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본 공감, 공생하는 인간

EBS 기획특강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


1. 귀뚜라미 소통과 비빔밥의 창발성 (1.9)
2. 통합, 융합 그리고 통섭 (1.10)
3. 진화론, 그 간결한 아름다움 (1.16)
4.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1.17)
5. 진화의 현장, 나가수 (1.23)
6. 더불어 사는 삶, 사회성의 진화 (1.24)
7. 다윈, 시장에 서다 (1.30)
8. 생물학과 남녀공감 (1.31)
9. 늙기를 거부하는 동물, 인간 (2.06)
10. 히포크라테스와 다윈의 만남 (2.07)
11. DNA를 아시나요? (2.13)
12. 자연에서 배운다(2.14)
13. 설명의 뇌 (2.20)
14. 공감의 시대와 호모 심비우스 (2.21)


2012년을 연 EBS의 기획특강은 최재천의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였다.

창의성, 상상력, 감수성, 문제해결 능력, 사회적 소통능력... 문화예술교육의 키워드는 무척 많은데, 이들 중 메인 키워드는 '감성'이라고 요사이 생각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감각적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느끼는 성질인 감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나와 내 주변을 느끼고 이해하며,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창의성과 사회성이란 덕목은 감성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교육은 감성을 통해 창의성과 사회성으로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공감의 시대'를 얘기해보자고 하니, 더구나 그 얘기를 '통섭 統攝'의 과학자(이미 과학자만은 아니지만) 최재천과 하겠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특강은 일주일에 두 번씩, 7주간 모두 열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다윈의 진화론을 생태적으로 해석하는 다윈주의자 최재천은 생물학을 밑천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통섭'의 자세로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소통과 통섭(그는 통합은 물리학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며 통섭은 생물학적이라고 정리하지만 이런 구분이 통섭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에 대한 강조로 시작한 강의는 진화론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며, 진화론에 바탕을 둔 생물학적 세계 인식을 경제학, 사회학, 의학과 통섭하여 학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전체 논의의 밑바닥에는 최재천의 다윈 이해가 있다. 우리가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으로 알고 있는 제목은 18626판을 내면서 바꾼 것으로, 원래 제목은 <자연선택의 방법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 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흔히 적자생존 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이해되어 자연 상태에서 생존하려면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최재천은 다윈의 진화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이해해야 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최고로 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낙오하지 않는 것인데, 진화의 방향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다윈은 진화 evolution’이라는 용어에 더 나은 상태로의 진보라는 뜻이 있어, 이를 사용하는 데에 주저했다고 한다.) 자연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다양성공생이라고 말한다.

최재천은 생태학자이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며, 인간도 지구의 다른 모든 생명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 관계에는 경쟁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는 공생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 최재천은 이러한 생각을 호모 심비우스 Homo Symbious : 공생하는 인간이란 용어로 정리하고, 2011년 말에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는데, TV 특강도 인간은 뭇 생명과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공감을 기대하고 본 이 강의는, 기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자연과학 이론을 통해서 이해와 공감의 영역을 생태계의 모든 생명으로 확장하였다. 자연과학의 언어로 경쟁보다 공생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가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획일성은 생명체에게 위험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게 유연하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명의 역사가 증명해준다고 말하고 있다. 아주 익숙한 얘기들 아닌가?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얼마나 믿고 싶어하는 말들인가? 문화예술교육의 언어들 아닌가? 하긴, 문화예술이 마주하고 있는 것도 자연과학이 마주하고 있는 것도 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것도 우리 세상 우리 삶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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