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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제,

철학 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

- 서양철학의 역사를 움직인 주요개념 80

생각정원, 2012


3장. 인식편 : 존재 중심에서 사유 중심으로
코기토 / 자아, 주체 / 실체, 대상/ 관념 / 연상 / 감각 / 개념 / 이성



코기토 cogito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코기토는 생각, 즉 사유의 문제로 집중된다. 코기토는 그 자체로 항상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안인가가 의식에 떠올랐을 때 의식에 떠오른 내용을 표상(재현 represent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를 의식에 떠올리는 것을 '표상한다(재현한다)'고 한다.
반성을 왜 하느냐? 알든 모르든 뭔가 일이 잘못되면 반성을 수행한다. 그렇게 해서 잘못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생각을 왜하느냐 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는 코기토가 삶에 있어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일러준다. 결국에는 생각을 넘어서서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행동에는 감각과 운동이 완전히 결합되어 있어 삶 자체와 삶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즐겨 향유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과 주변 환경이 일치되지 않을 때,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면 저절로 생각이 솟아오르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면, 그만큼 그 사람이 복합 다층적이라는 뜻이다. 복합 다층적일수록 다양한 의미와 효과를 일구어낼 수 있고, 또 그런 만큼 인생을 훨씬 더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다.

'반성적' 코기토
'비반성적 non-reflexive' 혹은 '선반성적 pre replexif'인 코기토


자아 ego, 주체 subject

자아는 개인으로서 인간 삶의 제반 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바탕이다.
자기 self는 3인칭적인 것이고 자아 ego는 1인칭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는 자아가 오로지 그 자신으로서, 이른바 객관적으로 자성 自性 ipseity을 지니는 데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주체는 활동의 주체다. 활동하지 않을 때 주체는 자아로 가라앉는다고 할 수 있다. 자아가 활동을 하게 되면 주체로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아의 활동 방식에 따라 주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 철학 이후에는 대표적으로 '경험적인 주체 empirical subject'와 '초월적인 주체 transcendental subject'로 구분한다. 경험적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라고 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경험적인 주체는 항상 지금 여기의 상황 속에서 존립하는 대상을 마주한 채 그 대상과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관계에 몰두하는 실재적인 주체다. 초월적인 주체는 논리적이고 가상적인 주체, 이론적으로 상정되는 주체이다. 칸트는 모든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바탕이 바로 이 초월론적인 주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초월론적인 주체의 근거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이른바 반성적인 코기토다.
경험적 주체의 활동을 보면 그 바탕에서 작동하는 자아가 그 자체로 순수하게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 자아는 얼마든지 그 속에 타자성을 지닐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자아로서 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형태의 주체들 중 몸 주체가 가장 근원적이라고 여긴 메를로 퐁티는, 각각의 자아가 이미 늘 모든 다른 자아들이 교차되면서 수시로 새롭게 형성된다는 의미노 “각각의 나는 모든 다른 나들의 교차점'이라고 했다. 자아가 무조건 '나는 생각한다'라는 데서 성립하는 자기 동일성을 지닌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런 '순수 자아'보다 오히려 '분열된 자아'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인 자아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실체, 대상

실체는 존재 관련 개념이고, 대상은 인식 관련 개념이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오브젝툼이 주체고 수브젝툼이 대상이었다. 존재 중심의 사유 체계에서 인식 중심의 사유 체계로 바뀌면서 이 둘의 위치가 역전되었다. 존재 중심의 사유 체계에서는 아래에 놓여있는 것이 존재, 즉 사물의 존재인데 반해, 인식 중심의 수유 체계에서는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 인식 주체인 의식이기 때문이다.
존재 중심의 사유 체계에서는(아리스토 텔레스) 실체와 대상이 짝이 아니라 실체와 속성이 짝이다. 실체는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속성은 항상 실체의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파생적인고 이차적인 것이다.
칸트 이후 후설의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실체는 궁극적인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실체를 실체이게 하는 의식을 더 궁극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다.
'대상화 objectification'라는 말을 나쁜 뜻으로 쓰는 이유는, 대상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이고 타성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에 불과한 반면, 주체는 능동적이고 자율적이고 활성적이고 도구를 활용하라는 라는 이분법적인 사유 때문이다. 그런데 'object'라는 말이 '반대한다”라는 뜻을 갖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항상 주체에 대해 반기를 들고 그 나름의 권리를 주장하는 개념이다.

대상, objectum : 앞에 던져진 것
주체, subjectum : 아래에 던져진 것
실체, substance : 아래에 놓여있다.


관념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 관념이다. 근대 철학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은 바로 관념들의 출처 내지는 원천을 둘러싸고 나뉘게 된다. 합리론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관념들이 있다고 주장했고, 경험론은 모든 관념이 궁극적으로는 감각적인 경험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타고나는 관념을 본유관념,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관념을 외래관념이라고 했다.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단순 관념은 질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성격만을 갖는 것이고, 복합 관념은 단순 관념들이 적어도 둘 이상 결합된 것을 말한다.
경험론자 버클리는 'esse est percipi 사물은 지각된 내용 자체다'라고 했다. 이를 관념에 연결해서 해석하면, 사물은 '관념들의 다발 bundle of ideas'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래서 관념론이라고 한다.
관념들의 체계를 흔히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연상 association

'연합작용'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연상'은 바로 관념들이 체계를 이루는 데 기본 바탕이 된다. 관념들은 다른 관념들과 결합되어 복합 관념을 형성함으로써 가치와 효력을 지니게 된다.
흄은 지금 당장 지각을 통해 얻고 있는 관념은 인상이라고 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 기억을 통해 다시 떠올리는 희미해진 인상을 관념이라고 한다. 연상이란 바로 관념들 간의 인력이 정신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상이 근본적으로 주체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체도 어찌할 수 없는 정신의 근본적인 힘이 작동한다는 것인데, 그 바탕에 관념들 간의 자발적인 연상이 작동하는 것이다.
나의 정신에서 연상의 힘이 얼마나 넓고 깊게 발휘되는가가 상상력의 위력을 결정한다. 교육에서도 이런 연상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뛰어난 상상력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일을 바탕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가능성을 미리 예상해서 대처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금 여기에서 주어지지 않은 새로운 일을 창안하여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감각 sensation

지성주의 혹은 합리주의는, 이 감각은 참된 인식을 하는 데 중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근대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일체의 본유관념은 없고 오로지 외래관념인 감각이야말로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감각을 오로지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문제는 감각과 사물의 관계다. 감각적인 성질이 결코 인간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벗어난 저쪽 세계에 진짜로 존재한다고 여긴 철학자가 바로 바로 사트르트와 메를로 퐁티다. 이런 입장을 '객관적 감각주의' 내지는 '감각론적 유물론'이라 부를 수 있다.
감각을 가장 중시하는 영역은 예술이다. 디자인은 바로 여러 감각적인 내용을 배치하는 것이다.
왜 인간은 감각들이 잘 배치된 상태를 즐기는 것일까? 칸트에 따르면 감각들이 잘 배치된 순수한 형식들을 바탕으로 해서 미감적 판단이 성립한다고 핬다. 우리 인간에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인식의 욕망과, 가능하면 가치있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도덕의 욕망이 있는가 하면, 이들 욕망을 넘어서서 순수 감각적인 배치를 즐기고자 하는 미감적인 욕망이 있는 것이다.

지성주의 : 합리주의자, 기계적 유물론,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주관적 감각주의 : 영국 경험론자,
객관적 감각주의 :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들뢰즈


개념 concept

철학적으로 볼 때 개념은 일종의 관념이다. 감각적인 관념이 개별적인 관념인 것과 달리 개념은 보편적인 관념이다. 거칠게 말하면 모든 학문은 개념들을 잘 정의하고 그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잘 엮어서 이론화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 상황에 원리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경험적인 개념은 흔히 보통명사라 불리는 것들로 표기된다. 그리고 범주적인 개념들은 흔히 추상명사라 불리는 것들로 표기된다. 철학의 기초 개념들은 대체로 범주적인 개념들이다. 동일성, 차이, 인식, 존재, 원인과 결과, 우연과 필연, 주체와 대상.
칸트는 “감각적 직관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감각적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한 바 있다.
사유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감각적인 관념들에 대해 개념들을 활용해서 보편적으로 질서를 짓는 것이고, 나아가 주어진 개념들의 복합에 대해 또 다른 개념들을 활용해서 보편적으로 질서를 짓는 것이다. 사유의 대상이 되는 감각적인 관념들을 사유에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지각과 상상이다.
데리다는 차연 differance, 즉 차이를 바탕으로 계속 의미가 결정되지 않고 연기된다고 했다. 이 차연 개념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가족 유사성 family resemblance'이다. 하나의 낱말을 쓰임새를 벗어나서 뜻을 가질 수 없고, 또 쓰임새에 따라 계속 조금씩 뜻을 달리할 수밖에 없으르로 동일한 본진적인 뜻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가족 유사성이라는 개념이다.
인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개념은 있을 수 없고, 각자가 제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독특하게 만들어간다고 하는 입장이 바로 실존철학적인 입장, 정확하게 말하면 현존철학적인 입장이다. 현존주의는 근본적으로 본질주의와 대립되기 때문이다.


이성 reason

보편적인 개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성은 기본적으로 논리적 이성이다.
선결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참으로 주어지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직관적 이성이다.
직관과 추론의 능력이 뛰어나면 그만큼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직관과 추론만으로는 인간의 인식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어떤 관심을 갖고서 직관하고 또 추론하는가에 따라 인식되는 내용이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심은 삶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다. 관심은 인생 전반의 태도와 직결된다. 이때 관심은 대단히 포괄적이고 기초적인데 이를 일컬어 세계관이라고도 말한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 중 하나는 이성 능력과 감각 능력 및 상상 능력 간의 관계다. 논리적인 이성에 대해 근본적인 재료를 제공하는 것은 직관적인 이성이다. 그런데 직관적인 이성이 직관하는 대상 영역은 결국 감각적인 영역이다. 감각 능력과 상상 능력이 부족하면 도대체 직관하는 이성이 발휘될 근거가 없어진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가 득세하면서 이성은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이때 비판받는 이성은 감각의 근원성을 망각한 이성이요, 그래서 감각이 흐름으로써 자아내는 차이의 근원성을 무시한 이성이요, 개념으로써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삶의 가치를 이성적인 질서에 따라 피라미드 형태로 위계를 세우는 이성이요, 무엇보다 이런 이성을 악용하여 오로지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사용되는 계산적이고 도구적인 이성이다.
'예술 문화적인 혹은 인문 예술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사회적 분배'야말로 우리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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