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10.11.27.

문화예술교육 콜로퀴엄 : 미래사회와 문화예술교육

예술교육의 Framework - '교육과정'과 문화예술교육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의 명암

김선아 (한양대 교수)


1. 들어가며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이 무엇을 담고 있을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이 있다. 반면에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이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떤 파급 효과를 가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교육과정이 문화예술교육에서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마술적 힘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점검해야 할 것은 공식적 교육과정이 문화예술교육에 가져올 수 있는 불행과 희망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에 과연 교육과정이 필요한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을 수립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을 수립함으로써 혜택을 받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문화예술교육의 교육과정을 원하는가? 혹은 원하지 않는가?

본 연구는 비판교육학과 예술교육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토대로 교육과정의 성격과 예술교육의 역할을 살펴보고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이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고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단일화된 혹은 중앙집권적인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과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이 나름대로의 필요성과 가치를 지닌다는 대립된 입장을 가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각들을 탐구하여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에 대한 담론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2.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 무용론


명제 1. 다양성과 맥락성을 가지는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보편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다.


문화예술교육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맥락적인 차원에서 개별적인 경험에 기초하는 반면, 교육과정은 보편성, 합리성,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화예술에서 문화와 예술의 관계가 불분명하고 이것이 단순히 문화와 예술의 병렬된 개념인지, 교집합인지, 아니면 온전하게 통합되어 문화교육 혹은 예술교육과 구별되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 용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에 관한 교육과정을 수립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라 할 수 있다.


1) 공식적 지식


교육과정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하다보면, 사람들 간에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분명한 교육적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위한 교육의 내용을 구성하여 명시한 것이 공식적 교육과정이다. 이것이 실제로 가르쳐질 때에는 의도하지 않는 것이 학습되기도 하며, 교육과정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신념, 가치, 태도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잠재적 교육과정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공식적 교육과정은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과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료한 내용 체계를 중심으로 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합리주의적 논리에 따른 교육과정은 단순하고 명료해 보일지라도, 현장에서 적용될 때에는 괴리감과 모호함이 나타난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교육 문화 혹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통하여 경험적으로 체득되는 사회화, 가치, 문화적 관습, 권위에 대한 복종, 계층구분의 강화 등에 관심을 둔다. 교육과정은 그것 자체로 전달되고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 즉 교육의 주체들에 의해 선택되며 해석되고 내재화되는 것으로서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특히 교육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학습자 자신의 신념, 가치, 경험에 비추어 주관적으로 표현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상 잠재적 교육과정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 목표를 미리 선정하고 이에 따른 지식을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이에 반해 예술교육은 비구조적인 지식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연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식 구성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구성하는 지식 영역들은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결합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목표지향적인 교육과정이 얼마나 의미 있는 방식으로 문화예술의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존재론적 측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은 현 시대와 역사의 지평에서 “지역 공동체와 세계와 소통하며, 개인이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고 구현하는 전 과정 자체를 교육의 과정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신승환, 2007: 105). 이와 같은 삶의 역동성을 담은 문화예술교육을 몇 가지의 핵심 요소로 추출된 공식적 교육과정으로 박제화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2) 합리성의 함정


공식적 교육과정은 사실과 합리적 방식에 기초함으로 ‘권위’를 가지게 되며, 분명한 사회적, 개인적 목적을 통하여 정당화된다. 교육과정의 합리주의적 절차는 다양성과 맥락성을 상실한 교육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기능한다. 공식적 교육과정의 문제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이 합리적인 교육과정의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표지향적으로 만들어지고 제안된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자료들이 전제하고 있는 합리성엔 함정이 있다. 교육과정의 패키지 속에 녹아 있는 효과성과 통제의 언어는 명백히 비판보다는 복종을 부추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 창의적 인재, 배려와 나눔의 인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러한 인간상이 구현되는 방법이나 사회문화적 맥락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학교와 사회의 구조 속에서 예술을 통하여 가치의 문제를 고민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육과정은 만들어진다고 해도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한 지식을 공식적 교육과정으로 조직하는 것은 중립적일 수 없다. 교육과정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지식이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하고 분류하여 체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지식의 경중과 위계를 구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문화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규범적인 지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중앙집권적인 교육과정을 수립한다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의 성격과 모순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 노력과 담론이 확산된 배경에는 형식주의와 심미주의에 제한된 예술의 개념을 확장하고 사회ㆍ문화적 관점에서 확대하고자 한 지속적인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동연(2007)은 문화예술교육의 실천과제가 경제적, 정치적 지배 논리에 의하여 위상이 위축된 예술교육의 상황을 비판하고 예술의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예술이 형식주의에 머무르거나 사회 모순을 예술로 형상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술가들이 교육적 활동을 통해서 사회와 직접 소통하며 모든 사람이 예술을 통하여 자기성취를 이루도록 하는 문화교육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합리성으로 무장한 공식적 교육과정의 역할이 지식과 교육적 경험을 파편화하고 계층화하였음을 고려할 때, 문화예술교육을 공식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교육과정으로 구조화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되어야 한다.


3.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 당위론


명제 2. 문화예술교육은 현 시대에 교육적(pedagogical) 목적을 가진 사회적 노력으로서 이를 공유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교육과정은 마땅히 수립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중앙집권적인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그것이 교육과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방식 혹은 사람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교육과정의 본질적인 목적을 구현하는 데 생기는 다양한 장애와 한계점들이 교육과정 자체를 부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1) 도구적 차원


Eisner(2007)는 교육적 문제에 있어 완전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시도하면 이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적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문제에 대하여 관심과 집중을 기울여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방향이나 비전 없이 아무 것이나 즉흥적으로 해 보는 것을 의미 하지 않는다. 교육적 지향점에 따른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체로 만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교육과정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학문적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비전과 이념을 구체화하고 이것이 교육적으로 실천되도록 하는 도구로 보아야 한다. 또한 공공의 목적을 수행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성격과 내용을 구상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가는 과정에서 교육과정은 유용한 담론 형성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문화와 예술이 아직 내적으로 통합되지 못하였고, 예술 장르의 경계 안에서 교육과정이 다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는 문화예술교육의 인문학적 기반에 대한 사고를 심화한다.

Eisner(2007: 191)는 교육과정을 “마음을 변화시키는 장치”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 개발은 예술교육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 지향점, 열망 등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것들을 실제화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정형화된 사고를 주입하는 학교 교육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신념,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을 충족시킬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 그러한지 탐구하고 검증하는 도구로서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이 기능할 수 있다.


2) 실천적 차원


공식적 지식을 토대로 한 교육과정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Apple(2004: 85)은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 교육과정은 저항적이고 억압당한 집단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진보적인 교육 운동이 분열되고, 교육 운동가들이 지역이나 주 단위의 차원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재정상태와 관리체제 속에서, 국가 교육과정은 이 집단들을 연합할 공통 의제가 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은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지시하고 규정하는 체계가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하여 공동의 목적을 구성해가는 의사소통을 위한 공식적 제도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이 다양한 교육 주체들 간의 의사소통을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개발에 있어 이론과 실제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의 개발은 현장을 수정하고 바로잡기 위한 이론적 처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론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때 문화예술교육 교육과정은 실천을 성찰, 개선할 수 있는 기본 구조로서 기능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이론가와 실천가의 연합이 요구된다. 문화예술교육의 교육과정은 사회와 교육을 변혁하는 기제(agency)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는 실천에 대한 반성과 함께 행위에 대한 이론화 과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4. 나가며


문화예술교육이 가지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사회, 문화, 정치, 교육, 예술, 철학의 인문학 전반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성격일 것이다. 이는 곧 시각과 가치의 충돌과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며,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간편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희망을 생각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과 그 주체들이 가진 ‘교육적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Eisner(1983)의 책은 세 가지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문화예술교육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이와 같은 성찰이 문화예술교육의 틀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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