로서 행위를 획득한다. 그래서 '문화를 매개로 한 자발적인 생활문화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문화적 삶을 향유하고',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 주체로서 활동한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과연 이게 문화민주주의로 호명된 생활문화 정책이 해야 할 일일까?

 

23.

문화소외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문화향유를 일상화하며, 마을을 넘어선 지역단위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난 이 말을 도대체 이해 못하겠다.

 

24.

모두가 알 듯, 문화란 모든 곳에 잠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어떤 집단이나 계층, 지역, 공간 등에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문화는 어떤 우수성과 우선성을 말하지 않은 채 단지 그 집단과 계층, 지역, 공간의 정체적 상태를 얘기할 뿐이다. 그럼에도 문화소외지역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문화가 갖는 불편부당성과 편재성, 그로부터 오는 다양성의 본질을 무시하는 태도다. 문화다양성과 그것으로부터 구성되는 문화민주주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얘기라는 것이다.

 

25.

이것을 예술로 바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이해는 편해진다. “‘예술을 매개로 한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 주민 스스로 예술적 삶을 향유하고’, ‘삶의 품격과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것이 생활예술공동체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의 목적은 예술소외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고, 주체적 예술향유의 일상화 및 지속기반 마련, 지역단위 공동체 형성을 통한 지역문화 형성 및 지역 간 소통기회 마련 등을 목적으로 한다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라 하더라도 문화민주주의를 호명할 자격은 없다.

 

26.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술은 전쟁터 중 하나다.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행동하는 순간 특정한 가치체계를 강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각 개인이 자신을 미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전자일 경우는 문화의 민주화전략이며, 후자는 문화민주주의전략이다. ...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의 기술로서 예술이 소외된 지역이 있을까? 곧 생활예술의 개념을 설명하겠지만, 예술은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며, 찰라적인 가치의 산물일 뿐이다.

 

27.

정확히 말해 생활문화는 육성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생활 속에 정체되어 나타나는 산물을 말할 뿐이다.

 

28.

아름다운 생활문화, 품격있는 생활문화, 예술적인 생활문화를 만들자 할 때, 예술은 그 생활문화는 만드는 매개물로서 자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의 우선성, 특정한 가치체계, 이성의 산물로서 예술 등을 상상하는 것이다. 각자의 삶에 내재된 것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예술이 아니라, 특정 가치체계를 개입시켜, ‘삶의 품격을 놓이고 행복의 온도를 높이고자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문화란, 또 예술이란 삶으로부터 나온 그 어떤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민주주의가 아닌 문화의 민주화를 실천하는 고도의 전략으로서 예술을 생활 속에 개입시키고자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건 그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2) 이제 생활예술에 대하여

 

29.

생활예술에 대해 말할 때 ... 분명히 위계가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활문화와 같은 위계에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30.

다른 한편, 생활예술을 말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자율적인 시민의 문화-예술이겠죠-활동'이라 말하며, '전업 작가의 예술'과 구분하는 것이다.

 

31.

이런 종류의 분류법은 예술이 갖는 내재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겠지만, 예술은 근본적으로 감동을 매개로 한 결정체이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조건으로 감동을 말했고, 감동을 주어야만 예술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감동은 주관적이고 찰라적이다.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없다. 특정한 맥락과 매개 속에 감동을 주며, 사람을 움직인다. 때문에 예술은 그 자체로서가 특정한 맥락에서 가치를 획득하며, 의미를 부여받는다.

 

32.

이 예술이 고정화 된 것은 산업주의의 산물이다. 익히 알 듯, 아트(fine art)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그 자체로 실재를 추구하고 목적하는 행위로서 예술을 말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장르가 탄생한다. ... 우리나라 문화예술진흥법 상의 문화예술 개념 또한 이에 따른다.

 

33.

생활예술이 같은 영역으로서 전업예술가가 아닌-쉽게 말해 예술인복지법 대상이 아닌, 일반인(시민)들의 예술이라면, 그렇게 해석된다면, 생활예술은 장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이 경우 이 예술은 무엇을 말할까? 서양예술체계에 갇힌 예술을 일상 속에 집어 넣는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급화 된 문화의 민주화를 위한 수행전략이 된다.

 

34.

일상에서 예술은 그와 같은 파인아트와는 다르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순간적이고, 찰라적이며, 맥락적이다. 감동을 전제로 설명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며 오싹한 전율을 느낄 때 야 예술이다라고 말하면 그 때 얻어지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어떤 대상이나 행위에 내면의 공감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장르의 벽에 갇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생활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는 다양한 생활기술과 표출의 능력, 관계의 영역을 가리킨다. 우리가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을 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같이 공감하며 놀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일상의 감동이 단지 장르적 예술에서 제한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 속 예술, 생활예술은 주민이 스스로 그들을 표출하며 드러내는 양상이다. 그것은 전업예술가든 아마추어든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의도한 목적만 가릴 뿐이다.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표출하며, 타인과 관계하는 영역에서 작동할 때 그것은 생활예술이다. 그것을 떠나 상업적 혹은 대중적 소비를 목적으로 활동할 때 그것은 전업예술이다.

생활예술을 사람의 영역으로 구분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을 장르적으로 해석하지 마라. 그것을 생활 속에 넓게 펼쳐진 다양한 양상일 뿐이다. 누구든 무엇이든 자신을 표출하고,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며,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때 그것은 예술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 이제 다시 현실로

 

39.

나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예술을 강압하는 새로운 전략으로서 생활문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생활 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행위체계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생활문화 사업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르적 행위가 되어선 안 되며, 삶의 기술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양상을 만들어야 한다.

 

40.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사업을 함에 있어 정부의 최소한으로 개입을 요구한다. 개인이 자기 삶을 바꾸고 안 바꾸고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우리가 아무리 재미없는 삶, 의미없는 삶이라 보아도 그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 생활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41.

그렇기에 난 '최소개입주의'를 말한다. 그들이 원하고자 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악기를 배우고 싶은 데, 악기가 없을 때 악기를 빌려주고, 좋은 강사를 소개시켜 주며, 괜찮은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을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유일한 관점이 있다면, 그들이 '원할 때'이다.

 

42.

내가 주장한 뭐든지 지원센터는 동아리들의 거점 또는 활동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구해주고 공유해주는 거점시설, ‘플랫폼과 같은 것이다.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에서 제기했던 문화장비시설공유센터가 바로 이런 것이다

 

43.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최영주 사무처장은 행복이란 관념적 척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다양한 행복지수를 어떻게 수렴하고 만족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과연 지표개발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관심공동체에서 취향공동체, 문화자원봉사공동체, 문화축제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에 대해 이런 구조설정은 이른바 선수’(문화기획자들)이 추진하는 사업구조와 닮아 있다라 지적한다우리가 문화의 다양성, 가치의 다양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면, 문화정책에 있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개인의 주관성과 가치,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이한 문화체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다.

 

44. 

그것이 자신의 삶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완성하고 상업적 혹은 대중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지원은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란다고 본다. 그러나 생활예술,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예술은 자칫 커다란 상처와 낙담을 낳는다. 정치를 향한 분노는 명확한 선을 가르고 경계하도록 만들지만, 일상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변수와 관계 속에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정치지형과 관계도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서 단지 동아리라고 해서 묶어버리고 지원해버린다면 그것은 누굴 위한 지원일까?

 

45.

시민의 욕구는 순간순간 변화하고, 다양한 관계망과 얼개를 만들어 낸다. 그 욕망에 대응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면, 생활문화 정책은 정부의 욕망에 의해 한순간 불타오르는 사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보다 정확히 시민의 욕구를 살피고, 그에 대응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여러 기관과 네트워킹하며 그들이 다양한 기관과 시설을 활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FA라는 생활문화 전문가(?)들이 동아리 발굴을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욕망과 욕구를 발굴하고 이해하며 필요한 것들을 찾고,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이 그에 필요한 각 자원이 있는 기관과 협력하고 필요한 것을 연결시켜주며 활동의 공간을 찾는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 그래도 남는 문제

 

(1) 마술소와의 관계

 

46.

몇 가지 문제 ... 그 첫째는 선행이었던 <마을예술창작소>를 배제함으로 인해 발생한 행정적 혼선과 사업의 중복이다.

 

47.

정부가 <생활예술지원센터>를 설립구상을 할 때, 참고했던 모든 자료가 <마을예술창작소>. 그 모든 형태는 다 따갔으며, 핵심인 민간주도형만 버렸다. 그리고 관()주도로 관()의 시설에 실적 중심으로 시설을 설치했다. 그 설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48.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은 혁신적인 계획과 엄정한 관리, 그리고 운영주체 간 화합과 협업 속에 자체 중간지원조직이 형성된 정말 환상적인 사업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생활문화계획 속에 어디에도 상정되거나 고려되지 않았고, 마치 없는 듯한 취급을 받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49.

민간의 자율성에 호응은 못해줄망정, 자신의 사업체계 내로 민간을 편입시키는 이 방식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나는 이 부분에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모두 깊은 반성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2) 지역문화본부, 지역화로 방향을 잡은 문화예술교육’, 지역을 매개로 하는 생활문화지원단’, 그들의 협력은?

 

50.

지금 서울시의 모든 문화정책은 지역을 매개로 달려가고 있다. 아니 문화정책만이 아니다. 도시정책, 마을정책, 행정 모두 마을을 향해 달려간다. 그럼에도 이들 간에는 협력이 없다. 모두가 따로 노는, 각자의 관계와 협력망을 형성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51.

우리가 정부의 지역문화 정책을 말할 때, 핵심은 지자체가 꾸려놓은 '지역문화재단'을 마구잡이로 자신의 정책협력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산의 자율성이나 사업구성의 주도성, 예컨대 지역분권을 말할 때 기초적 원리인 보충성의 원칙따위는 없다.

 

52.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 계획에는 문화예술교육만 지역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생활문화 사업은 이런 형태로 추진될지 예상하지 못했으며, <지역문화본부>는 만들어 질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53.

우리가 어떻게 지역-자치구 등-과 협력해야 하는지, 지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우리-서울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하는 방식의 오류를 우리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3) 정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것들

 

54.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다만, 결론적 차원에서 다시 정리해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55.

우선, 최소한의 영역에서 개입하기 위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하고자 했을 때 없거나 부족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항목을 정해 리스트화 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56.

이 응답할 체계를 갖추는 데 새로운 시설과 장비, 공간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존 시설과 기관, 장비, 공간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일이다. ...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이 기관과 협력이다. 각 기관과 협력을 통해 주민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어느 한 기관에서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불편함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이다.

 

57.

그리고 더한 노력이 있다면, 민간을 중심으로 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다서울에 사는 뛰어난 예술가나 문화기획자, 사회혁신가를 네트워크로 묶어 필요한 곳에 연결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며, 그들이 생활문화 사업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해하며, 시민의 입장에서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가들의 주체적 참여를 유발하기 위한 많은 토론과 적절한 비용보상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58.

마지막으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자치구와 협력이다. 자치구는 행정의 하위단위가 아니다. 동등한 협력자이자 주체다.

 

59.

그런 만큼, 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도 거버넌스 25라는 명칭으로 자치구와 협력이 추진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치구의 자율성과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은 서울시 목표 중심의 협의구조다. 이것은 명확한 의미의 거버넌스는 아니다. 정책실현의 협조대상일 뿐이다.

명칭에 걸맞은 거버넌스를 하려면, 각 자치구에 우선권, 자기결정권을 줘야 한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그렇게 주어진 결정권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컨설팅하고 다음 년도 사업을 위해 모니터링해주는 역할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결정된 것들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 예컨대 재정이나 사람, 시설, 장비 등을 지원하는 게 서울시 일이다.

 

60.

보충성의 원리, 그것은 문화정책에 있어 지켜져야 할 첫 번째 원리 중 하나다. 문화는 가장 구체적인 장소와 지역, 집단에 정체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자치구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의 협력을 통한 진짜 생활중심의 생활문화가 펼쳐지길 바란다.

 

 

 

욕망의 생활문화정책, 누구를 위한 누구의 욕망인가 발제문(라도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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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문화예술교육2014. 8. 2. 15:43

이동연, 예술교육을 넘어서 : 열 개의 문화고원

한길아트, 2008



예술교육의 미래를 위해| 책을 펴내며

1 예술교육을 넘어서
2 예술교육은 창의적이다
3 문화연구는 예술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4 문화예술교육정책과 문화민주주의
5 새로운 예술교육을 위한 미학
6 소수자를 위한 예술교육
7 예술교육, 문화다양성, 문화적 권리
8 "입시학교"를 넘어서: 카니발 페다고지"로서 예술교육
9 고등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술과 생태의 융합
10 문화사회를 준비하는 예술교육의 미래



2000년 초 문화교육이 문화운동의 새로운 실천의제로 제기되고, 문화예술교육이 국가의 문화정책으로 수립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현장에서 많은 교육사례가 축적돼왔다.

예술교육은 기능교육이고 문화교육은 커뮤니케이션 교육이라는 것은 두 용어의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르 실기 교육에 기반을 둔 예술교육도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서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으며, 개개인의 상호이해와 문화적 소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교육 역시 예술적 감수성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용어도 문화교육과 예술교육의 병렬적인 조합이 아니라 서로가 융합하고 통섭하는 생산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예술교육을 넘어서


예술교육과 문화교육이 필요한 것은 문화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성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문화의 다양한 사례를 직접 체험하여 감성적 능력을 키우고 경제적 부담을 갖지 않고 일반인이 다양한 문화교육을 제공받으며, 사회적 소수자가 문화와 예술을 선택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지는 새로운 문화환경은 문화와 예술교육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진부한 여가시간보다는 창의적 능력을 키우는 감성의 시간, 일상의 삶 전체에서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문화적 자원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의 시간을 위해 문화와 예술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자발적인 교육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통상 예술교육은 소수 전문가를 위한 엘리트교육이고 전통적 예술 장르에 기반을 둔 기능교육을 중심으로 한다면, 문화교육은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고 전통적 예술 장르에서 소화할 수 없었던 문화자원 해독능력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전자가 창작의 과정, 창의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후자는 소통의 과정, 경험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러나 예술교육은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한다는 점에서 문화교육을 전제하고, 문화교육은 소통과 감성 능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교육을 전제한다.


예술교육을 넘어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 예술교육과 문화교육에 대한 내적 성찰이다. 나는 문화교육의 의미를 예술교육의 전화라는 토픽을 통해 찾고자 했다. 이는 예술교육의 현재 경계를 열 가지 문화적 토픽을 통해 넘어서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둘째, 예술교육의 고정관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예술교육 안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의 의미가 들어있는지를 말하고 싶다.

셋째, 예술교육을 넘어선다는 것은 현재 예술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미래 예술교육의 지평을 확장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유비쿼터스 디지털 시대에 예술의 생산과 그것의 수용과정은 아날로그가 지배하던 시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술과 예술의 융합,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통섭은 예술교육의 목적과 방법의 전화를 요구한다. 특히 디지털 마인드, 감성적 리터러시에 대한 예술교육의 대중적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를 확산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한 문화적 관점의 재인식은 주류 예술교육의 목적, 교육방법, 교육과정, 사회적 효과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교육은 사회의 문화적 자원을 풍부하게 하고, 많은 시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감성적 체험을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건이 바로 문화민주주의 원칙이고, 이러한 문화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예술교육 스스로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사회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하지 않을까?



2 예술교육은 창의적이다


예술교육의 힘


2006년 프랑스 정부는 국민총생산액(GNP)에 대한 의미있는 통계 결과를 제시했다. 지난 10여 년간 프랑스 국민총생산액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원천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꾸준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장인들의 계보에는 목공예, 유리공예, 디자인, 인테리어와 같은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부류가 두드러지게 포함되어 있다.


1980년대 초반 프랑스 정부는 큰 위기에 빠진 공교육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학교에 예술교육 시범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이 사업은 예술교육을 기초공교육의 핵심으로 설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참여정부 들어 문화예술교육정책이 국가의 중요한 문화정책으로 설정된 데에는 공교육 내에서 예술교육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학교문화예술교육은 현재 정규 교과목에 포함된 음악, 미술, 체육 이외의 장르 교육을 담당하면서 부족한 학교 예술교육을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예술교육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예술교육의 가치를 소수 예술가들만의 가치로 한정해서 보는 경향이다.

둘째,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만한 방법과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07년 1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예술과 문화교육의 효과를 평가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가자 대부분은 예술과 문화교육이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교육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특히 학생들의 인지능력과 사고방식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강조했다. 예술교육의 효과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인지능력 향상을 통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만드는 데 있다. 예술교육의 창의성은 특정한 개인 능력 향상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감성적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교육의 미적, 사회적 효과라는 이중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창의성도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힘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예술교육은 사회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다원화하는 새로운 자원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예술교육은 두 가지 오래된 관행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첫째, 예술교육은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춘 학생들이 받는 특별한 교육이자 예술 관련 학과에 진학할 예비 학생들을 양성하는 입시교육의 일부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예술교육은 사회 경쟁력 강화와 국가 인적자원의 새로운 전략과 목표 설정에서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교육을 소수 예술가의 전유물로 생각하거나 경제적 효용가치 면에서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일부 능력 있는 개인의 퍼포먼스에서 발휘되기보다는 전체 조직 차원에서 창의성을 촉진시키는 체계적인 전략으로부터 나온다. 생각과 경험이 무시되지 않고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충동을 인정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갖춘 조직에서 창의성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인간의 지성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상상력과 상징적 사유의 힘인데, 창의력은 바로 새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의미한다. 켄 로빈슨은 창의성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창의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둘째, 독창성이다. 결과가 새롭지 않으면 상식에 불과한 것이고, 그래서 상식은 창의적일 수 없다.

셋째, 가치이다. 창의성은 미래를 위해 현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생각을 제안하고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교육에서 창의성 1 : 새로운 융합교육


무언가 새로운 감수성을 실험하고, 독창적 작품을 만들며,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삶의 가치를 도출해내는 일련의 과정은 예술교육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실천과제이다. 사실 예술은 창의성이 최고의 수준에서 구현되는 장소이다. 예술 창작은 그 자체로 창의적 상상력과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가장 탁월한 미적 행위이다.


예술교육에서 창의적인 융합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예술적 감수성과 인문학적 지식이 융합할 수 있는 차원으로서, 예술의 인문학적 가치와 교양의 의미를 강화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예술가를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 말하자면 '예술교육 프로그램'(liveral arts program)이 체계적으로 예술교육과정에 도입되어야 한다.

둘째, 예술교육의 창의적 융합은 이질적인 매체들이 서로 교차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시대 예술은 예술 장르의 융합, 예술적 행위와 가치에 대한 세속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하나의 상호작용적 매체로 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셋째,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융합되는 새로운 창의적 교육방식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술과 예술교육의 자명성의 신화에 도전하는 실천적 지점으로 예술과 과학기술의 진보적 조우는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예술교육에서 창의성 2 : 모든 이를 위한 예술교육


모든 사람에게 예술교육의 창의성은 예술적 활동을 통한 삶의 만족, 즉 삶의 감성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앤 뱀포드는 예술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예술 안의 교육”과 “예술을 통한 교육”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예술 안의 교육은 무용, 시각예술, 음악 등 장르 예술의 표현방법을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것으로 “학교와 학습에 대한 태도,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개인적 만족, 복지 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반면 예술을 통한 교육은 예술교과목 이외의 모드 ㄴ과목을 창의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예술적인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으로, “학습 성취도를 향상시키고, 학교에 대한 불만을 감소시키며, 긍정적인 인지발달을 촉진시킨다.”


어린이가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시각적, 음악적인 눈을 뜨며, 처음으로 연극을 해보거나, 새롭고 창의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수많은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원동력이 되었다. 즉, 특정 맥락에서 예술이행이 겪는 어려움과 가혹한 구조적 제한 속에서도 교사, 예술가와 어린이들이 계속해서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잠재 요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기대하지 않은 '와우 효과'이다. (앤 뱀포드, 13쪽)


2002년 참여정부 출범 후 시작된 문화예술교육정책도 모든 이를 위한 예술교육이 목표였다. 2005년 제정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의 기본원칙에도 이러한 취지가 잘 반영되어 있다.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


(켄 로빈슨,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


교육의 공공성을 높이면서 개인의 창의성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 바로 예술교육의 강화이다. 공교육에서 예술교육의 강화는 학교를 즐겁고 행복하게 유지시킬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미적 감각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창의적인 상상력을 높일 수 있다.


예술교육이 창의적이라는 뜻은 예술적 표현의 수준이 뛰어나다기보다 예술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생각하는 마인드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개인의 미적 능력만을 위한 창의성은 예술교육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가치이다. 예술교육의 창의성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예술의, 예술을 통한 사회적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3 문화연구는 예술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문화연구와 예술학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전통적 예술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문화연구는 문학과 예술의 절대적 가치와 진리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적 문학예술론에서 텍스트는 세계의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문화연구자들이 생각하는 텍스트는 사회적 생산의 장에서 특정 의미를 생산하는 것으로 본다. 문화연구는 또한 예술 장르 간 견고한 벽을 지키려는 분과주의에서 벗어나 예술 장르가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간학제적 연계를 중시한다. 문화연구는 또한 예술이 캔버스나 박물관 전시품이 아닌 대중의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은 창작자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이 살고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예술은 사회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성원을 위한 미적인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문화연구는 예술의 이러한 사회적 의미가 새로운 창작행위로 전환되도록 제도적,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문화연구의 계기


문화연구와 문화운동


예술교육의 재구성과 문화연구의 방법론


문화연구는 개별 장르에 기반을 둔 예술교육의 교육과정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문화연구가 지닌 예술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 새로운 교육방법론은 이론과 실천, 장르와 장르, 감성과 테크놀로지의 통합을 지지하기 때문에 예술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예술교육의 새로운 이론 구성을 위해 문화연구의 방법론이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문화연구는 예술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데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둘째, 문화연구는 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필요한 지적 기획력과 문화정책을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한다.

셋째, 문화연구는 예술의 이데올로기적 허구효과에서 벗어나 예술의 절대성에 대한 이데롤로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과 예술의 외부를 가로지르는 통합적 감성을 제공할 수 있다.


예술교육의 현장을 가로질러가는 문화연구


예술교육의 새로운 변화, 즉 특정 전문 예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삶의 가치와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문화연구가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 목표와 부합한다.


문화연구는 학제 간 융합교육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술교육이 실기 중심의 예능교육 반복학습을 넘어서 사회의 다양한 주제와 결합하는 토픽별 교육을 강화하도록 할 것이다. 토픽별 교육은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토픽별 예술교육은 특정 시대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개발하고 이를 다양한 예술 장르, 혹은 감각과 결합해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문화연구는 또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효과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4 문화예술교육정책과 문화민주주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이념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예술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싶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시민의 자율과 참여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또한 그것은 문화와 예술, 교육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교육의 혁신과 문화의 변화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기존 예술운동이 예술가들의 창작 활성화와 사회 모순을 예술로 형상화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면, 문화교육운동은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의 전환과 예술 수용자들을 위한 교육의 강화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전문 예술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시민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기반시설에서 다양한 예술교육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문화운동의 새로운 실천과제인 셈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철학과 이념은 무엇보다도 예술체험 위주의 교육을 통한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활성화하고 공교육의 교육과정 방향을 전환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교과과정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문화예술교육은 통상적으로 행하던 공교육에서의 예능교육과 다르다. 문화예술교육은 예능교육의 새로운 교육방향을 지시해주는 메타적 언어이면서, 예능교육 교과가 지닌 매체상의 기능적 구분을 넘어서려는 통합교육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문화예술교육은 현행 예능 교과목을 포함한 인문사회 교과목을 통합적으로 연결시킬 때 필요한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문화예술교육은 대안적인 교과 모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학교의 교육 운영방식에 대한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와 예술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기존 예능교육의 수준을 넘어 다양한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먼저, 문화예술교육은 기존 교과목에 포함되지 않은 대중문화와 매체에 대한 교육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 이점이 있다.

두 번째로, 문화예술교육 교과모델은 정규 교과목을 학습하려는 교사에게 자신의 영역에서 수업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고, 문제의식을 연결시키고 응용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정규교과목이 아닌 특별활동수업이나 방과 후 수업활동에 적절한 교육교재로 활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은 장기적으로는 윤리나 도덕 교과목을 대체하는 대안 교과목으로 제시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시민들의 감성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학교에서의 예능교육 강화와 학교에서의 대중문화교육의 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협의의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생들의 감각과 감성을 활성화하는 광의의 의미를 지니고,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가 서로 다른 조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특성화한다. 결론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은 문화민주주의의 확산과 예술적 창의성의 보편적 실현이라는 이념을 표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문화정책기조와 문화예술교육의 위치


왜 문화예술교육정책인가

무엇이 문화예술교육정책인가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수행할 것인가


왜 문화예술교육정책인가


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가?

첫째, 문화정책의 이념이 과거와는 다른 틀을 지향하고 있다. 문화정책은 소수 문화예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욕구, 감정, 쾌락, 표현을 위한 정책 일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더불어 문화정책은 그동안 주요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교육, 공간, 생태, 섹슈얼리티 등과 같은 잠재적 문화영역과의 관계, 혹은 연합을 통해 새로운 실천의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문화예술교육정책은 문화의 교육적 의미를 강화하는 맥락에서 비롯된다. 문화예술의 창작과 향수의 상호연관성을 높이고, 그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은 필수과제가 된 것이다.

셋째, 문화예술교육정책은 교육의 문화적 의미 강화라는 맥락을 지닌다. 교육은 인간 오성과 감각의 균형있는 배치를 통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지, 특정 기능과 감각만을 집중해서는 결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러한 공교육의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감각의 평균대 역할을 한다.


무엇이 문화예술교육정책인가?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정책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정책의 본래 기능은 개별사업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구조적 확경, 혹은 시스템을 만드는 행위이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은 문화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며, 문화교육인력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인력이 양성되고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의 대상 설정에는 서로 연관되지만, 정책수행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층위가 존재한다. 기획의 층위, 콘텐츠의 층위, 수행주체의 층위, 제도적 층위로 구분할 수 있다.


공교육 패러다임 전환으로서 프랑스 예술교육


공교육은 입시교육 안에서만 재생산될 뿐,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교육체제와 사회구조 변화 사이의 모순, 교육주체와 대상 사이의 모순, 교육방법과 평가의 모순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교육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혁한 대표적 사례로 프랑스의 예술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1980년대 공교육의 위기상황을 학교에서의 예술교육 강화 정책을 통해 해결했다. 학교가 갈수록 단순지식만을 전달하고 학생들의 창의적인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방법에 한계를 갖자, 1983년 당시 자크 랑 문화부장관은 교육부와 학교 예술교육을 활성화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학교 예술교육 강화의 배경에는 문화가 대중의 일상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예술과 문화가 학술적 의미에서 교육 대상으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 진단되고 있다. 자크 랑 문화부장관은 문화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면만 강조하다보니 프랑스 교육제도는 답보상태에 있으며, 교육부는 예술창작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예술과 문화는 수학이나 국어처럼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1983년 알랭 사바리 교육부장관과 자크 랑 문화부장관은 서로 협약을 맺어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 처음으로 문화수업이 열렸고 그 수업 중에는 문화유산수업, 아르캉시엘(무지개) 수업, 음악수업 등이 있었으며, 많은 예술가가 학교로 진출했다. 1988년에도 새로운 국민여 일어났는데, 조스팽 전 총리가 당시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예술교육을 강화했고, 문화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문화수업 및 예술실기활동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후 자크 랑 전 문화부장관이 교육부장관에 취임하면서 2000년 12월에 예술교육 5개년 계획을 설립,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정책과제를 지시하고 학교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했다.


자크 랑 교육부장관의 예술교육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예술은 더이상 교육제도의 보완물, 우선적으로 다른 교과목을 교육한 이후에 실시하는 교육, '근본적, 기초적' 교과목에 치우쳐 도외시하는 과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2) 예술실기활동을 활성화하고 문화에 대한 접근 기회를 확대한다.

3) 예술교육에 가장 적합한 곳은 학교이다. 어린 나이에 예술작품을 일찍 접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가장 적합하다. 또 예술, 문화에 대한 접근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소외자, 불평등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4) 감성은 이성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어린이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상호보완적으로 개발될 때만이 균형 있고, 조화로운 자아개발을 할 수 있다.

5) 문화활동은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해주는 씨앗이며 합창이나 연극, 무용을 통해 어린이들은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토대 위애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예술교육 5개년 계획의 목적과 방향

1) 예술교육은 문화적 획일화의 위협을 불식시키는 해결책이 될 것이며, 어린이가 '이익의 제국'이 쏟아 붓는 이미지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균형감각을 길러준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은 경제, 문화적 세계화가 야기한 하향평준화의 위협에 대응하며, 무분별한 세계화 물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2) 예술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사, 예술가의 동참이 필요하며, 여러 문화기관이 인적자원 및 예술적 자원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3) 예술교육정책의 목적은 학생들이 예술과 문화를 개인적 대인관계 속에 어느날 우연히 습득하기만을 기다리지 말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초등학교에서 시작해야 하고,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글을 쓰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권장해주어야 한다.

4) 결론적으로 우리의 의무는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예술을 향유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는 글자를 배울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림, 연극, 영화를 즐길 권리가 있다. 우리는 예술교육이라는 진정한 공공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표3, 프랑스 예술교육 연계 흐름도>


이런 예술교육정책의 목적과 방향은 학교 교육의 상당부분이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프랑스 예술교육의 한 가지 특이점은 '문화'보다 '예술교육'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예술교육은 19500년의 교육개혁에서 예술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축소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라인하르트 페니히가 '예술교육'보다 '예술수업'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예술교육운동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 운동은 그동안의 예술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개인의 예술적 잠재력보다 예술적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더 중시했는데, 예술작품은 사회의 한 생산물로서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회 구성원의 눈이나 입으로 대화를 나누는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정책에서 재교육의 문제


실행과정에서 현재 문화예술교육이 안고 있는 난제

첫째, 문화예술교육이 학교에 정착하기 위해서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그에 따른 적절한 사업을 구체화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현재 존재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소프트웨어와 앞으로 개발해야 할 소프트웨어를 문화교육현장에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셋째, 문화예술교육의 소프트웨어를 교육 수요자에게 매개하는 다양한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정책을 수행할 것인가


첫째, 현재 진행중인 사업방향과 사업절차에 대해 외부로부터 어떻게 검증받고 지원받을 것인가 하는 해결방안이 신속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지원사업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하는 예술강사 사업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셋째, 공공문화기반시설의 공교육 연계 사업들에 대한 총체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넷째, 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성격규정과 운영방식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적 의미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념의 구체화와 담론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민주주의로서 문화예술교육정책


참여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은 분명 시민들에게 문화적 교육의 기회를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되었고, 이는 문화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문화민주주의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 관점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문화사회로의 전환은 문화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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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로운 예술교육을 위한 미학


예술교육과 문화미학의 새로운 접합


본격 예술은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지원 없이는 소위 예술의 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예술의 지위, 예술의 위상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거나 예술가를 위한 예술이었다면, 21세기의 예술의 우상은 다른 인식의 폭과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문화교육은 예술이 대중적 위상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문화적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는 실천영역이기 때문이다.

문화교육은 주로 창작자를 위한 것이었던 기존 본격 예술의 방향이 수용자를 함께 포용하는 정책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지방자치제 이래로 지속적으로 늘고있는 공공문화기반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엘리트 예술생산 중심의 고등예술교육 패러다임을 시민들의 예술적 감수성 향상을 위한 보편적 교육 패러다임으로 이행할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대중을 위한 예술교육에 미학적 관점이 없다면, 일반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단순 지식교육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 예술창작과 수용에서 느낄 수 있는 본격 미학, 순수미학과는 다르게 대중을 위한 예술교육은 문화미학적 요소를 갖고 있다. 문화미학(cultural aesthetics)은 아직 구체적으로 개념화된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사회적 구성원으로 느끼고 연대할 수 있는 감성적 힘을 의미한다.예술미학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정서적 숭고함을 말하는 것이라면, 문화미학은 예술작품을 매개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질 때 발생하는 정서적 상황을 말한다.


예술교육의 미학적 관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해서 말할 수 있다.

첫째, 예술을 창작하고 교육받는 전문 예술가이든 예술교육을 수용하는 일반인이든 예술교육의 최종 목적은 개인의 탁월한 재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성적 리터러시(emotional literacy)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감성적 리터러시는 사물을 미적으로 보는 힘, 몸의 자유로운 활력, 표현방식의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예술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예술교육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정보를 소통하는 방식을 넘어 상호간 인격의 신뢰, 정서의 교감, 즐거운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셋째, 예술교육은 다양한 표현력과 하나의 사물이나 주제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상상력을 풍부하게 갖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유비쿼터스 시대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한 예술의 새로운 감수성을 확대하고 디지털 기술에 대한 수용력을 높이는 디지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감성적 리터러시


감성적 리터러시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감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고 다른 사람과 성공적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에서 감성적 리터러시 개발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정을 정확히 확인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성적 지식 분야의 권위자 짐머만 박사는 인류의 가장 근본적 문제, 즉 폭력, 범죄, 약물 남용, 편견, 인종차별, 가족 파괴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가 개인간 감성적 리터러시를 활성화하는 것이며, 감성적 리터러시에 대한 문화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정서적 공유의 단절과 결핍에서 비롯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술교육은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활성화해야 한다.


들뢰즈, 스피노자, 감각(sense) 정동(a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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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놀이


예술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가 소통이다. 소통으로서 예술교육은 가령 합창이나 연극, 체험형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즐거움을 느끼고 정서적 연대감을 갖는 것을 말한다. 소통으로서 예술교육은 비판적 사고력과 대화의 기술을 향상시키며, 창조적 표현력에 대해 다양한 피드백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교육적 실험을 통해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상호작용적 삶을 배울 수 있다.


놀이는 소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어린이는 움직임, 생각하기, 집중, 보기, 듣기 그리고 소통하기와 같은 기술을 결합한다.


예술교육에서 소통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든, 예술체험활동에 참여하든 정보의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놀이라는 개념을 통해 소통의 과정 자체를 즐겁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감성적인 체험형태를 만든다. 놀이로서의 소통은 소통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자발성을 높여주고 타인에 대한 정서적 공감과 정보 이해력을 높여준다.


예술교육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하나의 소통이자 놀이이다. 놀이는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심어주고, 신체의 감각을 활성화할 수 있는 소통의 지혜를 습득하게 한다.


상상력


예술교육에서 상상력은 창의성의 기본 자원이다. 창의성은 상상력에서 출발하며 창의적인 예술은 상상력과 표현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상상력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들을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의 힘,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을 실제 속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재현의 힘을 말한다. 예술은 논리와 이성보다는 직관과 상상력이 중요한 창작의 자원이 된다.


공상적 상상력, 은유적 상상력, 목적형 상상력, 생산적 상상력


예술교육에서 상상력은 창의성과 함께 교육의 본질적 요소이다.


다른 사람들의 현실을 상상함으로써, 문화와 자연세계의 다양성에 경의를 표하도록 배우는 것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예술교육은 상상력의 발전에 결정적이며, 모든 교육 커리큘럼에서 핵심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술은 모든 교육의 기초이며, 상상력은 우리의 세계와 이웃을 치유하는 곳으로 가는 계단이다.


디지털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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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의 미학은 예술의 미학과는 분명 다르다. 예술교육의 미학은 예술 그 자체보다 교육적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과 느낌의 문제이다. 따라서 감성적 리터러시는 예술을 생산하는 능력과 직결된 것이 아니라 예술교육을 통해 사물과 작품을 보고 느끼는 능력과 직결된 것이 아니라 예술교육을 통해 사물과 작품을 보고 느끼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6 소수자를 위한 예술교육



7 예술교육, 문화다양성, 문화적 권리



8 "입시학교"를 넘어서: 카니발 페다고지"로서 예술교육


포르투갈 '예술교육 세계대회'의 교훈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논하며 모든 발제자가 언급한 '창의성'과 '상상력'은 의문의 여지없이 예술교육을 설명하는 중요 키워드가 되었다.

창의성과 상상력은 예술교육이 지식교육이나 과학교육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미학적 가치이면서도 예술교육이 특권화하거나 절대시하는 권위적인 가치도 아니다. 오히려 창의성과 상상력은 개발되거나 증진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문화적 감수성과 문화적 취향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생적인 정념을 말한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다니 린더세이(Dani Lindersay) 박사는 예술교육을 페다고지의 변형적 실천으로서, '카니발적 페다고지'의 의미를 생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카니발적인 예술교육은 자본과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개인의 자발적, 자생적 참여와 쾌락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교육이 사회의 부패, 범죄, 빈곤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것은 교화와 훈육의 차원을 넘어서는 감성적 공유일 것이며, 이는 글로벌 시대 지역 시민들의 문화주권을 강화하는 것과 연계될 수 있다.


카니발리즘으로서 예술교육


바흐친은 중세 작가인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을 분석한 <라블레와 그의 세계>에서 중세 사육제에서 행해진 예식에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민중의 해학과 풍자가 있음을 강조한다.카니발은 억압받은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문화해방의 축제이다.


축제로서 카니발의 의미는 세 가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첫째가 웃음이다. 웃음은 모든 대상을 절대적으로 구획하지 않는 에너지이다.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없애고 서로가 평등한 위치에서 축제를 즐기는 '유쾌한 상대성'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가면의 풍자성이다. 가면은 자신의 몸을 숨기려는 태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길 원하는 소당을 담고 나아가 즐거움과 풍자정신을 심어준다.  

셋째로 카니발은 민중적인 감성을 갖고 있다. 중세 귀족적 위계질서에 눌린 민중이 카니발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고 그들만의 유쾌한 판을 만드는 민중적 제의이다.

이렇듯 바흐친이 언급하는 카니발리즘은 일상의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은 인간, 특히 민중의 원초적 감성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니발리즘으로서 예술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평등한 교육이다. 예술교육은 또한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즐겁지 않는 예술교육은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 죽은 교육이다. 예술교육은 개인 감성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즐거운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감성을 활성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니발리즘으로서 예술교육은 평등한 관계, 감성적 즐거움, 공동체 내의 소통을 중시한다.


학교가 즐거울 수는 없을까


8차 교육과정에서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을 선택교과목으로 전환하였다.?


학교에서 예술교육이란


예술교육이 학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는 것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제도가 예술적, 문화적 관점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연극, 그림, 문학, 음악, 무용 등의 많은 예술작품은 사회적 문화의 통합적 특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예술작품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감지하기 위해 경험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예술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감각과 오성의 문제와 친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안다는 것은 그것이 재현되고 구체화되는 생각과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지각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에게 감각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다른 사람들의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그것에 민감한 정서를 느끼는 소위 감상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로 문화교육에 있어 중요하다. (켄 로빈슨)


학교 예술교육의 창의성과 감성능력


뱀포드는 각국에서 예술교사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예술교사들과 예술 전문단체 및 기관들의 긴밀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뱀포드 교수에 의하면 예술가 개개인과 예술기관의 파트너십은 단기적인 것보다는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고, 모든 어린이에게 다양한 유형의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접근의 기회를 열어주어야 하며, 전문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교사들의 전문성을 개발시키고, 학교 교육의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내 활동 갤러리, 학생들의 다양한 공연이나 외부 문화기반시설과 박물관 활용 등이 유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예술교육과정의 문화적 리모델링


전 세계의 많은 학교 교육체계는 교과과정 간의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과학과 기술, 수학, 언어를 강조하고 예술 인문학 육체활동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영역 간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 양쪽 분야는 모든 젊은이가 똑같이 접해야 하는 주요 문화적 지식과 경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양쪽은 각각 서로 다른 지능과 창의성의 형태를 대표한다.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분야에 장점을 지녔을 수도 있다. 협소하고 편향된 교과과정은 마찬가지로 편협한 교육을 낳는다. (켄 로빈슨)


<예술교육의 단계별 원칙과 목표> p.184



예술교육을 넘어선 예술교육 : 카니발 페다고지의 실천



9 고등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기술과 생태의 융합



10 문화사회를 준비하는 예술교육의 미래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


예술교육과 문화교육은 서로 대립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교육은 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고, 예술교육은 그것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문화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예술교육을 '방법'으로, 문화교육을 '명분'으로 삼은 듯한데 서로의 상승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예술교육은 그 안에 이미 문화교육적인 의미가 가미되어 있으며, 문화교육도 예술적 창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예술의 미적 능력을 전제하지 않는 문화교육은 단지 의사소통적 수단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문화적 의미 없는 예술교육도 예능교육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교육과 예술교육은 상호보완적이다.


문화교육은 예술교육의 기능적이고 장르 중심적인 한계를 넘어서 모든 이를 위한 감성교육이고, 문화적 삶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보편교육이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의 삶의 자율성을 위해 문화적 자원을 분배하고 소통시키는 커뮤니케이션 교육이며, 소외계층의 경제적 빈곤, 사회적 위치의 불안전함을 문화적 방법으로 해소하는 교육이 아니라 문화적 삶으로 전화하게 만드는 태도이자 선택 혹은 자기 삶의 업그레이드를위한 자원을 공유한다.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

첫째, 예술교육은 더이상 특별한 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교육은 계급과 인종,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교육이다.

둘째, 예술교육은 대안적인 교육과정의 중요한 철학적, 미학적 토대를 형성한다. 이른바 '사회적 예술교육'은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공교육에서의 예능교육과 다르다. 그것은 예능교육의 새로운 교육방향을 지시해주는 메타적 언어이면서, 예능교육 교과가 갖고 있는 매체의 기능적 구분을 넘어서려는 통합교육적인 의미를 갖는다.

셋째, 예술교육의 사회적 의미는 결국 개인의 감성을 활성화하고 사회의 구성에서 문화적 관점이 중시되는 '문화사회'를 꿈꾸는 이념을 갖고 있다. 문화사회는 경제와 정치가 중심이 된 사회체제와 다르게 문화를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이 사회의 모든 가치와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문화사회란 무엇인가


문화사회는 생산력의 증대로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논리보다 일정한 생산력의 토대 위에 구성되는 다양한 사회적 재생산 부분들을 조절, 배치, 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문화사회는 가급적 노동을 줄이고 자율시간을 늘려 개인의 삶의 결정권을 높이는 자율사회를 지향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기술혁명으로 늘어난 생산성 향상분에 대한 공정한 분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대안으로 “전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하고, 아울러 시장 부문에서 축출된 사람들에게 제3부문(사회적 경제)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앙드레 고르는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가능해진 자유시간의 문화적 활용을 강조한다. 그는 노동에 기초한 생산주의 사회에서 자유시간 사회로의 이행이 '문화사회'임을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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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화네트워크와 예술교육


생태문화네트워크는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민중에게 대안적 삶을 제안하는 문화운동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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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을 넘어서는 예술교육'의 실천들


예술교육 관련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은 늘어났는데, 정작 자율적이고 자생적인 예술교육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은 약화되었다. 공공지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대안적이고 자생적인 자기 정책을 갖고 있지 않으면 예술교육을 매개로 한 비판적이고 생태적인 자생적 네트워크는 요원할 것이다. 나는 생태문화네트워크로서 예술교육을 사회적 예술교육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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